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삭스 개인전 《피카소》 개최
타데우스 로팍 서울 포트힐, 2025. 4. 29.—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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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미술가 톰 삭스가 모더니즘 거장 파블로 피카소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담은 개인전 ⟨"피카소"⟩를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4월 29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삭스가 피카소의 예술 세계를 오랜 시간 천착하며 탄생시킨 신작 조각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톰 삭스, 여인과 오렌지(Woman with Orange), 2025. 스테인리스스틸 부품이 달린 실리콘 청동에 에나멜, 질산 제2철 녹청. 180.3 x 73.7 x 63.5 cm (71 x 29 x 25 in). © 작가, 타데우스 로팍 서울
톰 삭스, 전사의 두상(Head of a Warrior), 2024. 스테인리스스틸 부품이 달린 실리콘 청동에 젯소, 질산 제2철 녹청. 76.2 x 45.7 x 35.6 cm (30 x 18 x 14 in). © 작가, 타데우스 로팍 서울
톰 삭스, 앉은 여인 (Seated Woman), 2025. 캔버스에 합성 폴리머, 잉크. 182.9 x 152.4 cm (72 x 60 in). © 작가, 타데우스 로팍 서울
끊임없이 혁신적인 시도를 감행해 온 톰 삭스는 예술, 디자인, 기술 공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브리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특히 그는 1990년대 초 피에트 몬드리안의 회화를 테이프로 재현하는 실험적인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 언어를 확립했으며, 이후 르 코르뷔지에 건축에 대한 탐구를 선보이는 등 모더니즘 거장들과의 지속적인 예술적 교감을 이어왔다. 그의 작품은 완벽한 기계적 생산을 지향하는 현대 사회의 흐름에 반기를 들듯, 수작업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제작 과정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이번 전시에서 삭스는 '예술 그 자체'와 같았던 피카소의 작품 세계, 특히 일상 속 오브제를 활용한 그의 조각 방식에 주목했다. 피카소 역시 전통적인 조각 기법에서 벗어나 발견된 재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던 선구자였다. 삭스는 이러한 피카소의 브리콜라주 정신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철사나 못 대신 자동차 부품, 너프 풋볼 등 현대적인 재료들을 활용한 청동 조각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는 피카소가 던졌던 조각의 관습에 대한 도전을 오늘날의 맥락으로 확장시키는 흥미로운 시도라 평가받는다.
작가는 피카소의 조각 제작 방식을 따라 오브제들을 조합한 뒤, 고대 실납 주조 기법인 로스트 왁스 방식으로 청동을 주조하고, 섬세한 채색과 파티나 기법으로 마감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를 통해 탄생한 삭스의 조각들은 고전 조각의 위상을 재확립하는 동시에, 모더니즘 조각의 전통적인 흐름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에서는 피카소의 작품을 삭스만의 독특한 시각 언어로 재해석한 회화 및 드로잉 작품들도 함께 공개된다. 특히 삭스는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제작된 피카소의 '어두운 시대' 작품들에 주목했다. 그는 당시 피카소 작품에 나타나는 강렬한 선과 구도, 형태에서 자신의 작업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미국 그래피티와 스트리트 아트에 뿌리를 둔 삭스의 굵은 선은 인물의 윤곽을 강조하는 피카소의 흑선과 유사한 인상을 준다.
흥미로운 점은 삭스가 회화 작품에 규격이나 치수와 같은 작업 과정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둔다는 것이다. 초기 작품에서 피카소의 원작을 동일한 크기로 재현했던 것과 달리, 최근작에서는 일부 회화를 과감하게 확대하여 복제 과정을 전면에 드러낸다. 삭스는 이에 대해 "회화는 동사"라며, "작업은 행위 그 자체이며, 완성된 결과물보다 만들어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 방식은 관람객에게 예술 작품과 그 제작 과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예술사적 오브제와 관객 사이의 관계를 재고하게 만든다.
결국 톰 삭스에게 이번 전시에 출품된 조각, 회화,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은 모두 '조각'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귀결된다. 그는 "나는 언제나 조각부터 생각한다. 물론 이 작품들은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린 회화이지만, 그 제작 방식은 조각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내게 회화와 조각, 더 나아가 신발이나 영상, 인터뷰 사이에는 어떠한 경계도 없다. 내겐 전부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조각이다. 작업의 흔적은 언제나 결과물에 드러난다"라고 설명한다.
한편, 이번 전시와 연계하여 톰 삭스 스튜디오의 아카이브 자료와 작가의 신작 에세이를 담은 팬진이 발간될 예정이어서 기대를 더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삭스의 대표적인 시리즈인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총망라하는 대규모 전시 ⟨스페이스 프로그램: 무한대⟩(DDP 뮤지엄 전시 1관, 4월 25일~9월 7일)와 동시에 개최되어, 톰 삭스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를 폭넓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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