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 고민을 ‘사과’에 담아내는 작가 박영근 개인전《Countless》展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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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큰 사과, 2023, Oil on canvas, 150 × 210 cm (사진=금산갤러리)
템즈강의 사과, 2006-2023, Oil on canvas, 150 × 210 cm
한강의 사과, 2006-2023, Oil on canvas, 150 × 210 cm
백설공주의 사과, 2023, Oil on canvas, 190 × 160 cm
북한산의 사과, 2019-2023, Oil on canvas, 130 × 60 cm
결실의 시간, 2021, Mixed media on cloth, 111.7 × 85.5 cm
금산갤러리에서는 7월 10일부터 7월 31일까지 실존적 고민에서 비롯된 생각들을 ‘사과’라는 오브제를 통해 함축적 이미지로 전달하기 위한 시도를 꾸준히 이어온 박영근 작가의 개인전〈Countless〉 展이 진행되고 있다.
현실의 재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사물을 바라보는 박영근은 사물의 외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그 사물이 환기하는 감각이나 분위기, 나아가 그 본질적 개념을 포착하고자 하는 작가이다. 이러한 인식은 물감이 마르기 전 전동 공구인 드릴이나 페퍼로 표현을 갈아 나가는 작가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과도 연관되어 있다. 작가의 신체적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과정은 정지된 화면에 속도감과 운동감을 부여함과 동시에 그림 속 사물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이끌어 낸다.
작가는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그의 예술적 감성이나 기억 등을 사과라는 대상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개인적인 서사는 곧 작가를 구성하는 이야기의 전부이다. 그의 화면 안 형상의 윤곽선은 그런 작가의 심리적 파장처럼 지극히 율동적이다. 작가의 사적 영역 안에서 생명력을 얻은 그만의 계보학을 드러내는 작품은 작가의 관찰과 표현의 은유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드릴’이라는 공구는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물감이 마르기 전 수많은 곡선을 새기는 도구로써 자가의 신체적 움직임을 반영, 본래의 서사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하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의 작품은 마치 조각처럼 캔버스 위의 두께, 물적 양괴를 파고드는 특이한 방식으로 이미지들을 안료의 층위 위로 섬세하게 부상하면서 종교, 역사, 테크놀로지 그리고 개인의 주변 등 다양한 주제를 보여준다.
이번 〈Countless〉展에서는 박영근의 사과 에 집중해서 전시를 구성한다. 작가에게 사과는 상징적 의미와 일상적 차원 모두를 포괄한 하나의 기호로서 작동하고 있다. 사과를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은 뉴턴, 지구의 멸망이 도래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던 스피노자, 평생에 걸쳐서 사과를 그려낸 세잔, 사과로 인해서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된 백설공주와 하와 등에게 사과는 자신의 일생을 대변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존재한다. 반면 작가가 거주하는 평창동 일대가 과거 사과 냄새가 가득했던 지역이라는 역사적 고증, 사과를 한국에 처음으로 수입해온 안평대군, 21세기에 사과로 대표되는 스티븐 잡스 등의 부분은 일상 속에서 존재하던 사과와 더욱 가깝다. 그렇기에 박영근의 사과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부터 실존적으로 나약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까지 담아내는 그릇 이자 사람과 사회,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특별하게 작동하는 주요 상징이다.
기호의 집합체로서 그의 작품 속 사과와 인물 혹은 배경들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이미지의 연속으로 풀어지면서 해석되어진다. 이런 이미지 연관성의 시각적 함축을 내포한 그의 작품은 관객들에게도 마치 자신만의 사과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 존재론적 담론 속에서 깨달음을 얻기를 촉구한다.
<Countless>展은 현재 명동역 인근에 위치한 금산갤러리에서 진행중이며, 7월 31일(월) 오후 6시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