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개인전 《사라진 땅과 침몰한 세상(Haegue Yang: Lost Lands and Sunken Fields)》 개최
미국 댈러스 내셔 조각 센터, 2025. 2. 1.(토) – 4.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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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미국 댈러스 내셔 조각 센터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개인전 개최
현대미술가 양혜규가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소재의 내셔 조각 센터The Nasher Sculpture Center에서 대규모 개인전 《양혜규: 사라진 땅과 침몰한 세상Haegue Yang: Lost Lands and Sunken Fields》을 오는 2월 1일부터 4월 27일까지 선보인다. 세계 최고의 근현대 조각 컬렉션을 보유한 내셔 조각 센터의 큐레이터 리 아놀드Leigh Arnold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조각에 대한 모더니즘적 관념을 전복시켜온 양혜규의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기존 작품과 더불어 새롭게 시도한 소형 조각 및 공중 조각 50여 점이 미술관 전관에 걸쳐 밀도 있게 배치될 예정이다.
〈봄 항해자 – 여섯 공중 군집생태Spring Sailors – Six Synecologies Aloft〉설치전경,
제3회 라호르비엔날레 《산과 바다로부터》, 2024 © 작가, 사진: Muaz Asim 국제갤러리
〈공중 지류 생물 – 첨벙Airborne Paper Creatures – Swimmers〉2025. © 작가,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국제갤러리
〈공중 지류 생물 – 펄럭Airborne Paper Creatures – Flutterers〉(detail) 2025. © 작가,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국제갤러리
양혜규는 지난 30여 년간 근현대 조각의 전통적 규범에 일상적 사물과 민속 전통을 접목시켜 다채롭고 혼종적인hybrid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서로 다른 문화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이동 혹은 이주의 경험, 특정 지역의 토착적인 기법, 그리고 이와 관련된 관습 및 의식에 대한 심층적 탐구에 기반한 양혜규의 작품 세계는 근대성modernity의 다원적 면모에 대한 경의를 담는 동시에 서구 모더니즘의 단일성을 비판한다. 미술관의 로비를 포함한 1층과 지하 전시장, 그리고 조각 공원 등 전관의 다양한 공간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빛과 어둠, 공중과 지상, 가벼움과 무거움, 중력과 부력, 희소함과 밀도 등 대조의 변증법에 대한 작가의 면밀한 탐구이자 미술관의 건축적 특징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물이다. 특히 이런 의도는 출품작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번 전시 작품의 대부분은 자연을 품고 있음에도 매우 작고 가벼운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관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자연광이 은은히 투과하는 천장에 매달린 〈공중 지류 생물 – 삼중 군집생태Airborne Paper Creatures – Triple Synecology〉(2025)를 만날 수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 수 세기 동안 계승되고 있는 연鳶 제작 전통에서 영감 받은 이 신작 조각군은 지난 2024년 하반기에 작가가 제3회 라호르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연 조각 〈봄 항해자 – 여섯 공중 군집생태Spring Sailors – Six Synecologies Aloft〉(2024)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두 작품은 연 제작 전통이라는 참조점을 공유하지만,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레이저 절단 기술로 정교하게 디자인한 자작나무 합판 본체가 각각 바다 생물, 조류, 곤충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각 조각의 표면은 한지와 마블지를 오려 만든 문양과 장식, 작은 거울 피스, 그리고 파키스탄 펀자브Punjab 지역에서 사용하는 염소 방울과 다양한 색의 비단실 및 술tassels로 만든 머리 장식 파란다paranda 등으로 치장되어 더욱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공중 지류 생물 – 삼중 군집생태〉를 구성하는 세 개의 작품은 각각 크기가 다른 세 점의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물의 추상적 형태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새의 형상을 한 ‘펄럭Flutterers,’ 바다 생물을 닮은 ‘첨벙Swimmers,’ 그리고 곤충과 비슷한 ‘엉금Crawlers’은 각자의 이름과 특징에 걸맞는 모습으로 비상한다. 작품의 부제인 ‘삼중 군집생태’는 자연 세계의 서식지를 공유하는 다른 종種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탐구를 암시한다. 아름다운 내셔 조각 센터의 외부 정원으로 이어지는 입구에 설치된 이 작품은 관람객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공기의 흐름, 방울의 미묘한 움직임, 그리고 소리의 공명을 통해 해당 공간 및 주변 환경을 촉각적, 청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공감각적 환경으로 변모시킨다.
입구에서 바로 옆으로 이어지는 같은 층의 전시장에서는 신작 〈아담한 봉헌Mignon Votives〉(2025)이 소개된다. 작가가 처음으로 미니어처 조각과 수평적인 자연 풍경의 결합을 시도한 작품으로, 일종의 전환점을 암시한다. 15점씩 두 그룹의 소형 조각으로 구성된 이 조각군은 강에서 온 자갈과 건조 이끼 같은 유기적인 물질로 전시장 바닥을 덮어 만든 일종의 유사-자연 환경 속에 배치되어 있다. 작가는 조선시대 중기 문신이자 시인인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유배 중 일대의 경치에 반해 머물게 된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도의 예송리 자갈 해변과 고산이 설계하고 여생을 보낸 윤선도 원림에서 영감을 받았다. 자연의 형태를 띤 이번 설치작은 태양광이 아름답게 비추는 전시장 전반에 걸쳐 낮고 넓게 펼쳐지며 관람객의 시선을 자연스레 땅으로 이끈다. 동시에 〈아담한 봉헌〉은 분재 혹은 수석 같은 준-자연적 형식을 띤 문화적 참조물을 연상시키며, 나지막이 공명하는 자갈 해변의 소리를 배경으로 자연 환경을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인다.
텍사스주 댈러스 소재 내셔 조각 센터 Courtesy of the Nasher Sculpture Center 사진: Tim Hursley, 내셔 조각 센터
내셔 조각 센터의 임시 관장 겸 수석 큐레이터인 제드 모스Jed Morse는 이번 양혜규의 전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양혜규의 작업은 우리가 살아가는 다면적 세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양혜규의 조각들은 공중을 부유하고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는가 하면 춤을 추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놀라움을 안기고 도약하는 동시에 다양한 경험 속에서 의미를 만드는 데 있어 사물중심적인 역할을 조명한다. 이토록 매혹적인 양혜규의 예술 세계를 댈러스의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게 되어 매우 기쁘다.”
이번 전시를 기념하여 전시작의 도판이 포함된 도록이 출간될 예정이다. 양혜규가 초창기부터 2025년 현재까지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룬 예술적 발전을 조명하는 이번 도록은 작가의 조각 작업 전반에 대한 중요한 자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번 전시에 관한 충실한 기록을 바탕으로 기획자인 큐레이터 리 아놀드와 큐레이터 야스밀 레이먼드Yasmil Raymond, 그리고 미술사학자 토마스 맥도너Thomas McDonough 교수의 평론도 함께 수록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미국 댈러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컬렉터 하워드 & 신디 라초프스키Howard and Cindy Rachofsky 부부와 댈러스 관광 공공 개발 구역Dallas Tourism Public Improvement District (DTPID)의 후원을 받았다.
양혜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현재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2017년부터 모교인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대학교 슈테델슐레Die Staatliche Hochschule für Bildende Künste – Städelschule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양혜규의 작품은 과학적 현상부터 사회정치적인 내러티브, 그리고 미술사를 아우르는 폭넓은 참조점을 기반으로 다양한 매체와 문화적 전통을 결합, 다감각적이고 몰입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산업용품과 노동집약적인 공예 기법 등 작가가 사용하는 이중적인dual 혹은 혼종적인hybrid 재료는 현대 사회의 대량생산, 고대 문명, 그리고 자연 현상 등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의외의 연결 지점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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