이경미 ‘Last night and Neurath’s boat(지난 밤과 노이랏의 배)’ 展
복제의 복제, 의미의 이동
본문
‘New Vertical Painting – Dürer’s apocaly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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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모 (철학박사, 미술사학자)
작가 이경미는 관찰한다. 대상이나 사태 혹은 현상을 관찰한다. 그리고 분석한다. 그에게 분석은 의식의 여과 과정 이다. 주관적 경험에서 감정은 증발되고 객관적 정보만 추출된다. 관찰된 경험은 분석이라는 정신적 여과를 거치면 서 존재론적 상태변화를 일으켜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된다. 애초에 차단된 감정 개입 그리고 그로부터 얻어진 정보 를 시각화 하는 것, 이것이 전형적인 이경미식 창작법이다. 그는 창작 주체로서의 자아조차 관찰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고양이’를 등장시켜 가상의 공간으로 먼 여행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이경미의 신작 ‘버티컬 페인팅vertical painting’은 1498년 독일의 르네상스 미술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가 제작한 ‘요한의 묵시록Apocalypse’ 목판화 연작 열다섯 점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남독展 展 바이에른 뉘른베르크Nürnberg 출신의 뒤러에게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494년과 1505년, 두 번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미술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은 뒤러는 그것을 알프스 이북 지역에 널리 전파하면서 북부유럽의 르 네상스를 꽃피운 선구자가 되었다. 뒤러의 탁월한 예술성이 가장 돋보이는 분야는 판화이다. 그가 활동했던 시대로 부터 수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 어떤 미술가도 뒤러의 생명력 넘치는 선을 뛰어넘지 못했다.
뒤러의 미술사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전환되던 그 당시 판화가 사상과 정보를 확산시키는 최첨단 매체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구텐베르크(1397-1468)의 금속활자가 정보의 생산과 전 달방식에 혁명을 일으켰던 그 시대에 가장 빠른 전파속도를 지녔던 미술 매체는 판화였다. 비즈니스 감각이 남달랐 던 뒤러는 숙련된 기술자를 고용해 대형 공방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면서 최고 품질의 판화작품들을 대량으로 생산해 낸다. 뒤러의 고향 뉘른베르크는 무역의 중심지이자 유럽에서 출판 산업이 가장 발달한 도시였다. 뒤러는 출판물 유 통망을 적극 활용하여 자신의 판화를 전 유럽으로 전파시키면서 화가로서 최고의 명성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엄 청난 성공을 누리게 된다. 그의 성공 신화는 세기말적 불안함이 도처에 드리워졌던 시대적 상황과 심판의 날을 호 소력 짙은 이미지로 해석해 낼 수 있었던 판화가의 탁월한 실력이 융합하면서 탄생되었다.
이경미, New Vertical Painting No.13 - The Whore of Babylon, 2016-2019, Oil on canvas and constructed frame, 157x121x7cm.© 작가, 갤러리 팔조
이경미, Nana is Elsewhere-Jeruzalemstraat, utrecht, 2023, Oil on constructed birch panel, 60x36x7cm .© 작가, 갤러리 팔조
이경미, Here or Nowhere is Our Heaven_Notre-Dame de Guebwiller, 2024, Oil on constructed birch panel, 69x40x6.5cm .© 작가, 갤러리 팔조
이경미, No.8, 2022, Oil & Acrylic on Canvas & Constructed Birch Panel, 91x79x8cm.© 작가, 갤러리 팔조
이경미가 뒤러의 묵시록을 마주한 것은 2016년 2월 독일 다름슈타트Darmstadt의 헤센 주립미술관Hessisches Landesmuseum에서 개최된 뒤러 특별전에서였다. 뒤러의 목판화에서 살아 숨 쉬는 선들의 미학적 완성도를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학부에서 판화를 전공했다는 사실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마침 다름슈타트에서 머지않은 아샤펜부르크Aschaffenburg라는 도시에서 생활한지 일 년 남짓 되던 때였으니 뒤러와의 만남은 우연의 조각들이 유 기적 관계를 맺어 필연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경미의 관심은 암시적 성격이 짙어 난해展 展 한 뒤 러적 도상 보다는 판화 매체가 가지는 이미지의 시각적 서사구조narrative structure 분석에 집중되었다. 뒤러의 판화 에는 분명한 종교적 기능과 목적이 전제되어 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문자로 기록된 사건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 하고 이것이 시각 정보로 전환된다. 등장인물과 그들의 행위 그리고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은 동시대 수용자들의 설 득과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뒤러의 판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포함해 건축이나 묘사된 대상들과 배경은 다분히 ‘독일적’으로 보인다.
뒤러의 계시록 연작을 인용한 작품을 제작해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유목민처럼 세계를 떠돌며 켜켜이 쌓인 삶의 층들을 정리하고픈 욕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결혼과 함께 십여 년의 시간을 나라 밖에서 지내게 된다. 남편의 직장을 때문에 2007년 말 부터 일곱 해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서 보냈고, 2015년 이직한 남편을
따라 다시금 독일로 건너가 이 년을 살다 한국으로 귀국 했다. 해외 생활을 정리할 즈음 뒤러의 판화들이 규정할 수 없는 미학적 끌림을 일으켰고, 그 결과 지금의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뒤러의 목판화 작업은 요한계시록의 저자였던 성 요한이 순교를 당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모두 열다섯 점으로 구성 되어 있다. 원본의 크기는 당시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대형인 32.5 × 48cm로 추정되나 지금은 테두리 부분이 많게는 10cm 넘게 절단된 상태로 전해지고 있다. 다름슈타드의 뒤러 전시를 방문한 이경미는 우선 스마트 폰으로 판화들을 기록했고 이를 확대해 손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 2019년 3월 다시 독일을 찾았다.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을 위해서였다. 전시에서 뒤러의 원작을 감상한지 이미 3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일주일이 라는 시간적 제약을 설정해 두고 주어진 시간 동안 열다섯 점으로 구성될 연작에 대한 구상과 정보 수집을 마무리 했다. 치밀한 계획과 대단한 집중력이 아닐 수 없다.
이경미의 작품들은 프레임을 포함해 높이가 157cm, 폭이 120cm에 달한다. 뒤러의 원작보다 두 배 이상 확대된 크 기다. 미세한 선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집요함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사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완전무결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필展 展 을 유화물감에 적셔 원작 한 점을 모사하는 데만 꼬박 한 달 반에서 두 달 가량이 소요 된다. 집약적인 노동이 들어갔다 손 치더라도 복제에 불과할 터인데 구태여 고통에 가까운 수고를 마다않고 직접 모사할 필요가 있었을까? 디지털 장비의 기술에 의존했다면 손 쉽게 더욱 완벽한 복제본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말 이다. 이 부분은 결과의 차이보다는 작업을 대하는 작가적 태도의 문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담이기는 하지만 다름슈타드 미술관에서 뒤러의 원작을 막 출시된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5로 담았는데 그 결과물이 놀라울 정 도로 탁월했다고 한다. 어쩌면 기계의 정밀함을 능가하는 이미지를 인간의 손으로 복제해 보겠다는 경쟁심 혹은 오 기가 발동해 뒤러의 판화를 모사했는지도 모르겠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잠시 뇌리 를 스친다.
본격적인 작품 구상을 위해 독일을 방문했던 시기와 작품이 완성되어 전시된 시점을 계산해 보면 겨우 반년에 불과 하다. 열다섯 점을 마무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작가의 작업실 운영 방식에 그 답 이 있다. 완성된 모사본이 세 명의 보조 작가들에게 할당되었고 각자 주어진 도안에 따라 작업을 완성하는 방식을 취했다. 보조 작가들은 태블릿 피시를 활용해 도안을 자유자재로 확대해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토록 정밀한 작업이 가능할 수 있었다. 오백 년 전 가장 대중적이었던 매체 판화가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된 후 재차 지극히 아 날로그적인 수작업을 거쳐 또 다른 작업으로 탄생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다층적인 맥락들과 충돌 들이 작가가 실험해 보고 싶었던 작품의 본질이다.
이경미의 작업에 접근할 때 이것이 뒤러의 묵시록 시리즈에 대한 도상적 해석 혹은 재해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 작업들을 뒤러에 대한 오마주로 보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뒤러가 위대한 미술가임에는 분명하지만 딱히 그에게 존경을 표할만한 논리적인 설명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뒤러의 판화작품들이 이 경미의 미학적 흥미를 자극한 것은 이들이 대량 생산되어 광범위한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던 매체의 대중적 성 격 때문이 아닐까 추정된다. 확대 복제를 통해 뒤러의 원작을 현재로 불러내고 그 위에 다양한 요소들을 덧입혔다. 특히 원작에 대한 공간 분석을 통한 작가적 개입이 밀도 있게 이루어졌다. 복제본에는 세로로 긴 원작의 형태가 그 대로 유지되었고 사면에는 프레임이 둘러졌다. 경사를 이루며 밖으로 돌출된 프레임은 평면으로 제한된 화면을 시 각적, 공간적, 심리적으로 확장시킨다. 여기에 깊이감과 속도감을 더하기 위해 소실점을 향해 질주하는 여러 색의 선들이 콜라주Collage 형식으로 덧입혀 졌다.
원작의 각 화면을 구성하는 구조나 형태적 특징들을 찾아내고 이를 극대화하여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 다른 요소들 을 가미했다. 예컨대 ‘성 요한의 순교’를 묘사하고 있는 첫 번째 작업에서 뒤러는 작품의 주제가 되고 있는 처형 장 면을 전경에 배치했다. 그리고 이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군중들을 낮은 담으로 경계 지어진 후경의 좁은 공간에 위치시킨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어 원근법적 시점과 공간감이 그 효력을 발
휘하지 못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경미의 개입이 이루어졌다. 화면의 구조를 분석해 존재하고 있지만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공간을 강조한 것이다. 화면 밖에서 돌진하여 중심의 한 점으로 모아지는 운동감 넘치는 선적인 요 소들 그리고 두 개의 서로 교차하는 사각 프레임을 비스듬히 기울이면서 공간의 깊이가 극대화 되었다. 공간감을 확장하는 선들은 화면 내에 국한되지 않고 프레임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특히 자색이나 연분홍 혹은 연파랑 등과 같은 다채로운 색상의 직선 띠들이 프레임에 나타나면서 한편으로는 공간 확장의 효과를 증대시키는가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흰 바탕에 검은 선으로 이루어진 원작의 단조로움에 장식성을 부여한다.
간간이 출처를 짐작케 하는 흔적들이 남겨져 있다. 파편으로 남아 있는 정보를 더듬더듬 읽어가다 보면 이들이 주 로 독일 슈퍼마켓에서 나누어주는 상품광고 전단지나 잡지 혹은 천연색 신문 간지광고 등에서 추출된 것이라는 사 실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형태적 유사성을 제외하고는 뒤러의 원작 이미지와 추가된 이미지들 간에 의미론적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다. ‘일곱 촛대의 환영’을 묘사하고 있는 뒤러의 판화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작품은 성서에 기록된 다음 구절을 형상화하고 있다.
“12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촛대 사 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 16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17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 20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 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요한계시록 1:12-20)
성서에 기술된 내용이 정확히 뒤러의 손을 통해 시각화 되었다. 그리스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반짝이고 그 입 에서는 날카로운 검이 뻗어나가고 있다. 왼손으로 생명책을 펼쳐 보이는 그리스도 앞에 사도 요한이 무릎을 굻고 앉아 있으며, 그 주변으로 일곱 개의 촛대가 세워져 있다. 이경미는 확대 복제된 이미지의 정중앙에 하나의 수렴점 을 설정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선적인 요소들과 열 지은 원들이 중심으로부터 발산되어 맹렬히 밖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를 피하려는 듯 화면 우측 하단 만화 캐릭터 도널드 덕Donald Duck이 머리를 감싸며 화면 밖으로 질주하 고 있다. 좌측 하단부에는 토끼 캐릭터가 간절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데 원작에 등장하는 무릎 꿇은 인물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역시나 이 양자 간에도 도상적 상관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띠를 두르고 화면에 떠다니는 녹색 형상 역시 공간 연출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그 위에 새겨진 독일어 글자들은 자동차 정비와 관련된 광고에 서 가져온 것으로 추측된다.
‘양 뿔 괴수와 일곱 머리 괴수’를 묘사하고 있는 또 다른 판화를 예로 들어 보자. 구름위에 앉아 광휘에 싸인 신의 모습이 바로선 삼각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 상응하도록 그 아래에는 어느 회사의 로고처럼 보
이는 삼각문양이 주어졌다. 뿐만 아니라 신으로부터 발산되는 빛에 대한 대응으로 소용돌이치듯 밖으로 퍼져나가는 원들이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부가적으로 주어진 이미지들은 얼핏 콜라주 기법으로 오려 붙인 것처럼 보 이지만 이들 역시 어느 잡지에서 발췌된 이미지를 세밀하게 유화물감을 이용해 옮겨 그린 것이다. 복제된 뒤러의 판화와 복제된 잡지의 이미지가 하나의 화면에서 만남으로써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위상(展展 ) 차이가 사라 져 버렸다. 이러한 화면 구성을 통해 버티컬 페인팅이라는 다소 모호하게 들릴 수 있는 작품 제목이 조금은 수긍이 간다.
콜라주 형식을 취하고 있는 둥근 이미지들을 면밀히 관찰해 보면 이들이 비록 원작과 최소한의 형식적 관계만을 맺 고 있지만 하나의 화면을 장식하기 위해 유사한 부류의 소재들이 의도적으로 취사선택되어 그룹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옥좌 앞 스물 네 명의 장로들’에는 성인남녀의 한 쪽 눈이 그려져 있다. ‘묵시록의 네 기 사들’에서는 다양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 사람의 손이,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봉인 개봉’에서는 인종과 연령 그리고
성별이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 ‘일곱 번째 봉인의 개봉과 네 번의 나팔소리’를 묘사한 판화에서 나타난 심판의 타오르는 불꽃은 꽃으로 번안되었다. ‘죽음의 네 천사들’이 검을 휘두르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처단하는 장 면에는 독일의 클래식 자동차가, ‘묵시록의 여인과 일곱 머리 용’을 주제로 하고 있는 판화에서는 벌과 벌집이 나타 난다. ‘어린양의 경배’에는 소와 돼지, 토끼, 염소 등과 같은 동물들이, ‘대탕녀 바빌론’을 상징하는 판화 작품에는 꿀 로 가득한 벌집과 먹음직한 무화과 열매 그리고 설탕이 녹아내린 케이크가 더해졌다. 묵시록 시리즈를 구성하는 마 지막 장인 ‘지옥 열쇠를 가진 천사’에는 다면체 도형들이 중력이 사라진 듯 공간을 떠다닌다.
이상에서 언급된 선적인 요소를 통한 속도감 부여와 공간적 확장 그리고 코믹 북에서나 나올 법한 말풍선이나 파편 으로 제시된 글자들과 덧입혀진 이미지들은 원작의 내용이나 맥락과 전혀 관계없이 이경미의 시리즈 전반에서 공통 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가 뒤러의 작업에 개입하는 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원작에 대한 해석이나 재해석 혹 은 의미론적 접근과는 처음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 조형적 요소의 형식적 가미를 통해 평면적인 화면에 공간을, 말 하지 않는 등장인물들에게 언어를 그리고 검은 선으로 묘사된 대상들에게는 색채를 선물했다. 작가의 이러한 개입 은 그가 뒤러의 작업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유추케 해 준다. 뒤러의 판화를 읽어가면서 그는 이것 이 중세와 르네상스가 교차되던 혼돈의 시기에 정보전달은 물론이거니와 대중적 의식을 자극하는 매스미디어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일상의 대상들을 콜라 주 형식으로 덧입힌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뉴 버티컬 페인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손으로 그려진 그 림이다. 이 사실이 감상자들의 인식에 미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시대가 달라지면 그 시대에 통용되는 소통 수단들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경미는 뒤러의 원작을 손수 확대 모사함 으로써, 아니 정확히 말해 뒤러의 목판화 작업을 회화작업으로 번안하면서 과거의 매체에 현재성을 불어 넣었다. 시 간의 축을 종과 횡으로 나누고 개별적 정보들을 하나의 화면에 종합하고 있는 이경미의 뉴 버티칼 페인팅 시리즈는 메타적 매체 비평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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