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미디어 라이브러리: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에르노와의 만남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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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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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미디어 라이브러리: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에르노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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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édiathèque Annie Ernaux



지난주 고대 레퍼런스 수업 교수님께서 아니 에르노 도서관에서 아니 에르노와의 만남이 있다며 몇 자리 안남았는데 가고 싶은 사람이 있냐길래 잽싸게 한 자리를  차지했다. 내 생에 언제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정말 들뜬 채로 이 날을 기다렸다.  ㅎㅎ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정말 무한한 감사를 느꼈지만 정작 교수님께서는 수업때문에 참석을 못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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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미디어 라이브러리는 2022년 3월 8일 자신의 이름을 부여하는데  동의한 소설가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가 참석한 가운데 출범했다. 지식 개발을 위한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이 새로운 종류의 미디어 라이브러리는 빌타누즈(Villetaneuse) 주민들에게 배움을 위한 다양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실 이날은 수업이 오전에 끝나서 평소 같았으면 얼른 귀가를 했을텐데 작가와의 만남까지 한 3시간정도의 시간이 비어 일찌감치 도착해서 도서관 구경도 하고 과제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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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본 행사 직전 빌타누즈 시장과 아니 에르노 도서관의 관장 의 축사가 있었고 오늘의 주인공인  아니 에르노를 환영하는 작은 공연도 진행되었다. 프랑스 최초의 노벨 문학상 여성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의 소설에는 시간의 덧없음에 대한 예리한 인식,  망각과 싸우려는 완고한 열망이 있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글쓰기는 "기억 활성화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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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울트라 현대 문학'이라는 다소 재미있는  이름의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배웠던 주요 작가 두 명 중 한 명이 아니 에르노였다. 이 수업을 배우기 전에도 아니에르노를 알고 있어서, 교수님이 사서 읽으라고 하셨던 책 “남자의 자리”(La Place)도 이미 읽었던 터였다.  작년에 아니에르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우리 교수님의 선견지명에 다들 놀라며 역시 배우신 분들의 말은 열심히 들어야 되는구나를 실감하며 그녀의 수상을 축하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아니에르노 외 다른 한 명의 작가는 마일리스 드 케랑갈 (Maylis de Kerangal) 이었다.  팽팽하지만 생동감 있는 문장, 사물의 시각적 측면에 대한 관심, 구술성을 강조하는 문체로 유명한 현대 프랑스 문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가로  한국어로도 번역된 “식탁의 길”,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등의 소설이 있다. 수업시간에는  "급류에서 (Dans les rapides)"라는 소설을 배웠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음악과 청소년기라는 두 가지 주요 주제를 다루는 책이다.  제목처럼 소설 문체 스타일도 오토바이를 타는 것과 같은 짜릿한 속도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진행되어 읽은 내용을 정리하고 소화하고 기억할 수 없었다. 참고 읽느라 힘들었다...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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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만남에서 어떤 중학생 소녀가 아니에르노에게 “무엇이 당신이 글을 쓰게 이끌었냐”라는 질문을 하자 그녀는 “나도 그게 큰 미스터리다.” 라고 재치있게 대답하며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썼기 때문에 글쓰기라는 것이 그에게는  당연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콜레트 (Colette), 프랑수와즈 사강(Françoise Sagan)의 책들을 읽으며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지금까지 "남성을 위한" 제도를 비판하고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지위 향상을 위한 글을 써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성이 남성만큼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이 페미니즘이지 않겠냐며 자신이 살아온 세월동안 여성들이 겪었던 차별과 부당한 과거를 회상했다. ​​




"소녀의 기억(Mémoire de fille)" 이라는 자전적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디테일한 내용을 물어보니 그건 사적인 것이라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에서 참 프랑스인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 사회문제를 지적하니 “그러려면 먼저 정부를 바꿔야겠지요?” 라고 대답해서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ㅋㅋ 마크롱 정부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반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행사 당일 4월 19일 수요일은 1984년에 출판된 “남자의 자리 (La Place)”의 크레올 번역본인 “Plas-la”가 출판되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중, 작가의 생애 동안 크레올어로 번역된 최초의 비카리브해 작가가 된 것이다. 출판된 해에 프랑스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르노도 (Renaudot)상을 수상한 이 짧은 자전적 소설에서 저자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노르망디 소상공 노동자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공부를 통해 딸이 그의 사회적 계층을 탈출하고 성공하기를 바라면서도, 공부 잘하는 딸에 대한 은근한 시샘과 자격지심 등을 내보이는 내용이다.  그렇게 부녀관계의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아주 평평한 글쓰기(l'écriture plate)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한편 우리 아부지는 내가 공부 잘하면 기특해만 하셔서 나는 아니 에르노같은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다.ㅎ




아무튼 이번에 번역된 책은 과들루프 (서인도 제도의 소앤틸리스제도 북부에 있는 프랑스령 섬) 작가인 헥터 풀레(Hector Poullet)가 작업한 것인데, 출간일에 85세 생일을 맞은 그는  “아름다운 생일 선물!" 이라고 AFP 통신에 전했다. 6개월 전 노벨상 수상 당시 이미 42개 언어로 출간된 아니 에르노의 소설은 모든 번역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번역본 수가 약 50개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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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녀는 "미래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고 말하며 이 미래를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이며 다른 누구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일, 특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멋진 말로 만남을 마무리 지었다.



오늘의 아니에르노와의 만남에  잊지 않고 서명을 받기 위해 프랑스 책 두 권과 한국어 번역본 한 권 총 3권을 챙겨 갔었는데 양심상 두권에만 작가 싸인을 받았다. 싸인을 위해 볼펜을 드리니 본인 펜으로 하시겠다며 직접 꺼내시고 볼펜 뚜껑을 입에 물고 싸인을 해주셨다. ㅎ 어느 나라 언어냐고 궁금해하시고 책을 챙겨왔다고 고마워하셨던 작가님의  친절함에 감동을 받으며 사진도 함께 찍었다.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말씀은 아주 명료하고 카랑카랑하셔서 대단한 기운이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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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


 


아무튼 오늘의 이 아니에르노와의 만남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무엇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직접 만난 귀한 경험이었다. 이 행사에 초대해주신 교수님께 감사하고 이렇게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원어로 읽을 수 있게, 그리고 프랑스 유학을 통해 삶의 견문을 넓힐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다만 항상 감사할 줄만 알고 갚을 줄은 모르는 것이 언제나 나의 한계이긴 하다. ㅋ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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