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 작가의 개인전 <La Maison de la Lune Brûlée (달집태우기)>의 피날레가 2025년 2월 12일 오후 5시 경북 청도의 청도천에서 개최된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연계 부대 전시로 2024년 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베니스의 빌모트 파운데이션에서 진행되었던 이번 전시는 2024년 2월 24일 이배 작가의 고향 청도의 전통문화 ‘달집태우기’ 의식으로 시작되었다. 청도의 주민들이 해마다 음력 1월 15일, 정월 대보름에 모여 행하는 세시풍습 전통의례가 전시의 시작점이 되어 지구 반대편 베니스로 향한 후 다시 청도로 돌아오는 순환의 여정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배 개인전《달집태우기 (LA MAISON DE LA LUNE BRÛLÉE) 》포스터
이배의 개인전 <La Maison de la Lune Brûlée (달집태우기)>는 정월대보름의 송액영복과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 의례와 현대 미술이 하나로 엮인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로, 사람과 자연, 동서양을 잇는 주제를 탐구한다. 비엔날레 전시 개막 전, 이배는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소원을 모아 전통 한지 조각에 옮겨 적고, 2월 24일 청도에 설치하는 달집에 묶어 함께 태웠다. 이 과정이 담긴 영상은 비디오 설치작 <버닝(Burning)> (2024)이 되어 베니스 빌모트 파운데이션에서 전시 기간동안 상영되었다. 전시 공간 입구에 설치된 대형 평면작 <불로부터(Issu du Feu)>(2024)는 절단된 숯의 표면에서 끌어낸 수묵 심연의 빛을 띄고, 공간 안쪽의 짐바브웨의 검은 화강암을 깎아 세운 <먹(Inkstick)>(2024)은, 한국 전통 서예문화 문방사우의 ‘먹’을 높이 4.6미터에 달하는 기념비적 형태로 구현하였다. 전시 공간의 바닥과 벽면에 굽이치는 <붓질(Brushstroke)>(2024) 3점은 이탈리아 파브리아노(Fabriano)의 친환경 제지를 전통 ‘배첩(marouflage)' 기법으로 공간의 바닥과 벽에 도배하고 청도의 달집이 남긴 숯을 도료 삼아 그린 것으로, 한지 위의 획과 농담이 받아낸 명상과 성찰, 비움과 채움의 공간을 구성한다. 전시장 출구는 베니스의 운하로 이어지는데, 이곳에 <달(Moon)>(2024)이 임시 구조물로 설치되었다. 노란 유리 패널에서 내려오는 빛은 베니스의 라구나를 비추는, 고향 땅 청도의 달집을 비추는 대보름의 빛과 연결한다.
2025 Moon House Burning, Conceptual Design Plan. © 작가, 조현화랑
Photo of 2024 Moon House Burning, 2024. © 작가, 조현화랑
비엔날레 전시 폐막 후, 이배는 전시장에 설치되었던 <붓질(Brushstroke)>과 도배에 사용된 종이를 떼어 한국으로 보냈다. 2024년 2월, 달집태우기가 열렸던 청도천의 작은 섬 전체를 베니스 전시에서 선보인 붓질과 동일한 형태로 덮은 뒤, 그 아래에 나뭇가지와 새해 소원들, 그리고 베니스 전시를 채웠던 도배지를 넣어 함께 태울 예정이다. 너비 200m, 폭 35m에 달하는 붓질은 하늘에서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장엄하다.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대신 수평으로 확장된 이번 달집태우기는 그 달집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본질적으로 이동됨으로써 비로소 순환을 완성한다. 대보름 달집태우기 풍습에서 농부가 봄을 맞이하는 강인한 마음으로 달집을 땅에서 올려다봤다면, 이제 청도와 베니스, 서양과 동양을 잇는 순환고리로서 붓질의 여정을 인간 인식의 범위를 넘어 되돌아보며 지난 한 해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베니스에서 상징처럼 부유하던 붓질은 다시 그 본질인 청도로 돌아와 불길 속에서 정화와 재생의 순간을 맞이한다.
자연과 분리된 정체성과 모호한 복잡성에 시달리는 오늘, 이배 작가의 <달집태우기>는 천체를 주시하며 지켜온 민속 의례와 전통을 기념하고 자연의 호흡을 되짚는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전통에 담긴 철학과 지혜뿐만 아니라 ‘전통’이라는 문화 보편소가 동시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역할과 가능성을 가졌는지 묻는다. 자연과 문화가 얽혀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 경북 청도의 밤하늘을 밝혔던 청솔가지가 글로벌 참여를 조명하며 하나 됨의 희망을 꿈꾼다.
이번 전시는 한솔문화재단뮤지엄 산과 빌모트 파운데이션이 공동 주관하고 조현화랑이 협력 및 후원, 경상북도 청도시, 주이탈리아 대한민국대사관,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 주한 이탈리아대사관, 주한 이탈리아문화원, 페로탕 갤러리, 에스더 쉬퍼, 파브리아노가 함께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독립 큐레이터 발렌티나 부찌(Valentina Buzzi)가 기획하였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