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사보아 : 별장에서 생활-프랑수아즈 페트로비치
본문
La villa Savoye à Poissy : Habiter la villa, carte blanche à l'artiste plasticienne Françoise Pétrovitch
2023년 5월 24일부터 9월 24일까지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는 파리에서 가까운 외곽인 뿌아시에 위치한 사보아 가문의 별장이다. 또한 2016년부터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모던 무브먼트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작년에 다녀오고 1년만의 재방문인 만큼 빌라 사보아에 대한 이야기로 기억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사부아의 땅은 7헥타르에 달하는데, 르 코르뷔지에는 이 환경을 건드리지 않은 채 초원 위의 저택을 짓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구현하기 위해 현장에서 매우 적극적이었는데 그래서 이 빌라에는 당대 새로운 건축 재료였던 콘크리트와 필로티, 띠 모양의 긴 창, 평평한 지붕, 파사드 등과 같은 새로운 건설 기술이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디자인은 전통적인 석조물에 익숙했던 당시 건축 회사들에게는 이해되기 어려웠다고 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집을 짓는 것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유효한 진정한 "건축 산책로 [Architectural walk (ENG), Promenade architecturale (FR)]" 를 만들어 내고 있다. 빌라를 무대로 만들고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며 집과 풍경의 전체 건축에 대한 관점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선형 계단과 공간의 연속성을 시각화 할 수 있는 경사로가 멋지게 펼쳐져 있다. 개인적으로 이 경사로는 방문객들의 마음을 여유롭게 하여 전망은 물론 빛과 같은 자연을 재발견해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르 코르뷔지에에게 지붕은 더 이상 단순한 보호 장치가 아니라 새로운 생활 공간이었기에 그는 별장의 평평한 지붕에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진정한 비밀 정원을 만들었다. 그래서 지붕 옥상은 지금까지도 방문객들에게 리셉션과 휴식의 장소가 된다. 작년에 방문했을 당시 엄청난 뙤약볕아래 구경을 해서 지붕을 잘 즐기지 못했는데, 이 날은 선선하고 쾌적하여 지붕에서 자연을 보고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빌라 사보아를 디자인하며 건축적 다색성, 즉 색상의 관계 설정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이 색상 차트는 세 가지 주요 축에 따라 정의되는데, 공간은 색상과 상호 작용하고(1) 색상은 물체를 드러내며(2) 색상은 인간에게 생리학적으로 작용한다(3). 옅은 색상은 따뜻함과 빛을 가져오며 짙은 색상은 이를 향상시키거나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한편 빌라사보아에서는 현재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프랑스 현대 예술가 프랑수아즈 페트로비치 (Françoise Petrovitch)의 기획 전시가 진행중이다. 자신의 작품 크기를 빌라 공간의 형식에 맞게 조정하고 '살루브라 (Salubra : 르 코르뷔지에가 스위스 벽지 회사를 위해 개발한 43개의 음영으로 구성된 페인트 컬러 팔레트)' 색상 범위를 사용하여 건축가의 제스처를 확장하고 빌라의 존재를 되살리고 있다.
프랑수아즈 페트로비치는 지난해 프랑스 국립 도서관, 올해는 '낭만적인 삶의 박물관(뮤제 드 라 호망띠끄)' 에서 전시를 한 가장 핫한 작가이다. (두 전시 모두 지난 포스팅 참고!)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프랑스 시각 예술가로서 회화에서 조각, 소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분야를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는 국립 기념물 센터 (Centre des Monuments Nationaux)에서 페트로비치에게 전권을 위임한 특별한 전시이다. 프랑스 국립 기념물 센터의 선택을 받은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한 장소를 점유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 이에 선정된 페트로비치는 이 국가 센터에서 관리하는 100개의 역사적인 건축물 중 빌라 사보아를 선택한 것이다. 빌라 사보아는 진정한 현대 건축의 아이콘이지만 종종 차갑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추상에 가까운 이 건축물이 그녀의 작품을 전시하기 제격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녀는 빌라 사보아라는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건축과 끊임없는 예술적 대화를 하면서 약 15점의 새로운 그림과 조각을 구체적으로 제작했다. 그녀의 섬세한 손길은 가정적이고 장식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빌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현관에 세워진 인간 꽃다발, 화장실에 있는 청동 옷을 입은 소년, 거실의 창문과 같은 크기로 그려진 풍경 등은 빌라를 다시 채우고 있다. 잉크, 페인트, 세라믹, 브론즈, 비디오,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전시가 진행 중인 만큼 볼거리가 풍부하고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무심코 창가에 놓인 장갑과 새, 부엌을 채우고 있는 문어 덕분에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이 녹아 있는 듯 보였다. 전시 된 작품들은 모두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들어졌고, 르 코르뷔지에의 색상 팔레트와 일치하도록 색채 범위가 정해져 있었는데 부드러움, 섬세함, 감성이 빌라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건축물을 꿰뚫는 허세가 아닌 함께 공존하고 스며들어 있는 전시라 마음이 편안해지고 전시장도 평화로웠다.
지난 해 방문했을 때 빌라 사보아는 건축물 자체는 너무나도 멋있고 건축학적 의미가 있지만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시공간이 멈추고 생명도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프랑수와즈 페트로비치의 작품들 덕분인지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듯 하여 한층 더 기분 좋은 관람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