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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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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특집 3- 가우디&몬세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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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관해서는 문외한 이지만 바르셀로나를 방문한 이상 가우디와 그의 건축물에 대한 포스팅을 따로 하지 않을 수 없다.


2007년  부모님과 함께 바르셀로나에 온 이후 무려 16년만의 재방문이었는데 가우디의 까사 밀라, 까사 바트유, 구엘 공원과 같은 건축물들은 다 옛날 모습 그대로인데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완공되어가는 모습이 보여서 참 격세지감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부모님과 함께 한  16년전에는 ‘저 성당을 언제 다 지을까?’ 라며 먼 훗날처럼 여겼었는데  시간은 훌쩍 흘러  그때의 꼬마가 이제는 스페인에 비행기를 혼자 타고 와서는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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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먹거리가 많은 바르셀로나 시장 




먼저 가우디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인 카사 바트요는 파세오 데 그라시아의 도시화 정책 하에 만들어졌다. 바르셀로나에서 야심 찬 도시 계획(Le Plan Cerda)이 승인된 1860년부터 당시 도시에서 가장 명망 높은 가문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거리는 19세기에 보행자와 마차를 위한 산책로가 되었고 20세기부터는 자동차의 주요 도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원래 전기 조명이 바르셀로나에 존재하지 않았던 1877년에 Emilio Sala Cortes(가우디의 건축 교수 중 한 명)에 의해 지어졌다. 그리고 1903년 섬유 산업가이자 바르셀로나에 여러 공장을 소유한 중요한 사업가인 호세프 바트요 (Josep Batlló)가 이 건물을 인수했다. 



호세프 바트요는 원칙적으로 건물 철거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에게 맡기면서 그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했던 것이다.  가우디의 예술적 가치는 작품 그 자체에 있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20세기 말 건축의 아방가르드 운동의 선구자적인 그의 안목과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까지  엄청난 영향력에 있는 것 같다.  



카사 바트요의 옆 건물들을 보아도 멋지고 근사한데 그 이유는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도시 계획 상을 놓고 경쟁하면서 카사 바트요 옆에 다른 뛰어난 건축가들이 다른 주택을 개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섹션은 "불화의 사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리스 여신의 이야기에서 생긴 비유인데, 아이아코스 왕의 아들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초대받지 못하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귀가 새겨진 황금 사과를 결혼식장에 던져버리고 그 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여신들의 다툼과 불화가 생겨나고 결국 트로이 전쟁까지 불러일으킨 이야기이다.)  



현재 카사 바트요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의 일부인데다 가우디의 작품과 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꼭 들러야 할 바르셀로나의 아이콘이라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입장료가 무려 35유로인지라  다음 기회를 노렸다. 사실 건축을 전공한다면 비싸도 들어가보았겠지만 그 정도의 열정은 없었던 것으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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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카사 밀라(La Casa Milà) 가 보인다. 2월 초중순인데도 귤이 열린 스페인의 온화한 날씨에 감탄했다. (그런데 내가 방문한 시점에 날씨는 사실 그렇게 따뜻하진 않고 파리보다 추웠다)…


 라 페드레라 (La Pedrera 카탈로니아어로 "채석장")라고 불리는 카사 밀라는 가우디의 마지막공사 현장으로 1906년에 시작되어 1912년에 완공되었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주로 라 페드레라(La Pedrera)라는 별명으로 이곳을 부른다고 하던데 실제로 택시를 타고 카사 밀라를 가자하니까 기사님이 ‘아 ! 라 페드레라’ 라고 하셨다. 아무튼 이 별칭은 파사드와 발코니 디자인에 석재를 주로 사용한 외관에서 유래했다. 


 


가우디의 고향 지중해의  파도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카사 바트요와 같이 물과 곡선의 이미지를 잘 살린 건축물이다. 가우디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이 신의 선, 자연의 선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해초와 미역같은 발코니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대장장이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철을 잘 다룰 줄 알았던 장점을 자신의 건축물에 그대로 드러냈다. 이 곳은 옥상부터 내려오는  관람 동선인데 옥상정원으로 유명해서 어렸을 때 부모님과 왔을 때 들어 가보았던 기억이 난다. 다만 이곳 또한 입장료가 25유로로 비싼 편이라 오늘은 들어가보지 않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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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내부에 들어가서 가우디 의자에도 앉아보았던 모습



가우디는 클라이언트였던 밀라 가문과의 의견 불일치로 인해 라 페드레라를 원하는대로 완성하지 못했다. 처음에 그는 건물 꼭대기에 성모 마리아의 대형 조각상을 포함시키고 싶었지만 실현되지 못하자 밀라 가문뿐만 아니라 이웃과 바르셀로나 시청과도 분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래도 카사 밀라는 가우디의 평소 스타일에 따라 장식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목적을 가진 곡선으로 가득 찬 테라스를 설계하여 거대한 내부 안뜰을 통해 빛을 더 잘 분배할 수 있도록 공을 들인데다 최초로 지하주차장을 갖춘 아파트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까도 말했지만 가우디 예술의 의의는 건축물 자체를 뛰어넘어 현대성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또 하고 싶은데, 스타워즈의 감독이자 제작자 조지 루카스 (George Lucas)도 이 라 페드레라의 굴뚝에서 영감을 받아 제국군의 투구를 디자인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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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구엘 공원 건설이 시작되었을 때 바르셀로나는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대도시였다. 경제는 산업의 힘을 기반으로 했으며 인구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성벽은 거의 반세기 전에 철거되었고 엔지니어 일데폰스 세르다 (Ildefons Cerdà)가 계획한 새로운 도시는 1860년부터 눈부신 호황을 누렸고 바르셀로나의 현대적 성장의 어려움과 기술 변화, 특히 철도의 영향을 자세히 연구했다. 그의 도시 확장  프로젝트는 바르셀로나의 면적을 10배로 늘렸고   실용적 비전의 결실이었다. 바르셀로나의 확장은 19세기 후반에 매우 급속히 진행되었으며, 평원 위로 넓어졌다.  



1888년 만국 박람회는 부활한 카탈로니아 국가의 수도인 바르셀로나의 부상을 유럽과 세계에 알리고 새로운 예술적 언어와 도시 표현에 대한 탐구를 강조했다. 카탈로니아 모더니즘과 카탈루냐 문화를 강조했는데 그것은 수도 바르셀로나의 역동성에 힘입어 카탈로니아의 근대화와 문화적 르네상스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었다. 마침내  모더니즘이 건축과 조형예술을 넘어 언어, 문학, 음악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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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세비 구엘은 (Eusebi Güell) 가우디의 건축 감각을 동시대인들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이 유지한 관계는 단순히 예술가와 후원자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진정한 우정이었다. 구엘 공원 한가운데에는 그리스 극장이라 불리던 (최근에는 Nature Square로 이름이 변경된)  대형 에스플러네이드(산책로)가 있다. 원래는 테라스 의자에서 볼 수 있는 대규모 야외 쇼를 개최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가우디는 항상 땅의 지형을 존중했지만 이 큰 광장은 인공적이다. 한 부분은 바위에 세워져 있고 다른 부분은 하이포스타일 (hypostyle 기둥아래) 위에 있다. 그리고 난간 역할을 하는 벤치는 당시 노동 인부들의 체형을 토대로 평균값을 내어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서 굉장히 편안함을 준다.  



구엘 공원의 정문은 Calle d'Olot의 남쪽에 있으며 하이포스타일 공간이 있는 계단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건물의 울타리는 소박한 돌로 만들어졌으며 구엘 공원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도자기와 메달리온으로 장식되어 있다. 손바닥 모양 디자인의 철문은 원래 프로젝트의 일부가 아니라 Casa Vicens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양쪽에는 컨시어지를 구성하는 두 개의 파빌리온이 있다. 왼쪽에 있는 것은 대기실과 전화 부스가 있는 컨시어지 역할을 했고, 오른쪽에 있는 것은 컨시어지의 거주지였기 때문에 이름이 가디언즈 하우스 (Casa del Guarda)이며 현재 바르셀로나 역사 박물관의 일부이다. 둘 다 세라믹 말뚝으로 덮인 평평한 벽돌로 된 전통적인 카탈루냐 금고로 지어진 매우 아름다운 지붕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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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오스트리아의 정원으로 알고 있는 곳은 도시화 계획을 위한 지역 중 하나였다. 구엘 공원이 공공 공원이 되었을 때 이 지역은 시립 보육원으로 사용되었다. 오스트리아 정원이라는 이름은 1977년에 오스트리아에서 나무를 기부함으로써 붙여졌다. 정원은 아름다운 전망이 자랑인데 그 중심에는 구엘 시대에 지어진 두 채의 집, 건축가 Juli Batllevell이 계획한 변호사 Martí Trias i Domènech의 집, 나중에 가우디가 구입한 Francesc Berenguer의 작품인 도시화의 파일럿 하우스가 있다. 가족이 그 곳을 그들의 거주지로 만들고 현재 가우디 박물관으로 운영중이다.

그리고 대망의 걸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 가족 성당)을 가보자. 1883년에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 프로젝트를 인수했지만 여전히 다른 건물에 대한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1914년에 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프로젝트를 맡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주된 영감의 원천은 빛과 자연이었고,  자연이 그의 진정한 스승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성경과 전례는 건축가에게 큰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가우디는 1926년 6월 10일 전차에 치여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데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가였던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엄청난 장례 행렬이 이어졌다 한다.  생전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카탈로니아 문화와 건축을 빛낸 안토니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원에 40년 이상을 바쳤던 점이 높이 평가되어 현재 성전 지하실에 있는 갈멜의 성모 예배당에 잠들어 있다. 한편  2010년 11월 7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이 성전을 봉헌하고 바실리카로 승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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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수난의 면' 은 조각가 수비라치 (Josep Maria Subirachs)가 맡았는데 1986년 모든 본당의 기초, 기둥, 둥근 천장, 주 본당의 파사드, 트랜셉트, 교차점에서 작업이 시작되어 2010년에 완료되었다고 한다. 80년대면 그래도 꽤나 최근인데 왜 이렇게 오래걸렸나 싶지만 20세기 중반까지 건축은 여전히 ​​나무 비계를 사용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사용되는 수단과는 거리가 멀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난의 파사드' 는 사실 조각이 그렇게 섬세하거나 아름답다고 느껴지진 않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수난의 시기를 겪을 때의 장면들이기 때문에 일부러  화려하거나 웅장하게 만들지 않은 것이 조각가의 의도이다. 특히 예수님 곁을 지켰던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이 비어있는 것은 고통받는 예수님을  강조하기 위함도 있고, 실제로 성경에 그녀의 얼굴에 대한 묘사가  없었으며 생전에 나병환자였다는 이야기까지 있어서 그 모든 것을 조합한 굉장히 디테일이 넘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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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궁전, 구엘 저택은 (Palau Güel, 팔라우 구엘) 1886년에서 1890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람블라 거리와 매우 가깝다. 이곳은 구엘을 위해 지어진 어두운 모더니스트 저택이기도 하지만 가우디의 첫 번째 주요 커미션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멋진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다. 다른 가우디 명소와 달리 이 궁전은 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방문할 가치가 있다. 



구엘과 가우디는 이 꿈의 궁전을 짓는 동안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저택의 내부는 외부만큼이나 흥미롭다고 한다. 가우디의 자연스러운 형태와 유쾌한 장식은 흉내낼 수 없다. 이 궁전의 옥상 테라스에도 모자이크 장식이 있다. 굴뚝과 환기 채널은 모두 다르고 환상적이다. 구엘 가족은 구엘 공원으로 이사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고, 1945년 구엘의 막내딸이 바르셀로나 시에 기증했다.




몬세라트 (Montserrat)


몬세라트 성모의 성역은 888년 기프레 엘 펠로스 백작이 리폴 수도원에 준 산타 마리아의 암자에 기원을 두고 있다. 1025년 리폴의 대수도원장이자 빅의 주교인 올리바는 산타마리아 암자 옆에 새로운 수도원을 세웠다. 이 작은 수도원은 성모님이 행하신 기적과 경이에 대한 이야기를 퍼뜨리는 데 도움을 준 순례자와 방문객을 맞이했다. 



17세기와 18세기 동안 몬세라트 수도원은 일류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위대한 작곡가들이 몬세라트 음악학교에서 음계를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곳의 소년 합창단이 유명하다. 나도 이번 기회에 듣게 되었는데 15분 남짓한 시간동안 참 마음이 차분해지고 웅장해짐을 느꼈다. 어떤 분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난 감정이 메말랐는지 사실 그렇게 울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설립된 지 천 년이 지난 오늘날 몬세라트는 순례자들을 계속 환영할 수 있도록 현대화되고 있다. 이렇게 외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험난한데 수도원이 있다는 것도 놀랍고 사람들이 찾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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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피부 때문에 검은 성모상 (La Moreneta 라 모레네타)라고 널리 알려진 몬세라트의 아름다운 로마 조각상은 12 세기때 부터 있었다고 한다.  성모님은 중앙에 무릎에 앉은 아기 예수와 함께 엄격한 정면 자세로 묘사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들 모두 왕관을 썼고 성모님은 우주의 상징인 지구본을 들고 있는 오른손을 내밀고 있다. 그녀는 이 전능한 왕이 그녀의 아들임을 나타내기 위해 그녀의 왼손을 아이의 어깨에 얹었다. 뒤에는 다산과 장수의 표시로 오른손으로 축복의 몸짓을 하고 왼손에는 빵 사과를 들고 있다.



오늘날 공동체는 거의 80명의 수도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베네딕트 수도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성 베네딕트의 통치에 충실한 몬세라트의 수도사들은 기도, 환대, 노동에 삶을 바친다. 성찬식 외에도 수도사들은 하루에 다섯 번 모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 읽기 및 기타 영적 작업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이곳의 수도사들은 신학, 역사 또는 철학을 공부하거나  다양한 출판물에 기여하고, 대학에서 과정을 제공하고, 연구에 전념하거나 도서관, 기록 보관소 등을 감독하는 등 노동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기념품 샵에도 수도사들이 쓴 책들이 많이 있었고 상당히  학구적인 분위기였다. 그런데 입장권을 사면 특산품 중에 술을 맛 볼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해서 나는 술을 야금야금 얻어 마시며 놀고만 왔다. 나는 수도사가 아니고 관광객이므로 ...



바르셀로나의 여정은 여기서 마무리 해보도록 하고 다음 여행지는 런던인만큼 산넘고 바다 건너 가 볼 예정이다. 사실 <봉주르 파리> 연재는 전시를 보고 온 당일, 늦어도 그 다음날 올리는 것이 나만의 룰인데  요즘은  잘 지키지 못하고   글을 몰아서 쓰다보니 급하게 마무리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여행중임에도 언제나 < 봉주르 파리> 독자들을 잊지 않고 있음을 알아주시면 고맙겠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 사진 원본은 https://blog.naver.com/mangchiro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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