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시 개인전 <HOPE LIGHT: Depit of Light>
본문

기 간: 2026.09.03.(목) ~ 2026.10.09.(금)
주 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159길 23-2
전시 소개
이시의 조각은 단지 기술적으로 정교한 재현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태도와 윤리적 지향성을 구현하는 조형적 선언이다. ‘Pick me’에서 ‘Look at me’로 이어지는 시리즈는 입양이라는 제도적 현실과 그 안에서 구성되는 정체성의 문제를 전면에 드러낸다. 그러나 이시의 조각은 이를 고발이나 연민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조형의 언어로 ‘새로운 존재 방식’을 제안하며, 관객이 그 존재 앞에서 어떻게 응시하고 반응하는지를 묻게 한다.
이시의 조각에는 조형성(formality), 내러티브(narrativity), 윤리성(ethics)의 세 층위가 정교하게 얽혀 있다.
첫째, 조형성은 아이들의 신체를 극도로 정밀하게 묘사하는 기술을 통해 구현되며, 피부 질감, 머리카락, 손끝의 긴장감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감각을 전달한다. 이 정밀함은 단순한 모사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존중의 방식이다.
둘째, 내러티브는 작품마다 부여된 제스처와 색채 대비를 통해 비언어적 이야기를 생성한다. ‘Pick me’ 시리즈의 약간 움츠린 자세의 소녀상과 ‘Look at me’ 시리즈에 등장하는 능동적 시선과 당당한 포즈의 소년·소녀 초상은 각기 다른 정체성의 태도를 드러낸다. 전자는 ‘선택받고자 하는 타자’의 위치에, 후자는 ‘응시를 견디고 주체화된 존재’의 위상에 놓여 있다.
셋째, 윤리성은 이 작업의 미학적 전제를 구성한다. 이시의 조각은 연민을 거부한다. 이는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상징적 폭력에 저항하는 전략이다. 약자를 동정의 시선으로 재현하는 대신, 그들 스스로의 존엄성과 당당함을 시각화함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다시 그 자신에게 돌린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 이유다.
이시의 작업은 후기 근대 조각에서 보기 드문 윤리적 조형성의 사례다. 그의 작업은 정체성을 스스로 구성해가는 과정에서, ‘정체성의 사물화’가 아니라 ‘존재의 태도’를 물질화한 상징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이 조각은 단지 예쁘고 정교한 조형물이 아니라, 세계 안에서 존엄하게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조각적 언어다.
에필로그
이시(Leesi)의 조각은 입양 서사의 이면에서 오랫동안 ‘보여지는 존재’로 머물렀던 아이들을 다시 ‘응시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이는 단순한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과 시선의 권력을 새롭게 배치하는 조형적 윤리의 실천이다. 아이들의 포즈, 색채, 동물과의 동반은 모두 존재가 스스로의 서사를 구성하고 세계를 향해 자립하는 장면으로 기능하며, 관객은 그들의 시선 아래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성찰하게 된다. 이때 조각은 연민의 기호를 벗어난 존엄의 형상이 되고, 이시의 작업은 조각이 도달할 수 있는 윤리적 층위를 새롭게 제시한다.
결국 그의 조각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정체성이 다시 쓰이고 태도가 발화되는 자리로서 조용한 미래의 윤곽을 그린다. 아이들의 응시는 더 이상 보호를 구하는 눈빛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스스로의 존재를 선언하는 눈빛이다. 우리는 그 시선을 마주한 순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 말해주는’ 자리가 아니라, 타인의 존재 앞에서 스스로를 성찰해야 하는 자리로 이동한다. 이 조용한 전환에서 비로소 조각은 질문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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