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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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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립 미술관: 토옌/아니타 몰리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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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완연한 봄날의 파리지만 시험과 기타 과제들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중 오랜만에 수업없는 화요일을 맞아 봄 나들이 전시 관람을 가기로 했다. 학교 가는 길에 광고판에서 자주 보았던 시립 미술관의 새 전시들을 만나러 간다. 가는 길에 날씨가 정말 좋아 들뜬 마음에 이곳저곳 구경하며 걸어갔다. 매번 학교 뒷마당 꽃나무만 보다가 사람들이 봄속을 거니는 풍경을 보니 무언가 감동이 벅차오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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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립미술관에는 프라하, 함부르크, 파리에서 연이어 열리는 토옌(1902-1980)의 « 토옌-절대격차 » 회고전이 진행중이었는데 그림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초현실주의 대표 작가의 탁월한 궤적을 발견하게 해주는 전시라 한다. 그녀는 1934년 체코 초현실주의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이었는데 프랑스 초현실주의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엘뤼아르와 앙드레 브르통과도 친구였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전체주의를 거부한 그녀는 앙드레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그룹에 합류하기 위해 파리로 오면서 인연이 된다. 체코 아방가르드의 중심에서 서정적 추상화를 이끌었고 새로운 예술적 공간을 탐구하기 위한 의도로 에로티시즘을 함께 표현하기도 했다. 



더구나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때부터 토옌은 모든 지평이 사라진 세상,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세상의 잔혹함을 충격적으로 표현했고, 부서진 장난감과 동물의 유령을 순수함과 경이로움의 말없는 증인으로 묘사한다. 전쟁의 참혹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예술가 지식인들에 이해 고발(?)되었지만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보며 21세기 에도 여전히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에 분노했다. 과연 인간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인지 참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토옌의 드로잉은 존재와 사물이 서로 부딪치고 매혹적인 강렬함의 중심에서 함께 모이는 문제의 순간을 포착하려고 한다. 바위, 깃털, 파도와 같이 인간의 움직임과 자연의 움직임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여 에로티시즘을 유추하게 만들어냈다고 하는데 내겐 그런 느낌이라기보다 다소 섬뜩한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초현실주의에서 아방가르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예술가들의 교류와 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 전시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 기술법과 '카다브르 엑스키' (그림이나 글을 여러사람이 돌아가며 창작하며 처음의 의도와 전혀 다른 결말을 갖게 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놀이 중 하나이다) 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뭉칠수 있었기 때문에 초현실주의는 파도파도 새로운 작가와 작품들이 발견되는 것 같다. 누군가의 자유가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높이고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펼쳐지게 한 것은 아닐까! 





토옌은 사실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전시장의 작품과 미술관측 해설을 읽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많이 배우고 느끼는 것이 많았다. 전시장의 규모도 커서 토옌과의 첫 만남에서 꽤 자세하게 알게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전시장을 나와 바로 옆에 위치한 <아니타 몰리네로> 회고전을 보러 갔다. 이 전시회는 1980년대 후반의 첫 번째 작품부터 그녀의 최신 작품, 특히 이 행사를 위해 제작된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예술적 발전 단계를 추적하는 전시였다. 



1953년 프랑스 플로라크에서 태어난 아니타 몰리네로는 1977년 마르세유의 에콜 쉬페리외르 데 보자르를 졸업하고 현재까지 활동중인 작가다. 조각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드문 프랑스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쓰레기통, 배기관, 철근, 압출 폴리스티렌 및 기타사회의 폐기물과 같은 일상적인 물건과 사소한 재료를 태우거나 손상시켜 표현된다. 모든 잔혹성과 불안정성을 배치하기 위해 재료를 변형하는 것이다. 



버너든 토치든 불의 사용이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다. 불은 어떤 물질을 태워 없애거나 녹여 없애지만 그것은 파괴가 아니라 오히려 예술적 창조라는 것이다.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같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재료를 태우고 녹이고 늘리며 재료를 돌이킬 수 없게 변형시키는 에너지를 불어 넣는 것 같다. 녹아 늘어지고 까맣게 타버린 재료들을 보니 할 일을 제대로 안하고 대충 사는 요즘의 내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타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아 절로 죄책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조각가인 만큼 몰리네로의 특징적 제스처 중 하나는 마티에르들을 축적하여 조각적 측면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실제 일상적으로 갖는 기능을 빼는 것이다.



팔레 드 도쿄와 시립 미술관 사이의 분수가 있는 산책로 유역에는 그녀의 기념비적인 설치물이 전시되어 있어서 날씨도 좋길래 나가서 인증샷도 찍었다. 또한, Extrudia 3D라는 제목으로 José Eon이 감독한 3D로 촬영된 실험 영화의 스튜디오 작업을 픽션 형식으로 제공 중인데 시립 미술관의 지하로 내려가는 공간에 위치하고 있어 처음 가본 데다 전시장 이름이 볼탕스키 방이어서인지 그의 작품들도 볼 수 있었다.



현대미술은 예술이 더 이상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이나 위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고 폭로하고 있기에 나에게는 예술적 지식 뿐만 아니라 깊은 사고와 성찰의 시간이 된다. 이것이 내가 현대미술을 자주 관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저 눈이 즐겁고 편한 쉬운 감상만 좋아하고 예술다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데려가고 싶은 전시들로 오늘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평한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 사진 원본은 https://blog.naver.com/mangchiro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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