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에서 개최되는 두 개의 프로젝트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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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세 하우스 미술관에서 열리는 제13회 베네세 상 수상전 참여
제13회 베네세 상Benesse Prize을 수상한 양혜규가 가가와현의 나오시마에 위치한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에서 열리는 그룹전에 참여한다. 2016년에 시작해 2022년까지 이어진 베네세 홀딩스Benesse Holdings Inc.와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Singapore Art Museum의 파트너십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양혜규를 비롯하여 베네세 상 역대 수상자인 판나판 요드마니Pannaphan Yodmanee, 줄 마모드Zul Mahmod, 아만다 헹Amanda Heng 등의 작품을 지난 6월 15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선보인다.
베네세 홀딩스는 지난 2016년부터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과 함께 아시아의 선구적인 동시대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995년 제정 당시 베네세 상은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작가에게 수여되었으나, 8년 전 제11회 행사부터 아시아 지역으로 수상 초점을 재조정해 싱가포르 비엔날레 참여작가들 중 수상자를 선별하는 방식으로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과의 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양혜규는 차가운 백색 튜브 조명이 장착된 그리드와 백색 블라인드로 이루어진 설치작 〈솔 르윗 뒤집기 – 10 배로 축소된, 강철 구조물Sol LeWitt Upside Down – Steel Structure, Scaled Down 10 Times〉(2021)을 선보인다. 작가를 대표하는 재료 중 하나인 블라인드를 활용한 이 설치작은 미국의 미니멀리스트이자 현대미술의 거장인 솔 르윗Sol LeWitt(1928-2007)의 〈열린 모듈 입방체Modular Structures〉를 재해석한 상징적인 작품이다. 〈솔 르윗 뒤집기Sol LeWitt Upside Down〉 연작은 솔 르윗의 원작 조각을 거꾸로 걸되 블라인드의 폭을 일괄적으로 70센티미터로 조정하는 등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원칙과 같이 작가가 무작위적으로 지정한 기준을 적용해 제작되었다. 2006년부터 10년 이상 블라인드 설치작을 주요 작업군으로 발전시켜온 양혜규는 이렇듯 다른 작가의 방식, 즉 솔 르윗의 모듈식 구조를 따라가는tracing 행위를 통해 블라인드라는 재료를 새로운 대상을 창출하는 방식으로만 쓰지 않고, 다른 방식을 고증하는 도구로 재탄생시킨다. 동시에 작가 스스로를 창조 혹은 창작해야 한다는 의무감 혹은 책임감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이미 존재하는 방식의 사고를 고증하고 되새겨보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또한 이 블라인드 조각 연작은 미니멀리즘적 혹은 모노크롬적인 작업 방식을 보편적인 현상이 아닌 서구의 규범적 고전canon으로만 국한하여 거론해온 미술사에 대한 비판적 논평으로 해석되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솔 르윗 뒤집기〉는 안도 다다오Tadao Ando가 설계한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 본 전시장의 경사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관람할 수 있는 위치에 설치되었다. 경사로를 통해 서서히 작업에 근접하면서 서로 다른 높이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점으로 작업을 바라볼 수 있다.
새로운 전시 공간 마타베에서 양혜규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협업 전시
《불의 고리 – 일간日間 양혜규, 월간月間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개최
이어 양혜규는 오는 6월 21일부터 나오시마에 위치한 마타베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과의 2인전 《불의 고리 – 일간日間 양혜규, 월간月間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하《불의 고리》)을 통해 커미션 신작을 공개한다. 나오시마 혼무라 지역에 위치한 마타베는 히로시마에 거주하는 삼부이치 히로시Hiroshi Sambuichi라는 건축가가 기존의 일본 전통 가옥을 재해석해 마련한 새로운 전시 공간이다.
전시 제목인 ‘불의 고리’는 화산 활동과 지진이 잦은 태평양 일대의 환태평양 조산대를 지칭한다. 분명히 실재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시야를 벗어나는 일상적 요소의 탐구에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두 작가는 빛, 그림자, 움직임, 그리고 진동 같은 감각에 초점을 맞춰 몰입감이 배가된 환경을 구상했다. 지진의 데이터에 기반하여 작동되는 《불의 고리》는 ‘낮’과 ‘밤’, 서로 다른 시간대를 기준으로 운영된다. 양혜규의 작업은 실시간 데이터로 오전 11시부터 하루 내내 작동하는 반면, 위라세타쿤의 영상-설치 작업은 지난 124년(1900-2024)간 축적된 역사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일몰 이후, 저녁 시간에만 일정한 상영 시간에 맞춰서 관람이 가능하다. 사실 두 작가의 작업은 미세하게 중첩되어 한 공간 안에 공존하는데, 다만 작동activation시키는 지진 데이터의 종류가 각각 역사적 자료 혹은 실시간 데이터로 상이할 뿐이다.
전시 공간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대문을 통과한 후, 아담한 일본식 정원을 지나 신을 벗고 목조 가옥에 들어가게 된다. 실내 공간에서 처음 방문객을 맞이하는 작업은 위아래로 길게 매달린 백색의 등 작업 〈황홀봉헌탑등恍惚奉獻塔燈 – 설화산 이계화二界花Mesmerizing Votive Pagoda Lantern – Snow Volcano Ultramundane Flowers〉(2024) 이다. 장례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일본의 백색 사누키 제등에 영감 받은 작품으로, 몸통의 기하학적 형태는 사누키 제등에서 유래했으며 삿갓 모양의 윗면과 등 아래쪽 꼬리 부분은 무속신앙에서 파생된 지화로 장식되어 있다. 표면에 장식적인 문양을 구성하는 구멍들 사이로 선명한 붉은 빛을 뿜어내는 〈황홀봉헌탑등〉은 애도를 위한 제의적 오브제로 기능한다. 전 세계의 지진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입력될 때마다 〈황홀봉헌탑등〉의 붉은 불빛은 잠시 깜박거리다 빛의 강도를 최대로 높여 환해지고, 이내 분당 0.3바퀴의 속도로 천천히 회전을 시작한다. 다만 5단계로 나눠진 지진의 강도가 셀수록 회전의 지속 시간도 길어진다. 어떤 지진 데이터도 감지되지 않거나 미약할 경우에 작품은 움직임을 멈추고 붉은 빛을 부드럽게 유지하면서 일종의 대기 상태에 머문다.
마타베 가옥의 안쪽으로 더 걸어 들어가면 대들보에 해당하는 목재 보에 매달린 〈소리 나는 분출 뒤집기Sonic Eruption Upside Down〉(2024)라는 제목의 소리 나는 조각 두 점을 만나게 된다. 두 명의 작가는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기는 화산 분출과 지진에 주목하되 이 자연현상이 주는 아름다움, 경외심과 긴장감에 초점을 맞췄다. 거꾸로 뒤집힌 원뿔 형태의 소리 나는 조각 두 점은 세 칸 남짓한 집 안을 가득 메우며 들어차 있다. 조각들은 화산의 형상과 현상을 염두에 둬서 붉은색과 은색의 방울로 만든 각각 직경 1미터와 1.5미터 크기의 밑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역시 제등 작업과 마찬가지로 실시간 지진 데이터에 따라 작동한다. 방울 체인이 매달린 철망을 위아래로 덮고 있는 금속 판 위에 설치된 진동 모터는 입력된 데이터에 따라 금속 방울을 서로 다른 강도와 지속 시간으로 진동시킨다. 27여 분 분량의 위라세타쿤의 사운드, 조명 및 영상이 빚어내는 음영은 밤마다 거꾸로 매달린 화산 형태의 작업 위를 지나치거나 바닥과 닿는 화산의 뾰족한 부분에 집중하는 등 서로를 끊임없이 중첩시킨다.
또한 종이죽으로 제작한 후 채색하고 래커로 마감한 여섯 점의 미니어처 화산 토템 〈소소한 분출 – 소리 나는 황금화환Minor Eruption – Sonic Golden Wreath〉(2024)도 가옥의 안팎에 설치된다. 황금 방울 체인을 목에 건 형태의 이 소형 화산 토템은 정원과 실내는 물론 약간 열려 있는 벽장 안 쪽, 건물과 정원 사이와 같이 실내와 외부 중간 지점 등에 점점이 설치된다. 이 소형 상징물은 집안 곳곳에 숨어들어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신성하고도 비밀스러운 오브제, 즉 ‘위험한 아름다움’에 관한 토템으로 기능한다.
두 예술가의 협업은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 방울의 진동, 최면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회전, 불안하게 깜빡이는 불빛 등 지각의 데이터로 촉발되는 다감각적 경험으로 가득한 환경을 조성한다. 물리적 조각의 매혹적인 활성화를 보여주는 양혜규의 표현법,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유희를 통한 위라세타쿤의 영화적 조명과 영상 연출은 하나의 공간에서 물질적인 요소와 찰나적인 요소 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만들어낸다.
한편 양혜규는 오는 10월 9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영국에서의 첫 번째 서베이 개인전 《양혜규: 윤년Haegue Yang: Leap Year》을 개최한다. 헤이워드 갤러리의 수석 큐레이터 융 마Yung Ma가 기획한 본 전시는 양혜규라는 작가의 다층적이고 광범위한 작업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2000년대 초반의 초기 작업부터 최근 신작까지 망라하게 된다. 새로운 블라인드 신작을 비롯해 '광원 조각', '소리 나는 조각', '중간 유형', '의상 동차', '황홀망' 등 주요 작품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이 전시는 2025년 유럽 순회전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양혜규는 1971년 대한민국 출생으로 현재 베를린과 서울에서 작업 및 거주하고 있다. 콜라주부터 수행적 조각,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설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양혜규의 작품은 유사점이 없는 역사나 전통을 독창적인 시각적 언어로 이어낸다. 작가는 블라인드부터 건조대, 한지, 인공 짚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공예 기법과 재료를 사용하여 그에 내재된 문화적 특성을 활용한다. 시각을 넘어 지각을 활성화하는 다감각적이고 몰입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양혜규는 이를 통해 노동, 이주 등의 문제를 미학적 관점에서 다루는 몰입형 경험을 제공한다.
헬싱키 미술관(2024), 캔버라 호주국립미술관(2023), 겐트 S.M.A.K.(2023), 상파울루 피나코테카 미술관(2023), 코펜하겐 국립미술관(2022),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2020), 뉴욕 현대미술관(2019),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2018) 등 전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2024년 가을에는 조각가로 알려진 작가의 평면작업을 조망하는 최초의 전시 《평평한 작업 1994-2024Flat Works 1994-2024》가 아트 클럽 오브 시카고Arts Club of Chicago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9월부터 대중에게 공개될 이번 전시에서는 양혜규 작가가 30여 년 간 꾸준히 진행해온 다양한 평면 작품을 거시적으로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어 10월에는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120점에 달하는 규모의 서베이 전시 《양혜규: 윤년Haegue Yang: Leap Year》이 예정되어 있다. 두 기관전 모두 각각의 전시 내용을 충실히 담은 도록의 출판을 동반해서 보다 깊이있는 학구적 결과물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