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리에 구스타브 : 최영웅 개인전-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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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3일- 7월 19일
Atelier Gustave : Exposition personnelle de Young ung Choi- abondance
아틀리에 구스타브는 현대 미술 전시 공간으로 까르띠에 재단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지난해 까르띠에 재단에서 하는 <샐리 가보리> 전시를 보고 우연히 들렀던 갤러리여서 익숙하기도 했고, 당시에 만난 프랑스 조각가의 작품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갤러리의 내부도 고풍스러운 느낌이라 사진을 남기기에도 제격이다.
오늘은 지난 봄 한불 예술제에서 만난 최영웅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어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이 아뜰리에는 1996년부터 현대 미술 갤러리가 되었는데 그 전에는 조각가 귀스타브 제르맹(Gustave Germain)의 작업 스튜디오였다. 찾아보니 그는 1852년부터 1870년까지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과 함께 오늘날의 파리를 만드는 주요 작업에 착수했고 파리 도시의 변화에 공헌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엘리제 궁전의 현대화, 국립 도서관의 리노베이션 그리고 샹티이 궁전의 복원과 같은 권위 있는 프로젝트를 했고 도시의 리듬과 주요 국제 예술 행사에 맞춰 데코레이션 마스터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인물이었다.
때마침 최영웅 작가가 전시장에 계신 덕분에 작가와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일단 전시장을 가득 메운 작품 수에 압도당했다. 각각의 캔버스에서 느껴지는 볼륨감과 입체감은 엄청난 작업량과 노력이 뒷받침되고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최작가는 평소 수면시간이 2-6시간 정도일 정도로 작업에 몰두하신다고 오늘 아침에도 작업을 하고 전시장에 오셨다 해서 놀랐다. 이 날은 프랑스의 가장 큰 국경일인 혁명 기념일이었기에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서 TV로 대통령 행진을 시청하며 게으름을 피우다 외출했기에 살짝 반성이 되기도 했다.
아크릴을 얇게 펴서 말리고 마치 크루아상의 페이스트리같이 얇게 겹겹이 쌓는 테크닉이 최영웅 작가만의 기법이라고 하셨다. 이론적으로 들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는데 크루아상의 예시를 들으니 확 와닿았다. 자신의 작품을 관람객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현대 미술 작가에게는 필요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영웅 작가는 " 이러한 작업이 너무 즐겁고 특히 아크릴 덩어리를 만들었을 때 처음 칼로 도려내어 뚜껑을 열었을 때의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로 좋다 " 고 하셨다. 이 힘들어 보이는 작업은 작가의 이런 열정이 아니면 결코 가능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최작가의 작품이 멋진 이유는 마티에르가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느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최 작가는 " 프랑스에서는 마티에르의 독특함과 유일성을 통해 작가만의 물상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치 이배 화백의 숯처럼요" 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니 완성된 작품만이 예술이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재료와 방법도 예술 그자체 일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역시 예술이란 인간의 경험과 주변 세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매체인 것 같다.
또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기보다 대담한 제스처를 사용하는 액션 페인팅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작업 자체보다 페인팅 행위를 더 중요시 하며 작가의 창조적 충동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 보니 관람객의 관점을 바꾸고,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이는 아티스트 뿐만 아니라 관람객 모두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는 힘을 가진 작품 세계를 열어 주었다. 확실히 인간 표현의 장을 넓혀 줌으로써 비판적 사고와 상상력을 갖게 하는 것이 추상 표현주의의 매력인 것 같다.
그렇게 액션 페인팅의 역동성은 작품 속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의 일부인 작가의 파란 유도복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특히 최영웅 작가는 이브 클라인을 좋아하시는데 이브 클라인은 유도 교본까지 쓸 정도로 유도에 진심이었다고 한다.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이브 클라인 이전에는 파란 유도복이 없었다며 클라인 블루가 파란 유도복의 탄생에 한 몫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꺼운 페인트 층을 컷팅하는 퍼포먼스도 보여주시고 떨어져 나온 재료도 기념품으로 주셨다. 전시의 첫날에 비해 마지막날에 이르면 이 페인트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굉장히 궁금하다. 또 아크릴 덩어리를 제작하고 그것을 긁고 떼어내고 가열해 다시 붙이고 등등의 과정을 통해 그림이 어디서 오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론상으로는 이 그림들이 처음의 아크릴 물감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는 설명이었다.
'이주 속의 예술' 이라는 주제로 한국인의 정체성은 아크릴 덩어리 그 자체라면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깎이고 변형되어짐을 캔버스에 표현하고 있는데 그러한 점이 같은 프랑스 사회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도 공감이 되었다.
최 작가가 가장 애정하는 작품은 프랑스 뚤롱에서의 인상을 담은 캔버스였는데, 뚤롱에서 43도의 더위를 경험할 때의 그림이었기에 이 당시 작품들은 모두 다 빨갛게 표현되었다고 설명하셨다. 게다가 독일 파사우에서의 이미지는 옥수수 밭을 보고 와서 만든 작품이라고 알려주셨다. 작품 탄생의 뒷이야기를 직접 작가로부터 듣고나니 뚤롱의 열기도 느껴지고 파사우의 옥수수도 보이는 듯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한 작품 앞에서 최 작가님과 사진도 함께 찍었는데, 파란색, 흰색, 빨간색이 모여있는 듯한 느낌은 마치 장 드뷔페를 연상시켰다. 정말 얼른 성공해서 작품을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늘의 개인전은 전시의 과정과 결과를 알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 게다가 앞으로 최영웅 작가만의 테크닉으로 추상화에서 더 나아가 구상화까지 제작할 예정이라고 하니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작품의 변천사를 지켜보아야겠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우리 시대의 좋은 작가를 뛰어난 안목으로 발견하고 그 작가가 훗날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하는데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참고자료- 세느강변을 따라 걷다 우연히 마주친 뒤뷔페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