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선 개인전 《두 개의, 누워 있는, 뿌리가 드러난 세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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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까지 조현화랑 해운대에서는 전현선의 개인전 『두 개의, 누워 있는, 뿌리가 드러난 세계』가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두 대상의 관계와 드러나지 않는 본질’에 대한 사유의 흐름을 담은 신작 회화 17점이 전시된다. 전시장 중앙에는 2M 높이의 회화 10점이 나란히 엮여 하나의 캔버스이자 설치가 되고, 각 회화끼리의 연결성과 공간과의 관계성을 형성한다.
모든 것은 주변과 상황, 함께하는 대상들에 따라 유동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현선은 스스로를 정해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본인의 이야기를 확정적인 언어로 타인에게 직접 말하는 것 보다,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본인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준다고 믿는다. 이 말은, 작가가 무언가를 단정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지양하며, 주변, 대상과의 관계를 면밀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임을 보여준다. 작가는 신중한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경험, 생각, 느낌을 매일 캔버스에 회화적 언어로 기록한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되고, 작가는 이를 서사성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그는 서사성을 인위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와 목적성이 없다. 전현선이 말하는 서사성이란 자연스럽게 엮이고 확장되며 드러나는 대상과 대상, 그림과 그림, 그림과 공간의 관계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관계 속에서 대상들의 중요함에 우위가 있어 보이는 걸 원치 않고, 화면 속 평평함을 유지하여 중요도가 구분되지 않도록 대상들 사이를 중재한다.
하나의 반 호 모양으로 엮여진 2M 높이의 그림 10점은 전시장 중앙에 위치하여 회화이자 설치작업이 된다. 정적으로 벽에 걸려 감상 되는 회화로 남지 않고, 공간, 관객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한다. 하나로 엮여진 캔버스는 10M가 되어, 공간 구성 요소로서 동선을 형성하거나 공간에 여백을 만들며 전시장과의 관계성을 맺어간다. 10개의 회화가 연속되면서, 고정된 한 곳에서 전체를 보는 것과 하나씩 보는 것 둘 모두가 어려워졌다. 그렇게 그림을 보는 위치와 방식을 공간 내에서 고안하게 된다. 멀리서 한 눈에 담거나, 따라 걸으며 훑어보고, 또는 가까이 다가가 10개의 캔버스를 하나씩 꼼꼼하게 살피게도 된다.
큰 하나의 캔버스가 일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느낌의 꾸준한 기록이라면, 벽에 걸린 작은 캔버스의 작업실 묘사는 그가 매일 마주하며 생각을 멈추지 않게 하는 개인적 공간이다. 이전의 전현선은, 대상과 대상이 교차점을 만들며 서로를 이해하고 중간을 찾아가길 바랐지만 지금은 각자의 다름을 온전히 유지한 채로 오랜 시간을 나란히 누워 함께 하길 바란다. 서로의 다름이 사실 종이 한 장 정도의 작은 차이일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나란히 눕는다면, 그들은 더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속의 뿌리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면의 근본적인 것에 대한 질문과 중요성을 의미한다.벽에 걸린 그림엔 작업 과정과 작업실을 담아, 그림에 사유를 담는 과정에서 본인이 바라보는 대상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빈 캔버스와 작업 중인 캔버스, 물감들과 붓 등을 묘사하여 매일 마주하는 공간과 일상을 공유한다.
10점의 회화는 맞닿아 물리적, 내용적 연결성을 모두 갖추었고, 공간의 구성 요소가 되어 전시장과 관계성을 갖게 되었다. 작가는 공간과 그림, 그림과 그림, 대상과 대상 사이의 연결을 찾는 길에 정답을 정해두지 않았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방법이 정해지지 않은 이 많은 대상 간의 서사성을 찾는 것은 이제 우리 몫이다.
전현선 작가 (사진=조현화랑)
전현선(b.1989)의 그림은 어떠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경험한 일을 기록하는 데서 작업이 시작된다. 그는 장면을 재현하기보다는 상황의 분위기, 기류를 묘사한다. 장면 위에 겹쳐진 기하학적인 도형은 이미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작가의 감정이나 상황의 분위기이다. 작가가 풀지 못한 수수께끼들은 도형이 되어 버렸다. 명확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 모호한 것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전현선은 구상과 추상이 공존하는 그림의 형식을 통해서도 그대로 전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