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개인전 《돌과 연기와 피아노》 개최
국제갤러리, 12월 3일 - 2025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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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는 오는 12월 3일부터 2025년 1월 26일까지 서울점 K2(1, 2층)와 한옥에서 박진아의 개인전 《돌과 연기와 피아노》를 개최한다. 지난 2021년 부산점에서의 개인전 이후 서울점에서 처음 열리는 전시로, 작가는 미술관 전시장, 레스토랑 키친, 피아노 공장 등을 방문, 카메라 렌즈를 통해 포착한 장면들을 유화 물감과 수채화 물감으로 화폭에 재구성한 신작 40여 점을 선보인다. 박진아는 로모 카메라를 보조 도구로 활용해 제작한 〈로모그래피〉 연작(2004–07)을 선보인 이래 줄곧 대상이나 행위, 사건에 천착하지 않는 회화적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사건을 비가시적인 차원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회화적 사건으로 귀결시키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지난 2021년 부산점에서 열린 전시 《휴먼라이트(Human Lights)》가 밤의 야외 풍경도 포함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모두 실내의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으며, 각 장면은 전문성을 띠고 각자의 업무에 몰입해 있는 인물들을 구사한다. 전시 제목 ‘돌과 연기와 피아노’의 돌, 연기, 피아노는 각각 스쳐 지나기 쉬운 평범한 대상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들이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직접 방문하고 촬영해 작품 배경이 된 세 가지 장소, 즉 미술관 전시장, 레스토랑 키친, 피아노 공장을 순서대로 지칭하는 제유(提喩)적 표현이다.
그 가운데 ‘돌’로 지칭되는 작품군은 박진아가 2023년 부산시립미술관의 초대로 그룹전에 참여한 당시 포착한 장면들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그가 미술관을 사전 방문해 앞선 전시의 설치기간 중에 목격한 아트 핸들러 업체 직원들이 박현기 작가의 설치작업의 일부인 돌을 다루는 장면들, 작업자들이 전시장에 부착될 시트지를 준비하는 장면들이 포함된다. ‘연기’로 응축된 장면들은 국제갤러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키친 내부의 분주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피아노’가 일컫는 작품군은 박진아가 올해 독일 바이로이트(Bayreuth, 바이에른주 북부의 도시)에 위치한 슈타인그래버(Steingraeber) 피아노 공장에 방문해 공장 내부의 면면을 작업화한 최신 연작이다.
이들 장소는 모두 각 업종의 종사자들이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 ‘관계자 외 출입 금지(Staff Only)’ 표지판 너머에서 각자의 몫을 해내는 일상적 노동의 현장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정황상으로는 인물들의 행위가 각 장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박진아가 스냅사진을 통해 포착하고 그로 인해 우연성이 주된 요소로 작용하게 된 장면들에서는 그 어떤 극적 행위나 내러티브, 그리고 사전에 지정된 의미가 발견되지 않는다. 예컨대 〈키친〉 연작(2022–24)에서 무언가에 열중한 인물들 못지않게 화면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오히려 그 내부의 복잡한 조리대와 다양한 조리 도구들, 그리고 공중에 피어 오르는 연기이다. 또한 〈빨간 글자〉 연작(2023–24)에서는 전시장 바닥에 리드미컬하게 깔려 있는 네모반듯한 시트지가, 〈돌〉 연작(2023–24)에서는 화면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한 오렌지색 바닥이, 그리고 〈피아노 공장〉 연작(2024)에서는 대범하게 화면을 가로지르는 직선 및 곡선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자리 잡는다.
의미 전달을 의도하지 않는 어정쩡한 포즈의 인물들은 해당 장면의 전후를 유추하도록 하는 정황에 대한 암시만 전달할 뿐이며, 그로 인해 작품 전반에는 일말의 긴장감이 흐른다. 그 긴장감은 박진아가 카메라를 통해 포착해 낸 일상적인 소재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이 지닌 사회적 맥락이나 지시적 의미를 소거한 채 선, 면, 색의 형식적 관계를 부각시켜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을 향한 실험에 근접해 가기에 더욱 극대화된다.
박진아는 일찍이 “하이어라키(hierarchy)가 없는 수평적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의 회화 작업의 근간에 언제나 회화성에 대한 질문이 자리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진아는 회화의 물리적 진실에 근접하고 더 나아가 회화적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해 부단히 실험해왔다. 먼저 기법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작가는 드로잉에 가까운 속필로 성긴 이미지를 만들어 인물이 배경에 거의 흡착되는 듯한 인상을 자아낸다. 하지만 정작 그의 인물들은 드로잉에서와 달리 여러 겹의 붓질로 쌓아 올린 물감 덩어리로 구현된다. 또한 캔버스 표면에 흘러내리는 유화 물감과 종이 위에 번지는 수채화 물감의 자국을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더이상 회화 재료의 물리적 특성을 재현이나 의미 전달의 목적에 희생시키지 않는다. 대신 화면에 각 재료의 물질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의도적으로 함축적이고 생략된 표현을 만들어 보는 이에게 상상을 위한 여백을 제공한다.
한편 카메라는 전통적인 회화적 요소들 가운데 정립되어 온 위계 질서를 전복시키고 회화적 자율성을 획득하려는 작가의 실험에 유용한 도구가 된다. 우선, 박진아는 카메라가 담은 여러 장면들을 재조합해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그의 정지된 화면에 특정 시간대가 드러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아가 카메라의 속성 중 하나인 광각 렌즈의 영향으로 직선이 왜곡되는 현상, 카메라 플래시 라이트의 사용으로 배경(공간)이 색면 덩어리(평면)로 납작하게 추상화되는 현상, 카메라 렌즈의 각도에 의해 화면이 파격적인 비율로 분할되는 현상 등을 화폭에 노골적으로 반영한다. 그 결과 〈인터뷰를 위한 빛〉(2023), 〈분홍 방〉(2024), 〈푸른 공간 속 전동휠〉(2024)에서 보듯, 벽면과 바닥이 하나로 이어져 노란색, 분홍색, 파란색의 색면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인위적인 배색이 작업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잡기도 한다. 박진아는 이와 같은 장치들을 통해 추상회화의 특징이기도 한 우연성, 탈-시간성, 탈-장소성을 그의 회화면 안으로 끌어들이고, 추상적인 공간이 재현의 공간과 공존하도록 허용하는 독특한 작업세계를 구축한다.
이번 전시는 박진아가 드로잉과 회화, 구상회화와 추상회화, 그리고 사진과 회화 사이에 존재해 온 전통적인 경계선들을 허물고 표면적으로 매끄러워 보이는 회화면 안에 이질적인 간극을 만들면서 ‘회화성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그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과 다름없다. 자연주의적 화법이 카메라 렌즈의 왜곡과 작가의 회화적 실험으로 요약되는 몇 차례의 횡단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회화적 언어와 문법으로 돌아오고, 그로 하여금 오롯이 회화성을 탐구하는 치밀하고 의도적인 그리기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붙들린’ 현재진행형의 스치듯 지나가는 순간들을 통해 회화성을 고찰하는 기회를 갖기를 권한다.
박진아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런던 첼시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 다수의 공공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0년에는 에르메스 미술상 최종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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