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 Over the Layers II
2004년 국제갤러리에서의 전시 《복선伏線을 넘어서(Over the Layers)》의 후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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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전경
국제갤러리는 2023년 2월 9일부터 3월 19일까지 홍승혜의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를 개최한다. 1997년부터 컴퓨터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해온 홍승혜는 윈도우 기본 내장 프로그램으로 깔려 있는 그림판에서 시작해 포토샵을 주로 운용하면서, 이 세상을 관통하는 시각적 원리와 규칙을 상정해 픽셀로 구성된 자신만의 무대를 꾸준히 확장해 왔다. 방법론이 곧 작업의 내용으로 귀결되곤 하는 작가에게 있어 지난 작업을 돌아보고 고찰하는 것은 또 하나의 작업방식이 된다. 개인전 제목으로도 쓰인 바 있는 ‘회상’은 홍승혜의 작업 방식을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론인 셈이다. 끝없이 자신의 작업을 복기하며 과거 작업을 재료 삼아 새로운 층위를 쌓아가는 그에게 시간의 흐름은 가장 풍성한 자산이다.
홍승혜는 1997년 국제갤러리 개인전 《유기적 기하학》을 시작으로 컴퓨터 픽셀의 구축을 기반으로 한 실재 공간의 운영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평면에서 벗어나 시공간의 레이어를 담고자 했던 2004년 국제갤러리에서의 전시 《복선伏線을 넘어서(Over the Layers)》의 후속편으로 구상된 본 전시에서 작가는 네모의 그리드를 탈피한다. 래스터(raster) 파일을 생산하는 포토샵에 더해 벡터(vector) 문법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새롭게 구사하게 되면서 홍승혜의 증식이 다시 한번 새로운 차원의 확장을 거친 셈이다. 픽셀로 깨질 염려 없이 축소와 확대의 저변을 넓히고, 픽셀 기반의 틀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모양새의 도형을 그리게 된 작가가 근 20여년 만에 선보이는 《복선伏線을 넘어서(Over the Layers)》 제2탄은 그새 폭발적으로 증식한 홍승혜의 레이어들이 만드는 무지개 너머의 세상으로 관람객을 안내하고자 한다.
자신의 작업을 ‘유기적 기하학’이라 설명하는 작가는 그 표현이 내포한 모순을 앞장서 피력해오기도 했다. 본디 정지된 순간의 절대적으로 안정된 상태인 ‘기하학’ 앞에 변화하는 운동의 조건을 칭하는 ‘유기적’이란 수식어는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아우르며 매 전시 환경에 맞춰 자신만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내는 작가는 모순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그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주창한다.
홍승혜, 〈모던 타임스〉, Birch plywood, acrylic latex paint, 90.3 x 40 x 6.5 cm , 2023,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홍승혜, 〈꽃병〉, Birch plywood, acrylic latex paint, 23 × 50 × 63.5 cm (vase), 160 × 5 × 1.5 cm (3 bars) , 2023,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홍승혜, 〈꽃이 피면〉, Birch plywood, acrylic latex paint, 60 × 80 × 81.5 cm, 160 × 5 × 1.5 cm (1 bar) , 2023,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홍승혜, 〈콘솔/테이블〉, Birch plywood, acrylic latex paint, 60 × 80 × 81.5 cm , 2023,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홍승혜, 〈나선〉, Birch plywood, acrylic latex paint, 60 × 60 × 38 cm , 2023,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모순의 양 극단을 포용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예기치 못한 조건들을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축하는 규칙으로 삼는 데서 홍승혜는 비로소 예술의 의의를 찾는다. 예술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힘, 예술이 인간의 정신에 자유를 부여할 수 있는 힘에 흥미를 느끼는 작가에게 결국 유기적 기하학의 논리란 근원적인 예술론이자 삶의 방식이기까지 한 셈이다. 이렇듯, 1939년 빅터 플레밍 감독의 〈오즈의 마법사〉 영화 주제가 ‘Over the Rainbow’에서 착안한 전시 제목은 무지개를 구성하는 여러 겹의 레이어를 지시할 뿐 아니라 노래 가사가 읊듯 ‘무지개 저편에 날고 있는 파랑새’를 쫒는 여정의 서막이기도 하다.
국제갤러리 서울점의 1관과 3관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에서 홍승혜는 벽화부터 조각, 사운드, 조명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다채로운 문법을 아낌없이 선보인다. 벽화는 가장 효율적으로 공간을 변주함과 동시에 회화를 실제의 건축에 접목시키는, 일종의 ‘홍승혜식 레디메이드’ 기법으로 자주 소환되어온 기법인데, 이번에는 특히 1관의 두 전시장 벽을 마티스에게 헌정하고자 한다. 말년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 벽면 가득 장식하던 마티스의 파피에 데쿠페(papier découpé)를 기리며 홍승혜는 1관 각 방의 벽면 모서리를 오려낸 〈레몬 자르기(Le Citron découpé/Hommage à Matisse)〉와 〈하늘 자르기(Le ciel découpé/Hommage à Matisse)〉를 제시한다.
1관의 바깥쪽 작은 공간에는 작가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새로이 배우기 시작한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에서 다양한 툴을 활용해 새로운 언어를 습득해 나가는 연습 과정을 작품화한 평면 작업들이 설치된다. 별, 꽃, 타원 등 사각형의 틀에서 벗어나 함께 자유로워진 작가의 색채와 선을 엿볼 수 있다. 한편 1관 안쪽 전시장에서는 그러한 평면 이미지들이 입체가 되어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작가의 어린시절 별명에 착안한 자화상 〈홍당무〉와 함께 시작되는 전시 설치는 기계에 대한 애정을 표방하는 〈모던 타임스〉 벽면 조각품에서부터 하늘과 우주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별 기반의 여러 오브제에 이르기까지, 조형적으로 구현된 작가의 렉시콘(lexicon)이 공간에 흩뿌려져 있는 양상이다.
유기적인 기하학의 모순을 헤쳐 나가는 홍승혜의 작업방식에 대해 일찍이 “적응력이 뛰어난 생명적인 공간을 얻어내는 그녀만의 독특한 프로세스”를 그 주안점으로 꼽았던 평론가 황인은 그의 작업이 “공간을 최소한의 형태로 환원시키는 데에 주안점을 두기 보다는 그렇게 형성된 최소한의 형태나 공간에 약간은 불안한 질서를 부여하여 증식시키고 배양하고 있는 쪽”이라 서술한 바 있다. 이러한 홍승혜의 공간배양법 논리에 따라 1관 안쪽 방에서는 이른바 순수한 미술 조형물 뿐 아니라 테이블과 조명기구 등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러 오브제가 유희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3관에서는 앞서 소개된 모든 조형적 훈련이 총체적으로 만들어내는 하나의 내러티브를 시연한다.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된 무대에서, 영상과 사운드를 동반한 픽토그램 인형들의 무도회가 펼쳐진다.
2009년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홍승혜는 이미 “그리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09년이면, 작가가 1997년 이래 12년 동안 격자무늬의 감옥 안에 지냈을 시점이다. 입체작업을 만들면서는 실제 공간 안에서 그리드가 사선으로 보이는 효과를 꾀하는 등, 그동안 아주 조금씩 격자의 틀을 벗어나오던 홍승혜가 유년기의 추억을 회상하며 만든 이번 전시에서 비로소 또 한 번의 자유를 꾀한다.
1997년 처음 컴퓨터를 사용해 이미지들을 생산하던 과정에서 작가가 자신의 생각의 파편들을 적어 둔 작업노트에는 ‘이야기의 서식처’, ‘헨젤과 그레텔, 과자로 만든 집’, ‘시(詩)’ 등의 키워드들이 적혀 있다. ‘절대적 이미지’와 ‘절대적 형상’의 논리를 탐구하되 그에 대한 환상을 꾸준히 깨고자 ‘숨바꼭질’ 해온 작가의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이켜본다면 1997년도의 작업노트는 작가의 메니페스토였는지도 모른다. 그 중 특히 ‘시’라는 키워드는 홍승혜 작업의 핵심을 울리는 단어다. 사랑하면 다 시인이 되게 마련이다. 동료 작가며, 학생이며, 협업자며, 곁에 있는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골초 소녀 마법사’ 홍승혜에 의한, 홍승혜를 향한 애정 안에서 우리는 알록달록한 시를 읊으며 홍승혜의 전시와 함께 2023년의 문을 연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198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1986년 파 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86년부터 현재까지 《유기적 기하학》(국제갤러리, 1997), 《광장사각廣場四角》(아 뜰리에 에르메스, 2012), 《회상回想》(국제갤러리, 2014), 《점·선·면》(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6)을 비롯하여 30 여 회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단체전으로는 광주, 부산, 서울 미디어시티 등 국내 주요 비엔날레를 포함,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및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 이탈리아 볼로냐 현대미술관 등 다수의 국내외 주요 기관 전시에 참여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성곡미술 관, 아트선재센터 등이 있으며 1997년 토탈 미술상, 2007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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