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랑, 허승희 개인전 개최
본문
강남구 청담동 청화랑에서 10월 11일 부터 10월 28일까지 허승희 개인전이 열린다.
허승희 작가는 글을 잘 쓰고 싶었고, 글로는 표현이 안되는 것 들을 그림으로 그리다가 글보다 표현하는 것이 즐거워져서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주로 풍경, 사람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그리는데, 밑바탕이자 배경이 되는 곳에 작가는 여러번 색을 입히고 긁어내고 그리고 지워내고를 반복한다.
Stay No27.97cm x131cm.Acrylic on canvas.2023(이미지=청화랑)
남겨진 슬픔Acrylic on Canvas.61cm X73cm.2023(이미지=청화랑)
인물이라는 메인 보다 바탕에 최선을 다해야 더욱 만족스러운 작품이 완성된다고 한다. 작가의 작품을 관찰하다보면 수많은 감정이 올라오는데 쓸쓸하고 소외된 감정이라거나, 허무하고 좌절했던 순간을 느끼게도 한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화면의 중심에 당당히 자리잡고 관객을 응시하고 있는 여느 인물화와 사뭇 다르다. 이들은 그림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화면의 일부인 양, 흐릿한 실루엣을 하고 한쪽 구석에 수줍게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뒤돌아 서있거나 옆모습만 조심스레 보여줄 뿐이다. 그것도 희뿌연 새벽 안개 속에서. 캔바스 텍스쳐 속에 깊이 물든 배경의 물감 층 밑에 가라앉아 있던 인물이 아주 은은하게 화면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어떤 그림에서는 얼핏 인물이 있다는 것 조차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이다. 리히터의 인물에서처럼 의도적으로 뒷 모습을 그리거나, 다 그려놓은 것을 일부러 지우거나 얼버무림으로써 오히려 거기에 있었던 모델의 실존이 더욱 강하게 부각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허승희의 인물은 마치 동양화에서처럼 배경의 여백과 경계를 나누지 않고, 함께 어울려 있다. 이때 인물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익명성과 모호성이다. 남성도 여성도 아니고, 소년도 노인도 아닌, 단지 인간일 뿐이다. 보편적 인간의 실존을 이렇듯 보여준 이는 아마도 쟈코메티였을 것이다. 공간 속에 단지 정체불명의 한 줄기 선으로 표현된 쟈코메티의 인물상처럼 허승희의 인물도 화면 속에 침잠하여 배경 속으로 숨어들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익명성이 보편자로서의 인간의 실존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역설을 낳는다. 인간의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도, 표정을 꾸미지도 않기 때문이다. 고요한 단순성 속에서 은은히 전해져 오는 소곤거림을 듣는다. 깊이 모를 바닥으로부터 떠오르는 존재의 울림. 이들은 바로 작가 자신의 초상이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한 22점의 작품이 관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