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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전시

이수진 개인전 《Still, Life, Manual》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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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작가의 여섯 번째 개인전이자 오에이오에이에서 열리는 두 번째 개인전을 9월 5일부터 10월 19일까지 개최한다. 작가는 공포나 스릴러 등의 장르에서 수집한 일상의 이미지를 통해 부정적 감정을 박제하듯 그려내던 작업 방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좀 더 능동적으로 불안을 다루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의 신작 21 점을 선보인다.


이수진은 그간 ‘불안’을 키워드로 삼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실체는 모호한 무형의 감각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작가는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 등 공포 장르의 영화에서 현실의 불안감과 대비되는 일상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일상에서 불현듯 다가오는 불안의 이미지들을 모아 이들을 캔버스에 절제되고 건조한 표현으로 그려낸다. 과감하게 크롭 된 화면과 집요한 묘사는 평범한 사물이나 장면의 맥락을 제거하는 동시에  익숙함 뒤에 숨은 익명의 감정을 미묘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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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잘못, 53x80.3 cm, 캔버스에 유채, 2024.© 작가, 오에이오에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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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자르기(오이), 27.3×34.8cm, 캔버스에 유채, 2024.© 작가, 오에이오에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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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선잠, 45.5×60.6cm, 캔버스에 유채, 2024.© 작가, 오에이오에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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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Study for the Arrangement in Black and White, 72.7x100cm, 캔버스에 유채, 2024.© 작가, 오에이오에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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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필요한 불, 17.9×25.8cm, 캔버스에 유채, 2024.© 작가, 오에이오에이갤러리 



이수진은 ‘불안’을 변함없이 이번 개인전의 주제로 가져오되, 불안을 다루는 ‘방식’에서의 변화를 시도한다. 앞선 ‘불안’의 키워드가 작가의 개인적 성향과 작가로서의 미래가 불투명했던 과거의 경험에 뿌리내리고 있다면, 최근 몇 년간의 활발한 작품 활동과 더불어 겪은 개인적, 사회적 경험들은 같은 심리상태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는 실마리가 되었다. 전시 제목 <Still, Life, Manual>은 이러한 태도의 변화를 함축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불안의 감정을 소환하는 작가의 특징적 소재인 정물(Still life)과 일상의 장면(Life)을 화면에 담아내며 부정적 감정을 완화하려는 의지에 더하여, 아직 오지 않은 미래나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비하는 방법(Manual) 즉, 불안을 다스릴 주체적인 방식을 탐구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작업의 소재가 되는 이미지를 수집하는 방식에서도 변화의 양상이 엿보인다. 여전히 영화의 장면이 주요한 이미지 수집의 대상이지만 자신의 경험이나 의도에 따라 각색하거나 영감을 얻어 새롭게 그려내기도 하는데, 이는 작가의 시선이 서서히 화면을 벗어나 주변의 삶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하와 1층 전시장 각각의 서로 다른 분위기는 이러한 작업 주제에 대한 접근법의 변화를 잘 담고 있다. 지하 전시장은 구조물로 인해 각 작품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내러티브가 단절되는 방식으로 설치되어 있다. 동선에 따라 숨어있다 나타나고, 두 이미지가 겹쳐져 보였다가 다른 벽면의 또 다른 이미지와 서로 마주 보게 되는 등의 설치 방식은 무의식적이고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무형의 감각인 ‘불안'을 공감각적으로 체감하게 한다. 식탁 앞에서 책을 읽는 인물, 퍼붓는 비를 닦아내는 와이퍼, 한창 세팅 중인 테이블, 설핏 든 낮잠, 김이 나는 주전자 등 일상에서 있을 법한 장면들이 불쑥 튀어나오거나 거리를 두고 겹쳐 보이면서,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서 각 개인에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불안의 모습이 묘한 기시감으로 오버랩된다. 거품으로 뒤덮인 두 손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잘못”은 전시의 시작이자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코로나로 촉발되어 어느 공중화장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올바른 손 씻기 방법 안내문에서 착안한 이 작품은, 매뉴얼을 따라 손을 씻었을 때 안전이 보장됨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물리적 혹은 심리적으로 무언가를 ‘씻어내야’ 하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흰색의 접시와 컵이 주름진 흰 테이블보 위에 가득 펼쳐져 있는 “Study for the Arrangement in Black and White” 또한 테이블 세팅법을 따라 단정하게 정돈되기 이전의 혼란 혹은 질서로 향하는 과정을 암시한다. 


분절되고 모호한 인상의 지하와 달리, 1층의 작품들은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한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매뉴얼을 떠올리게 한다. 칼이나 망치, 수평계 등의 도구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모습은 불확실한 미래나 처음 접하는 환경 등을 능동적으로 대비하려는 자세를 담고 있다. 망치질과 같이 무언가를 하는 행위는 실천을 통해 어떤 의무나 책임을 하나씩 덜어내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실천의 행위는 작은 성취감이나 안도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지하와 1층 곳곳에 배치된, 작가노트를 태우는 돋보기나 시동이 걸린 자동차, 무수한 별 앞의 컵 등의 작품들은 부정적 감정이나 상황을 의지적으로 떨쳐내는 과정을 은유하며 서로 다른 심리상태를 담고 있는 두 전시장을 엮어준다.  


이번 전시에서 이수진은 삶에서 거리를 두거나 혹은 가까이, 때로는 깊숙이 들어가며 탐구해 온 불안의 감정을 보편적인 소재와 이미지를 통해 구체적이고 의지적으로 다뤄내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감상자들은 개인의 경험 속에 일어나는 다양한 불안의 심상을 투영해 보고, 나아가 불확실성의 연속인 우리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수진(b.1983)은 국민대학교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고, 지난 개인전으로 2023년 <사물의 독백>(종로구립 고희동 미술관, 서울), 2022년 <일종의 평화>(오에이오에이, 서울), 2021년 <고스트 이미지>(드로잉룸, 서울), 2020년 <불안에 맞서는 기술>(더 그레잇 컬렉션, 서울) 등을 개최했다. 그룹전으로는 2024년 <순간의 순간들>(KT&G 상상마당 춘천), 2023년 <High-Stakes>(생 클로드 7가, 파리, 프랑스), <자아 위 꿈, 자아 아래 기억>(서울대미술관, 서울), <넘기고 펼치는>(교보아트스페이스, 서울), <On Longing (or, Modern Objects Volume II)> (헉슬리 팔러, 런던, 영국), <wonder>(드로잉룸, 서울) 등 국내외 다수의 단체전에 초청받으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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