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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광일 개인전 《알이랑: 하나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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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행복 그리고 자유를 동반한 민들레 홀씨의 하늘 여행

 

신 항 섭 (미술평론가)

 

늦은 봄날이면 깃털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천지사방 날아다니는 민들레 홀씨와 마주치게 된다. 홀씨가 자유롭게 바람에 날리는 걸 보면 덩달아 몸이 가벼워지는 듯싶다. 바람결을 타며 중력을 거부하는 듯한 홀씨의 자유자재한 몸짓은 상상을 자극하고 몽환적인 환상 속으로 빠뜨린다. 이러한 민들레 홀씨의 존재 방식은 꿈을 촉발케 한다. 어른이어도 홀씨의 비행을 보면 어린이의 천진무구한 꿈이 살아나는 듯싶은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민들레 홀씨에는 그런 마법이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화가가 그림의 소재로 삼았고, 이 순간에도 어느 누군가의 화폭 위에서 묘사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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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광일, 기도 Prayer, 70x200㎝x3, Powder Color+Powder Stone, 2001.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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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광일, 명상 Meditation, 20×24㎝, Powder Color+Powder Stone, 2025.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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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광일, 소녀의 꿈  A girl's dream,  73×95㎝,   Powder Color+Powder Stone,   2001.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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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광일, 피리소리 들으며 While listening to the flute, 54×45㎝, Powder Color+Powder Stone,  2001.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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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광일, 순례  pilgrimage,  40×40㎝,   Powder Color+Powder Stone,   2025. © 작가 

 

류광일도 민들레 홀씨를 찬미하는 화가의 한 명이다. 하고 많은 소재 가운데 하필 민들레 홀씨인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민들레의 꽃말이 행복, 감사라는 걸 떠올리면 수긍하기 어렵지 않다. 그가 민들레 홀씨를 소재로 삼는 건 이처럼 좋은 의미의 꽃말과 더불어 일상적인 삶에서 받아들이는 여러 감정 표현에 적합하기 때문이지 싶다. 다시 말해 모든 일에 행복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일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궁합이 맞는 민들레 홀씨를 소재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리라.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채색 재료를 쓰는 채색화이다.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화조화 류의 그림과는 다르다. 화조화는 실상을 재현하든 아니면 관념적인 이미지이든 주관성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즉 조형적인 개별성을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좁다. 초기 작업 가운데 인물을 대상으로 작품 가운데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있다. 유채색을 절제하는 가운데 인물의 내면 표현에 역점을 둔 작품이다.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실내 공간을 현실적인 감각으로 접근한 이 작품만으로도 신뢰할 만한 작가적인 역량을 과시한다.

 

근래 작업 가운데 대작 몇 점은 화조화의 연장선상에 놓을 수 있는 작업이 있다. 가지가 긴 무궁화꽃이 담긴 화병을 중심에 두고 몇 가지 소품을 배치한 정물화 구성이다. 하지만 실내 공간이 아니라 하늘을 배경으로 하는 열린 공간이라는 점에서 화조나 정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화조나 정물에 관한 현대적인 해석이기도 해서 채색화의 확장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는 하다. 또한 최근에는 길이가 4미터에 달하는 대작인 에메랄드그린의 오로라 작품을 제작했다. 이는 신비스러운 우주의 마술인 오로라를 통해 하늘, 즉 신에의 경외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한마디로 그의 작가적인 시각은 하늘을 향한 기도와 간구라는 개인적인 신앙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한다.

 

이처럼 공간 구성의 확장성에 대한 이해 및 통찰은 소재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가치를 넘어 신을 향한 메신저로 변환한다. 따라서 그 자신이 보고 느끼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하늘을 향한 조형적인 확장성을 가지는 소재를 찾아 나서게 되었고, 운명처럼 민들레 홀씨를 소재로 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에게 민들레 홀씨는 단순히 감성을 자극하고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꽃씨의 아름다운 비행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가볍고 자유로운 비행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개인적인 신앙과 연계시킬 수 있는 소재로서의 가치에 착안한 것이다.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 몸을 싣고 창공을 멀리멀리 날아가 똑같은 모양의 홀씨를 퍼뜨리는 삶의 연속성, 즉 영원성에 관한 찬양이다. 조그만 하나의 씨앗을 세상 곳곳에 퍼뜨려 많은 사람이 홀씨의 아름다운 비행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심사인지 모른다. 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건 그 자신이 민들레 홀씨와 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 민들레 홀씨가 그려진 작품이 선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와 함께 민들레 꽃씨의 꽃말처럼 행복과 감사가 담긴 내용을 통해 종교적인 신심을 자극할 수 있다면, 홀씨의 이미지에는 다름 아닌 신앙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이 전제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는 민들레 홀씨에 개인적인 신앙과 관련한 영적인 상징체로의 의미를 담고자 한다. 사랑스럽고 투명한 존재로서의 홀씨는 다양한 방식으로 화면을 장식하면서 회화적인 공간에 꿈과 사랑과 희망 그리고 행복한 감정의 불을 지피고자 한다. 물론 홀씨의 비행을 보면서 모든 사람이 같은 감정을 가질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럼에도 홀씨는 여리고 부드러우며 투명한 이미지 안에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홀씨의 비행을 보면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그란 모양의 홀씨는 완전체로서의 상징성과 함께 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성을 가짐으로써 무원죄의 세상을 보는 듯하다. 맑고 투명하면서도 솜털보다도 더 가벼운 존재로서의 이미지가 여실하다. 민들레 홀씨가 화면 곳곳을 채우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이 가벼워지는 듯싶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하는 건 조형의 묘미이다. 홀씨의 존재를 보면서 덩달아 심신이 유희에 빠져드는 듯싶은 착각에 빠진다. 이것이야말로 민들레 홀씨가 가진 마법이고, 그의 그림이 추구하는 이상일 수 있다.


이상화된 현실로서의 민들레 홀씨의 비행은 다양한 상황을 연출한다. 노란 민들레 꽃이 띄엄띄엄 핀 푸른 초원 위, 하얀 구름 파란 하늘 향해 무리 지어 날아가는 홀씨와 노란 나비의 행렬은 그야말로 꿈 같은 정경이다. 의자와 탁자 그 위에 흰색의 포트에서 마치 알라딘 램프처럼 홀씨가 줄지어 피어오르는 가운데 별똥별이 가로지르는 작품도 있다. 이런 그림은 보는 것만으로 눈과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된다. 그런가 하면 파란 하늘 한가운데 둥근 방석처럼 보이는 풀밭에 의자가 놓여 있고, 민들레 꽃과 홀씨가 무리 지어 자리하면서 홀씨를 날리는 정경이 있다. 또한 무수한 별들이 명멸하는 밤하늘 아래 둥글고 투명한 원 안에 발을 쪼그려 앉은 여인과 홀씨들이 둥글게 집단을 이루면서, 바람에 흩어지는 이미지의 초현실적인 구성도 보인다.

 

홀씨의 이미지도 실제의 형태가 있는가 하면, 비눗방울 같은 원형의 이미지 안에 들어 있기도 하다. 이렇듯이 홀씨에 관한 다양한 조형적인 변주를 통해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지어내고 있다. 비눗방울과 홀씨는 가볍게 공중을 부유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이 둘의 조합은 문학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뿐만 아니라 노란 나비와 홀씨가 함께 나는 장면 역시 연관성이 있는 소재의 조합이다. 이처럼 그의 조형적인 변주는 세상을 세심히 관찰하는 작가적인 시각을 반영한다.


민들레 홀씨의 비상 또는 유희는 언제나 상승의 기대를 수반한다. 하늘 또는 우주는 성스러운 신앙의 대상이다. 무변한 우주야말로 신이 기거하는 거처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기에 그렇다. 거기로 향하는 홀씨의 비행은 신과의 매개를 전제로 한다. 바꾸어 말해 신을 향한 묵언의 메시지인 셈이다.

 

그의 조형적인 상상은 부채와 같은 일상적인 소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와 바람을 타고 나는 민들레 홀씨의 조합 역시 매우 잘 어우러진다. 화병의 민들레 홀씨는 정물화의 범주로 볼 수 있고, 여인의 플루트 연주에 춤추듯 나는 민들레 홀씨 또한 상성이 좋다. 그러고 보면 그 어떤 소재와의 조합 또는 내용이 무엇이든지 자연스러운 관계를 보여준다. 모두가 일상생활과 연관성을 가진 소재 및 내용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그렇다.

 

그는 딱히 필요한 외출을 제외하고는 칩거하듯 작업실과 집만을 오가며 작업하는 데 몰두한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이루려 하기보다는 그림 그리는 일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에게 그림이란 신앙에 관한 개인적인 일기이자 고백일 수도 있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그런 진심과 정성이 가득하다. 이러한 마음결이 민들레 홀씨라는 존재를 통해 하늘에 전해지기를 간구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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