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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전시

갤러리바톤, 브릴리언트 컷 <Brilliant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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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트 컷 <Brilliant Cut> (이미지=갤러리바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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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릭(Gillick)의 설치 작품(Screened Potential, 2023) (이미지=갤러리바톤)  




갤러리바톤은 2023년 7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한남동 전시 공간에서 국내외 8명의 작가 — 정희승, 리암 길릭(Liam Gillick), 쿤 반 덴 브룩(Koen van den Broek), 앤드류 심(Andrew Sim), 토니 스웨인(Tony Swain), 미츠코 미와(Mitsuko Miwa), 샤를로트 포세넨스케(Charlotte Posenenske), 최지목 — 이 참여하는 그룹전, 《Brilliant Cut(브릴리언트 컷)》을 개최한다.

만년의 솔로몬이 한 말이라고 전해지는 구약성서(전도서 1:9)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는 삶의 덧없음에 대한 저자의 통찰에서 나온 유명한 문장이다. 이 문장은 현대미술에서 차용(Appropriation)의 개념을 다룰 때에도 빈번히 인용되는데,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따라가다 보면 주로 원전성(Originality)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를 지지하기 위해 사용됨을 알 수 있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예술의 영역에서 작품이 작가의 독창적인 창조의 산물이라는 전통적인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는데, 그에 따르면 창작이라는 행위는 무에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요소들을 이용하여 (창의적으로) 재결합하는 것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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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트 컷 <Brilliant Cut> 전시장 전경 (이미지=갤러리바톤)  



바르트의 관점에서 대상이 되는 작품이 무엇과 닮았거나 연상된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작품을 모방했다는 일차적인 접근법으로 판단 되어서는 안되고, 두 작품이 기존하는 생활 양식, 언어, 문화적 코드, 사회적 담론 등을 공유한다고 간주해야 한다. 함축적이면서도 포용적인 주제로 전 세계 곳곳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는 이러한 가설을 목도하고 관찰할 수 있는 유용한 기회이다. 각각의 국가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한 사회의 문화, 지배 이데올로기, 젠더 및 세대 등의 고유한 양상을 예술적으로 구현해 내는데, 이러한 예술적 해석과 실체적인 사실 사이에는 양자 간의 전후 관계에만 기초해 “원전 vs. 차용”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회색 지대(the Gray Zone)”가 흔히 존재한다.

전시 제목인 ‘Brilliant Cut(브릴리언트 컷)’은 다이아몬드를 가공할 때 결정체의 부피 손실을 최소화하며 빛의 반사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다. 각각의 이차원 도형은 인접한 다른 도형과 동일한 크기와 모양을 갖는데, 기하학적 형태 및 서로 결합하는 각도에 따라 쉽게 연상되는 고유의 오각형 형상을 만들어 낸다. 원형 구조이기에 시작점과 끝의 구별이 의미 없고, 어떤 각도에서도 동일한 모습을 보이는 물리적 특성은 앞에서 얘기한 회색 지대 논리의 선상에서 이번 전시가 지향하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전시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마치 두 개의 카드가 서로를 지탱하듯 서 있는 엄밀한 기하학적 균형과 그러한 역학 구도 안에 잠재되어 있는 팽팽한 긴장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포세넨스케(Posenenske)의 미니멀한 조각과 미와(Miwa)의 페인팅은 작가의 엄밀한 의도 아래 복수의 독립된 오브제들이 하나의 작품을 구성한다. 포세넨스케의 조각(Square Tubes Series D, 1967/2014)이 산업 재료의 물질성과 미니멀한 형태에 결부된 중성적인 미를 떠올리게 한다면, 평화로운 전원의 모습을 유화로 구현한 풍경화(Las Vegas, 2011)는 그 정교함으로 회화적 위계를 피하며 인쇄 매체의 혼용 여부를 의심하게 한다.

정희승의 사진과 심(Sim)과 반 덴 브룩(Van den Broek)의 페인팅은 하나의 대상에서 분화되어 나온 이미지들이 상호 유사성을 보이며 병렬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동일한 매체와 크기로 구현된 정희승의 복사기 사진 연작(Copier A-E, 2019)과 반 덴 브룩의 거리 풍경(Loop 1/2,  2/2, 2023)은 인공적인 분위기로 톤 다운된 화면에 시간의 선형적 흐름을 가시적으로 담았다면, 마치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제작된 듯한 심의 정물화(Two Monkey Puzzles with Spring Growth (Almost Touching), 2023)는 자연에서 흔히 발견되는 대칭성을 세밀하고 담백하게 드러낸다.

길릭(Gillick)의 설치 작품(Screened Potential, 2023)은 개방된 격자 형태의 철골 구조물이 일정한 반복과 간격으로 벽면을 점유하고 있는데, 3 x 3의 배열 구조로 고유의 색 배열을 가진 정방형 구조물들의 군집은 “마방진”의 기호화된 한 형태를 암시하는 듯 하다. 스웨인(Swain)의 페인팅(The Last Lookalike, 2023)은 신문에서 찢어낸 다양한 인쇄된 이미지들의 유기적인 중첩과 덧 입혀진 유화의 유토피아적인 파노라마를 경험하게 한다. 특정한 뉴스 및 광고의 본래 의도와 무관하게 소환된 이미지들은, 현실과 환상의 혼재 가운데 서사적인 정경을 자아낸다.

최지목의 페인팅(The Light of Absence, 2023)은 강한 빛에 노출된 자신의 망막이 만들어낸 잔상에 대한 회화적 아카이빙과도 같다. 동일한 신체 기관이 노출된 자극에 시시각각 대항해서 생성한 다양한 기록들은, “경험과 표현된 것”간의 자의적인 관계에 대한 매체로써의 회화의 가능성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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