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작가, 브라질 상파울루 피나코테카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의사擬似-구어체Quasi-Colloquial》 개최
브라질 상파울루 피나코테카 미술관Pinacoteca de São Pau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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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머니즘과 같은 반권위적인 영적 지향을 다루는 한지 콜라주 연작 〈황홀망恍惚網Mesmerizing Mesh〉(2021-)도 선보인다. 방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본 연작 중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종이의 물성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해당 시리즈의 초기 작업에서 작가는 샤머니즘 및 민간 신앙의 의례에 사용되는 모티프와 사물에 중점을 둔 한편, 최근에는 손으로 염색된 다색의 배경 위에 콜라주들을 진열하고 슬라브 전통 종이공예인 비치난키wycinanki에서 비롯된 동식물 모티프를 콜라주에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지를 접고 자르고 구멍 내는 행위를 통해 양혜규는 예술가와 샤먼들이 공유하는 방법론, 즉 세속적인 물질 너머로 내딛는 “신비주의적 도약”을 탐색한다.
한편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작업 〈융합된 분산의 연대기 – 뒤라스와 윤A Chronology of Conflated Dispersion – Duras and Yun〉(2018)과 〈융합된 분산의 연대기 – 뒤라스와 오웰A Chronology of Conflated Dispersion – Duras and Orwell〉(2021)은 프랑스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1914-1996), 한국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1903-1950)을 한자리로 불러 모은다. 세 역사적 인물의 연대기를 주관적 관점으로 교차 편집한 이 작업은 식민주의와 냉전시대를 비롯한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를 살아낸 그들의 생애에 들어서게 하는 동시에, 아시아 및 유럽과 복잡하게 뒤얽힌 작가의 배경을 반영한다.
《의사-구어체》전은 그동안 양혜규의 전시와 프로젝트에 여러 차례 등장해온 ‘의사擬似quasi’라는 개념을 도입해 원본성, 온전함, 그리고 주류와 같은 명제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원본과 거의 흡사하지만 결코 원본은 아니라는 의미를 지닌 ‘의사’라는 수식어는 일견 그 뜻이 명백해 보이는 ‘구어체’ 라는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브라질이 고유의 토착성을 바탕으로 서구적 모더니즘을 소화한 방식은 일찍이 작가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이러한 방법론을 상기시키는 원색의 블라인드 조각이 전시장을 점유한다.
양혜규에게 각 전시는 해당 지역의 장소성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바깥’이라는 작가의 물리적, 사회적 위치를 강력하게 인지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양혜규가 어떤 언어도 유창한 구어체로 구사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집요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작가의 예술은 그만의 고유한 구어체로 거듭난다.
브라질에서 첫 개인전을 선보이게 된 양혜규와 상파울루와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제2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초기 주요작으로 일컬어지는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블라인드 룸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 – Blind Room〉(2006), 〈비디오 삼부작Video Trilogy〉(2004-2006), 〈창고 피스Storage Piece〉(2004) 등 다수의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양혜규는 이번 피나코테카 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필두로 올해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오는 4월 19일 작가는 일본 도쿄 모리 미술관Mori Art Museum의 그룹전 《전지구적 수업: 교과목에 따른 현대미술World Classroom: Contemporary Art Through School Subjects》에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며, 같은 달인 4월 22일 벨기에 겐트 현대미술관S.M.A.K.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현재 준비 중이다. 양혜규의 첫 벨기에 기관 전시인 이번 개인전은 평면 작업 〈봄의 원천은 움직임을 추적하는 데 있다The Source of Spring is in the Trace of Movement〉(2021)를 비롯해, 작가의 집 곳곳에 설치된 라디에이터의 형상을 차용한 ‘가전기기 조각’ 〈얀가街 5번지Jahnstraße 5〉(2017), 금속 방울을 짜인 직물처럼 엮어 바닥에 펼쳐 보이는 〈의례진에 걸친 소리 나는 수호물Sonic Guard over Ceremonial Formation〉(2022) 등 주요작을 폭넓게 선보인다. 이후 5월엔 캔버라에 위치한 호주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ustralia에서 《양혜규: 부터-까지로부터의 변화로부터Haegue Yang: Changing From From To From》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2024년 가을에는 영국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서베이 전시가 예정되어 있으며, 유럽 순회전으로 이어질 계획이다.
한편 양혜규는 최근 호안 미로 상Joan Miró Prize의 최종 후보 5인에 선정되었다. 호안 미로 재단이 지난 2007년 제정한 이 상은 호안 미로가 남긴 문화적 유산을 바탕으로 그의 탐구, 혁신, 헌신 및 자유의 정신을 이어나가는 독창적인 현대미술가에게 수여된다. 호안 미로 상의 역대 수상자로는 날리니 말라니Nalini Malani(2019), 로니 혼Roni Horn(2013),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2007) 등이 있으며, 올해의 최종 수상자는 오는 5월 말 발표될 예정이다.
작가 소개
양혜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다양한 작품과 왕성한 전시로 동시대 작가들 중 단연 돋보이는 행보를 보여온 그는 1994년 독일로 이주하여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Städelschule에서 마이스터슐러 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년 볼프강 한 미술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하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 표창) 미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2022년 싱가포르 비엔날레가 주최하는 제13회 베네세 상을 수상했다.
코펜하겐 국립미술관(2022), 영국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2020), 뉴욕 현대미술관(2019), 마이애미 비치 더 바스(2019),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2018), 파리 퐁피두 센터(2016), 베이징 울렌스 현대미술센터(2015), 리움미술관(2015),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2012), 미국 아스펜 미술관(2011), 미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2009) 등 전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카셀 도큐멘타 13 (2012),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2009) 한국관 대표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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