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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미 : 회화 위의 대기적 신체 (Atmospheric Body on the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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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미 : 회화 위의 대기적 신체 (Atmospheric Body on the Painting)

유진상 /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김춘미의 회화가 제기하는 가장 흥미로운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화가의 몸에 관한 것이다. 근대회화에서 현대회화로 이행되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징후는 관객들이 화가의 신체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신체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신체에 들러붙은 습관, 증상, 심리적 고착, 고정관념, 시대적 유행, 후천적 학습 등의 수많은 조건들에 의해 화가의 신체가 조형되어 그것이 붓과 물감의 운동과 작용, 그로 인한 결과들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회화에 있어 화가의 신체가 결정적인 요소라는 사실은 추상표현주의 이후 이미 명백한 사실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화가 스스로 자신의 신체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의 특징들을 알아내어, 관절과 근육의 움직임들로부터 상수와 변수들을 도구처럼 활용하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피카소, 아실 고르키, 윌렘 드쿠닝, 사이 톰블리, 조앤 미첼 등의 사례들에서 우리는 이러한 급진적 변혁이 회화를 갱신하고 재정의 해 온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 회화의 발전을 통해 신체는 붓의 유연성과 캔버스의 탄성과 함께 정동을 일으키며 가장 핵심적인 도구로 진화하였다. 그 중에서도 톰블리와 미첼은 완전히 새로운 회화적 신체를 발명했다. 그들은 회화에서 알려진 모든 익숙한 관념의 흔적들을 삭제하고, 진정으로 낯선, 아무도 본 적이 없는 회화적 현상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회화의 ‘바깥’을 향한 모험이 시작되었다. 김춘미의 회화는 이 놀라운 회화사의 계보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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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미 Choon Mi Kim, The Drive, 2026, Oil on linen, 180 x 220 cm  © 작가, 리안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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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미 Choon Mi Kim, 시-이(Si-i), 2026, Oil on linen, 180 x 250 cm  © 작가, 리안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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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미 Choon Mi Kim, Smudged Asterisk, 2026, Oil on linen, 220 x 180 cm. © 작가, 리안갤러리 
 

회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이 없다. 예시들만 있을 뿐이다. 회화가 드로잉과 다른 점은 그것인 인간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살과 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유화에 있어 그것은 끈적이거나 흘러내리는 체액, 그리고 뒤섞여 굳은 살점의 덩어리들이 엉겨붙은, 징그럽거나 관능적인 표면들로 이루어진다. 때로는 흥건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꾸덕꾸덕 하기도 한 유화의 물성은 줄줄 흐르는 상처의 농과 성적인 흔적들과 부패하는 유기질과 여기저기 격렬하게 튀어있는 얼룩들로 인해 더욱 더 분명하게 신체를 환기시킨다. 유화가 선정적인 감각을 수반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며, 관객이 유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신체와 화면이 일으키는 동기화 때문이다. 그리고 화가는 이 모든 요소들을 캔버스 위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만든다. 두 개의 동사가 있다. ‘바르다’(to apply)와 ‘묻히다’(to mark)가 그것이다. ‘바르기’는 물감을 캔버스의 표면에 펴바르는 것이다. 붓의 움직임은 화면 위에서 물감의 안착과 그것의 가져올 연쇄적인 효과를 위해 천천히 그리고 의도적으로, 때로는 반복을 통해 주어진 평면과 면적 위에서 레이어를 쌓는다. ‘묻히기’는 그것과 다르다. 그것의 핵심은 물감이 아니다. 물감은 ‘불의의 사건’ 혹은 ‘신체적 통과’에 의해 불가피하게 그리고 부수적으로 남겨진 흔적일 뿐이다. 예컨대, <시-이>는 밝은 파란색 휘갈김으로 채워진 공간 위에 붉은색으로 ‘시-이’를 쓴 것이다. 김춘미의 작품에서 ‘쓰기’(calligraphy)는 중요한 형식적 요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회화적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관념적 ‘사건’이기도 하다. 즉 ‘시-이’는 그것을 쓰는 과정에서 본래의 형태나 의미와는 다른 것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어난 사건의 속성이다. 이 사건은 화가의 의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화가의 신체를 통과하는 ‘바깥의 힘’에 의해 일어난다. 화가는 그 힘이 유래하는 공간으로 나아가, 그것을 유도하고, 그것에 계기를 마련하고, 자신의 신체에 그것이 통과하도록 한다. ‘시-이’는 어느 의미항이나 형태항에도 속하지 않는 빈 공간을 가리키는 동시에 회화 안에서 그것의 흔적으로 남는다. 이는 머스 커닝햄과 같은 무용수의 신체에 일어나는 ‘비-유기적 사건들’과 유사하다. 무용수가 ‘비-유기적’ 힘들로 하여금 자신을 통과하도록 신체를 재구성하듯, 화가 역시 자신의 신체를 빠르고 정교하게 재구성한다. 그 목적은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미의 발생을 둘러싼 조건들을 포획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전시의 제목인 《Isobars In Down》은 ‘겨울 패딩 안의 등압선’으로 번역할 수 있다. 등압선은 같은 기압대의 장소들을 지도상에 마치 등고선처럼 연결한 것이다. 작가는 한국의 겨울에 추운 작업실에서 두꺼운 패딩을 입고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몸이 그 안에서 무형의 공기의 흐름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Low Pressure>는 작가의 신체가 어떻게 무대로 바뀌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테두리의 프레임과 왼쪽 모서리의 조명으로 인한 파란 그림자, 차가울 만큼 푸르고 옅은 공기, 배경으로 보이는 밤의 먼 산과 근경의 긴 녹색 풀들은 드라마를 위한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강렬한 두 개의 핏빛 얼룩이 주인공들처럼 화면의 중앙에 자리잡는다. 이 장면에 대해 작가는 ‘낮은 대기압’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것은 우울하고 조용하며 낮은 비극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있고, 밝고 긴 밤이 이어지는 북국에서의 사랑과 열정에 대한 서사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작가의 몸을 통과하는 대기의 흐름에서 비롯된다. 

<Shared Stems>는 밝고 청량한 에메랄드 빛 공기를 가르며 흔들리는 붉은 선들을 보여주는 이면화(diptych)이다. 조금 뒤쪽의 긴 연두색 선들과 앞쪽의 붉은 명아주(Redroot Pigweed) 줄기 같은 짙은 선들은 마주보는 두 개의 다른 대역(bandwidth)들로 대위(counterpoint)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오른쪽 화면의 왼편, 그러니까 전체 그림의 중심에 가까운 공간에서 이 두 개의 대역들은 서로 뒤엉키고 부딪히며 혼선(crosstalk)을 일으키면서 기온을 끌어올린다. 이 사건 주변의 공기는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는데, 풀처럼 보이는 붉은 선들은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역사적 증인들처럼 영원히 반복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Sea of Thin Light>는 반대로 강렬한 선들 대신 엷게 중첩된 노란색, 녹색, 푸른색의 공기층들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의 ‘엷은 빛’이 가리키는 것처럼, 화면은 섬세하고 예민하게 물감층을 뚫고 나오는 캔버스의 밝은 빛으로 채워져 있다. 화가가 하는 일은 그 빛을 끌어올리고, 그것을 장면으로 바꾸는 것이다. 화면은 아래쪽의 노란 부분과 그 위의 좀 더 짙은 푸른색, 그리고 위쪽의 좀 더 연두색이 감도는 부분으로 삼등분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매우 절제된, 흐릿한 선들이 가로지른다. 마치 어스름한 시간대에 무대에 등장하는 신화적 존재들처럼 이들은 희박한 대기 속에서 느리고 끈적이는 시간 속을 지나간다. 

김춘미의 회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빠른 속도다. 그의 그림은 흰색 캔버스 위에 단 한 번의 붓질로 그어진 선들로 채워진다. 많은 경우, 빠르게 스치거나 때로는 뭉개진 흐릿한 흔적들 위에 단지 몇 개의 강렬한 궤적들이 남기도 한다. 화면은 무심함(detachment), 게으름(indolence), 의도적인 방기(negligence), 서툴음(gaucherie)의 흔적들로 채워져 있다. 그의 그림은 모두의 기대를 벗어난다. 거기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장면은 미완으로 남는 대신, 모든 것이 해독 불가능한 잔해, 잉여가 된다. 체계적으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듯한, 완결되지 않은, 이상하고 낯선 장면. 거기가 김춘미의 회화가 감응하는 곳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비껴난 무언가를 실행한다. 화가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indicible), 지속적인 해방과의 조우다. 김춘미의 작가 노트에서 보듯 그것은 삶의 순간들을 비켜지나가는 이것저것들의 목격이며, 그것들이 화가의 뇌리에 박혀 어떻게 신체를 통과하는지는 작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화가는 자신의 몸에 떠오르는 기억과 감각의 조각들을 회화적 순간들로 바꾸어 캔버스 위에 기록한다. 때로는 짧고 단속적인 붓질로, 때로는 날카롭고 충동적인 긴 선들로, 또 때로는 흐릿하게 뭉개진 흔적들로. 화가가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하다. 그의 신체와 화면의 관계를 조율함에 있어 가장 위험한 선택지를 향하는 것이다. 

붉은색, 노란색, 청색, 초록색처럼 대체로 원색을 그대로 사용하는 자신의 팔레트에 대해 김춘미는 자연의 색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색채들은 재현적이기보다는 관념적이다. 색채와 연관된 사물들의 존재감 대신, 색채 자체의 물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사실 많은 경우에 김춘미의 물감은 그 자체 이외의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는다. 그가 사용하는 붉은색은 실제로 어떤 자연의 대상과도 연관이 없어 보인다. <Lemony Red>는 핑크빛 붉은색과 밝은 녹색, 청색으로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는 ‘레몬빛’ 노란색이 없다. 제목이 지시하는 색은 관객의 뇌리에만 존재한다. 부재는 강렬한 현전으로 이어진다. 화면 전체를 뒤덮고 있는 붉은색으로 인해, 부재하는 레몬빛은 마치 시인 이상(李箱)의 ‘레몬’처럼 실제의 이면을 채운다. 김춘미의 회화에서는 최소한의 팔레트, 최소한의 스펙트럼, 미니멀한 빛의 개입이 마치 규칙처럼 일관되게 나타난다. 물감들은 흰색 캔버스 위에 얇게 덮이거나 그냥 가로질러 간다. 대부분의 빛은 원래의 캔버스의 빛이다. 이 때문에 그의 그림이 미완처럼 보일 테지만, 반대로 이 때문에 화면은 가장 순수한 광원, 즉 캔버스의 백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원색의 팔레트는 이 빛으로 인해 최대한의 채도와 색채의 조합을 이끌어낸다. 가장 흐릿한 뉘앙스의 물감조차 그것의 존재감을 극한으로 끌어낸다. 회화의 가장 아름다운 빛은 흰 캔버스의 바닥이 뿜어내는 빛이다. 이 빛은 작가의 신체가 캔버스와 닿는 순간의 강렬함과 탄성, 리듬에 따라 물감을 헤아릴 수 없는 변주의 결과들로 승화시킨다. 우리가 이것에 몰입하는 이유는 이 사건들이 놀랍기 때문이다. 이것이 회화의 본질이다. <Key in Landscape>는 노란색과 파란색, 그리고 붉은색으로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캔버스의 흰빛을 가장 극적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여기서 ‘열쇠’는 음악적 의미에서의 ‘해결’(resolution)을 가리킨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공기층을 뚫고 붉은색의 덩어리가 전면에 나타난다. 왼쪽 위에는 이 주인공의 그림자가 허공에 투영되어 있다. 최소한의 제스처만 있을 뿐이다. 이 명백하고 간결한 사태의 흔적과 잔해들을 몇 시간이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우리 존재의 본성과 놀랍도록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회화는 수 천 억개의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시선은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그 세부를 하염없이 응시한다. 세부가 보여주는 사건들은 회화를 바라보는 이의 뇌리 구석구석에 각인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무한히 반복된다. 김춘미의 팔레트는 복잡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의 회화적 구조가 고갈되지 않는 조합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회화는 단 한 개의 프레임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류 모두가 하루에도 수 천 만개의 프레임을 소비하는 데이터 미디어의 시대에 ‘원-프레임’ 예술의 존재는 기적에 가깝다. 오늘날 회화를 보는 이들은 50년 전의 관객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이들이다. 그들은 작품 앞에 오기 전에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미지와 정보와 지식들을 소비한, 맥락과 의미들로 가득 채워진 상태가 된다. 김춘미의 회화-기계는 그 모든 것을 바꾼다. 그들이 김춘미의 작품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떤 낯선 장소다. 그곳에는 화가도 없고 데이터도 없으며, 시계도 없고 신들도 없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수없이 많은 세계의 단서들로 채워진 장소. 전혀 다른 장소. 진정한 의미의 ‘이세계(異世界)’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의 서사와 시간의 흐름은 전적으로 그림을 마주한 사람의 내면에서 생성된다. 그가 바라보는 그림은 적고, 희박하며, 남겨져 있다. 그것은 바르트가 톰블리에 대해 언급한 ‘Non Multa Sed Multum’(많은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이다)을 떠올린다. 희박하지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 아무도 없지만, 모두가 자리하고 있는 장소. 텅 빈 고원, 고요 속에서 끓어오르는 절정, 의미를 알 수 없는 외침, 무한히 반복하는 예외적 순간. 김춘미의 회화가 가고 있는 곳이다. 

평론 제공: 리안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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