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 정글을 증명하다/퐁피두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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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퐁피두센터 지하는 기획전을 보고 나오면서 슬쩍 한 번 뭔가 더 볼거리가 없나 둘러 볼 때 가보는 곳이다. 그런데 가끔 이 곳에서 의미있는 전시들을 만날 때는 뭔가 횡재한 기분이다. 예를 들어 <선사시대 특별전>이나 <68혁명기념전> 을 보면서 예상치 못한 수확을 거두었던 것 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번 <칼레,정글을 증명하다> 전의 경우 다른 지하 전시와는 달리 지하철에서까지 광고하는것을 보고 기억해뒀다가 마침 한국에서 친구가 오던 날 함께 관람했다.
칼레하면 우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의 대명사인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떠올린다. 항구도시 칼레에 바다표범이 자주 출몰한다는 소문에 한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난민문제를 상징하는 도시로 대두되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도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알았다.
칼레 난민촌은 세계난민촌 중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곳으로 아프리카 난민들이 영국으로 가기 위해 머무는 곳이라 한다. 칼레는 영국으로 가는 길목으로 프랑스와 영국의 조약에 의해 영국 입국심사를 이 곳에서 하게 되면서 칼레에 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난민들은 영국으로 가기 위해 도버해협을 건너야 하는데 이때 페리나 열차에 몰래 타는 난민을 막기 위해 칼레 난민촌 주변에는 높은 장벽을 세웠다. 겉으로는 진입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들과 현지주민을 보호하겠다는 것이지만 난민을 막기 위한 장치라 한다. 이러한 난민 사태의 근본 원인은 미국과 유럽 열강들이 중동과 아프리카의 자원을 약탈하고 착취한 역사에서 시작되었다.
전시장은 굉장히 작은 규모였는데 그 곳에 난민들의 실상이 담긴 사진들과 난민 문제를 다룬 프랑스 주간지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명에 '정글' 이 들어가 있는 이유는 2016년 10월에 해체되었지만 칼레 시 외곽 판자촌의 별명이 정글이었기 때문이다. 그 '정글' 에 정착한 난민과 망명자들의 생활상을 '브뤼노 세라롱그'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와 언론에 보도되었던 사진, 주민들의 증언들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전화충전소/ 이민자들을 위한 판자촌 칼레>
처음에는 전시장이 작고 볼 수 있는 사진도 소량인 점이 약간 아쉬웠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타인의 고통을 그저 볼거리로 소비하려 한 듯하여 바로 반성했다. 칼레의 '정글' 속 모습은 주민들에게는 처절한 생존의 현장이고 목숨을 건 절박한 현실인데 그저 관음적(?)태도로 전시를 보려했던 점이 많이 부끄러웠다.
같이 전시를 관람한 친구는 독문학도 답게 수잔손택의 '타인의 고통' 을 떠올렸다며 타자가 존재하기에 내가 있는 것인데 그들의 고통을 나몰라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난민촌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난민이나 이민자 수용 문제는 프랑스 ,영국, 독일같은 나라들에 국한된 것이므로 우리나라와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했던 부분도 반성했다. 실제로 얼마전 우리나라 제주도에 예멘 난민 문제가 논란이 될 때가 있었다. 평소 인도적으로는 난민이 안타깝고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우리나라에 난민이 왔을 때 거리를 두려 했기 때문이다.
'파리' 라는 화려한 도시에 학생 신분으로 살고 있기에 내 눈 앞에 당장 난민의 현실과 상황이 보이지 않을 뿐이지 지구촌 곳곳에 인도적 손길이 필요한 곳은 너무도 많다는 사실에 마음이 복잡해지고 죄책감마저 들었다. 유럽 국가들로서는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상황은 안타깝지만 무턱대고 수용할 수 만은 없으리라. 난민의 일시적 수용이 임시방편은 될 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므로 점점 난민 문제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전시들을 통해 난민 문제를 알리고 인도적 측면 뿐아니라 정치적 이슈로 부각시켜서 국제 사회가 현명한 해결책을 찾는 계기는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름의 결론은 내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