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드 발자크: 미지의 걸작 - 천재와 광기 사이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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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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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 발자크: 미지의 걸작 - 천재와 광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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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son de Balzac : Le chef-d’œuvre inconnu - entre génie et folie



오늘은 학교 가기 전, 제20대 대통령선거 재외 국민 투표를 하고 전시를 2개 보러 갔다. 


이번 미술관 나들이 컨셉은 "문학과 예술의 만남" 이다. 그 첫번째 전시는 ' 메종 드 발자크(발자크의 집)' 에서 하는 "미지의 걸작" 이라는 그의 소설에서 모티프를 딴 전시이고, 다른 하나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관련 전시이다. "문학과 예술의 만남" 이라는 전시 컨셉은 다음 주까지 이어질 예정임을 미리 공지해드린다.



먼저, '메종 드 발자크' 는 지난 번 기메 미술관의 요가 전시에 밀려 오늘서야 다녀온 전시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요가 전시보다 발자크의 집 전시가 이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ㅎㅎ 초보 요기니로서 요가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 이라는 소설은 과거의 포스팅에서도 종종 언급한 적이 있다. 교수님께서 읽으라고 강조하신 바람에 아주 힘겹게 완독했었는데 역시 배워두면 다 살이 되고 피가 된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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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건축물 입구가 굉장히 모던하고 파리스러운 아름다움이 전혀 없어 들어갈 때는 약간 실망했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 이 곳은 그저 입장권발매와 뮤지엄 샵 정도의 공간이고 외부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카페와 정원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 가면 전시장이 나온다. 오늘은 특별히 뮤지엄샵 후기부터 언급하자면, 여느 뮤지엄처럼 엽서와 책등을 판매하는 것은 비슷했는데 발자크 커피를 판매한다는 점이 색달랐다. 발자크는 엄청난 원고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하루에 최대 50잔의 커피를 마신 것으로 유명한데 그 때문에 '발자크 커피'라는 상품까지 나온 것 같아 흥미로웠다. 



발자크는 글을 많이 쓰기도 했지만 그가 썼던 작품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습관을 가졌다고 한다. 그가 글을 다시 쓰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복잡성, 심리적 강렬함, 주제의 다양성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지금까지 읽히는 고전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봉주르 파리 > 원고를 작성하면서 예전에 썼던 것들을 읽어보곤 하는데, 분명 그 당시엔 굉장히 열심히 공들여 썼을텐데 이제 보면 너무 유치하거나 퀄리티가 낮다는 느낌이 들어서 부끄러운 마음에 나의 지난 글을 읽기 싫을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역시 대문호의 내공앞에 아직 한낱 베이비 글쟁이는 한없이 작아짐을 깨닫는다. 



발자크의 집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소설가의 집이다. 이 문학과 예술의 만남을 담은 박물관 전시장 1층에는, 발자크와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 그림, 판화, 소묘의 초상과 원본 시나리오 등을 통해 작가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지속적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의 소설 <인간 희곡> 의 작중 인물들을 그려 놓은 전시장이었다. 엄청나게 방대한 양의 소설이기에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에 언젠가는 읽어보리라 맘만 먹고 있는데 막상 전시장 한 칸을 다 차지한 등장인물들을 보니 주눅이 들어 읽고 싶은 마음이 더더욱 옅어졌다. 하지만 그 마음은 사라진것은 아니고 언젠간 읽을 것이긴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오늘의 독서를 내일로 미루어 본다. ㅎㅎ



아담한 나선형 계단으로 한 층을 내려가면 내가 기다려온 <미지의 걸작 > 전시가 펼쳐져 있다. 전시의 부제가 '천재와 광기의 사이' 인 만큼 예술가의 고뇌를 담고 있다. 발자크의 소설 '미지의 걸작' 은 17세기 초 파리에 존재했던 두 명의 위대한 화가 Nicolas Poussin과 Frans Pourbus, 가상의 천재 화가 Frenhofer 를 그린 이야기이다.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Frenhofer는 아무도 그의 작업실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푸쌍Poussin은 프렌호퍼의 그림을 보고자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모델을 찾고 있던 프렌호퍼와 자신의 애인 질레트Gillette를 교환하자고 제안한다. 3개월 후 그의 걸작을 공개하게 되는데 그들은 캔버스에서 대단한 작품이 아닌 단 한 발만을 본다. 프렌호퍼는 그들의 얼굴에서 실망감을 읽고 절망에 빠진다. 다음 날 프렌호퍼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불에 타 죽기 전에 모든 캔버스를 불태운다는 내용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그렸을까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발 하나만 그렸다는 대목을 보자마자 주인공들과 같이 실망이 되었다. 내용을 요약해서 별로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발자크는 그의 이야기에 환상적인 차원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신화(프로메테우스, 프로테우스, 피그말리온, 오르페우스)를 이용하며 광기의 경계에 있는 예술적 창조, 이상과 원동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한 번 쯤 읽어 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 <La Belle Noiseuse> 의 일부를 상영하고 있었는데 영화 속 작품들이 실제로 전시되어있다. 에로티시즘, 미학, 죽음이라는 주제를 밀접하게 결합한 이 텍스트는 철학자와 예술가 모두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 같다. 



피카소는 발자크의 텍스트를 사용하여 화가와 그의 모델의 관계를 탐구하여 그를 사로잡는 주제를 반영한다. "Lord "는 발자크의 "Lord R'Hoone" 이라는 또 다른 필명을 상기시킨다. 프렌호퍼의 캔버스에 지워진 인물을 알리는 읽을 수 없는 지워진 텍스트를 구성한 타이포그래피는 독자에게 푸쌍과 포르부스가 이야기의 끝 부분에 있는 늙은 화가의 그림에서 보게 될 "기괴한 선의 무리"를 보여준다. 이 내용은 예전에 교수님께서 설명해주셨던 것 같아서 그때의 자료를 찾다가 확인하게 된 내용이다. 역시 한 번 배울 때 제대로 배워둬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Eduardo Arroyo, Paula Rego, Anselm Kiefer 및 Callum Innes와 같은 다른 위대한 예술가들은 이 소설을 그들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각색함으로써 이야기를 읽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이 전시회는 오늘날에도 발자크에 대한 성찰이 모든 형태의 예술적 창조에 얼마나 많은 파급력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프렌호퍼는 예술적 근대성의 뛰어난 예언자인가, 아니면 미친 화가인가? 사랑과 예술을 결합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러한 작가의 고뇌는 '미지의 걸작' 을 통해 드러나고 많은 예술가들을 자극한 것으로 보여진다. ' 미지의 걸작' 과 관련된 20세기와 21세기의 여러 주요 그림과 그림을 통해 텍스트와 예술가의 관계를 성찰하게 된다는 것이 이 전시의 포인트인 듯하다.



안젤름 키퍼는 다른 현대 작가들보다 관심이 있으니 따로 재배치해보았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 사진 원본은 https://blog.naver.com/mangchiro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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