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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한 모든 것들의 이야기 : 구성적 기억과 재해석(Re-Interpre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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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트 상반기 기획전 “Reinterpretation”은 재구성이라는 큰 틀 안에서 파생한 네 가지의 테마로 엮은 전시로서, 시각적 현상과 내적 감각의 발현에 집중하여 이를 메타적으로 들여다보고자 국내, 외 작가 8인의 작업을 조명한다. 작업의 서사는 관객에게 닿는 일차적 관문인 공간뿐만 아니라 그곳을 점유하는 여러 요소들에 의해 늘 다르게 측정되고, 해석되어왔다. 구성적 기억(Constructive Memory)의 결과이기도 한 생각을 편집하고 각색하고 필요에 따라 미화도 멈추지 않는 작가들의 감각적 산물은 우리가 마주한 모든 것들이 결국 개인의 경험에 의해서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재구성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한다. 전시 주제인 ‘Reinterpretation’의 시작은 보이지 않는 사유와 가시적 시각물 사이의 균형과 호흡에 주안점을 두고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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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Membrino_Light Leak_2021_Acrylic on canvas_132.1cmx132.1cm (사진=서정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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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Rideout_American Collection Painting 59 (Warhol, Twombly)_2023_oil on canvas 82x142cm (사진=서정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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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ian Elwes_Picasso’s Studio (Rue Schoelcher, 1914)_2023_Acrylic on panel_91.4x 91.4cm (사진=서정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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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ed people_2023__oil on canvas_162.2x130.3cm (사진=서정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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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주_Silver Plant 1_2021_oil on canvas_193.9x40cm (사진=서정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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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송_collapsing, colliding_2021_oil on canvas_112.1x162.2cm  (사진=서정아트) 




전시장 초입에서 만나는 Thema 1 – Space, Studio’는 사람이 머무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공간의 초월성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데미안 엘위스(Damian Elwes)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의 고전 화가들의 스튜디오를 재현하고, 재구성해서 사적인 공간을 공적 영역으로 치환한다. 그는 한 사람이 머물던 공간을 물리적 관점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의 사조가 탄생한 최초의 시발점으로 여겨 신성한출발 지점이라 여긴다. 데미안의 관점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고전에 숨결을 불어 넣는 행위와도 같다. 모네, 세잔, 고갱, 프리다 칼로 등 그의 붓 터치를 거쳐간 200명의 작가 스튜디오는 저마다의 특성을 드러내며 다시금 되살아난다. 죽은 공간에 생기를 부여하는 화려한 색감과 자유로운 곡선의 필치는 재현 그 이상의 것을 표현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로써 작가에게 장소는 물리적으로 인식되는 공간이기 이전에 역사가 결합한, 역사로서 축적된 하나의 관계성을 형성하는 곳이 된다.

개인의 사적 영역이 내밀하게 드러나는 정수영(Chung Sooyoung)의 작업 역시 정제된 구도와 틀을 벗어나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여주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정수영의 작품 속 각종 오브제들은 실내 풍경 안에서 서로 얽힌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포토샵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재배치한 작업들은 자연스러움을 연출하기 위한 인지적인 행위로서 타인에게 자신의 내면을 내비치는 기능을 한다. 브라이언 라이더(Brian Rideout)은 온-오프라인 인쇄물에서 발췌한 각종 현대적 이미지들을 차용해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전유(appropriation)의 한 방식을 택한다. 정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작품 속 공간의 이미지는 불변하는 요소와 가변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시대만의 전유물이기도 하다. 브라이언은 여기서 주관적 시선이 개입할 여지를 두지 않고, 온전히 아카이빙의 한 장치로서 이미지를 활용하는데, 특정한 순간에 포착된 공간과 그 안을 채우는 사물들은 어디서 소비되고, 어떤 이유로 그곳에 있는지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과거와 현재의 교차지점에 놓인다. 이로써 첫 번째 테마에서 볼 수 있는 세 명의 작업은 한정된 영역에 속해 있지만 작업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 도달한 시간의 개념에 가깝다.



이에 반해 ‘Thema 2 – Scenery, Image’는 자연물에서 얻은 심상이 직관적 형태를 떠나 완전한 추상의 형태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안나 멤브리노(Anna Membrino)의 작업은 자연에서 빌려온 소재에서 몇 가지 특징을 추출해 내적 시선이 전하는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는다. 자연물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발견한 작은 부분을 극대화함으로써 얻어진 결과물처럼, 선들의 조화와 색채의 미묘한 파동은 인간이 대자연을 마주했을 때 일으키는 감각의 전이와 닮았다. 노은주(Rho Eunjoo) ‘Plant’ 연작 역시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한 장면을, 또 어느 한순간 특정 부분을 편집하는 방법으로 불완전한 기억에서 오는 모호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오랜 시간 동안 작가가 겪었던 매체와 물질의 특성은 늘 변해왔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감각은 새로운 것에 적응하며 익숙해지고, 소멸되기를 반복한다. 완성된 형태로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흩어진 재료들, 인공적인 모든 것들은 제대로 기능하기 전날 것으로 작용하는데, 이는 연출된 화면 안에서도 작가의 시선이 닿는 하나의 소실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 편, 두 회화 작가의 평면 작업 앞에 김채린의(Kim Chaelin)의 크고 작은 조각이 정적이고 고요한 심상을 깨뜨린다. 힘을 가해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묵직한 조각의 형태들은 현란한 색채로 물들어 곳곳에 놓여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유희(遊戲)를 유도하며 작품과 작품 사이의 거리를 확장하는 작은 조각들은 관람자로부터 스스로 놀이하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전시장 한 켠에 숨어 눈에 잘 띄지 않은 미니어처의 조각들은위장(Camouflage)’ 동시에 발견되기를 원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Thema 3 – Movement’에서는 움직임을 지각하는 존재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이 테마에서는 비언어적 감각을 깨우고 한발 더 나아가려는 김찬송(Kim Chansong)의 작업을 소개한다. 작가의 시선은 신체에서 출발해 외부와의 경계를 우회하여 다시 신체로 돌아온다. 신체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은 우리가 그 안에 속해 있는 한 외부의 시선에 갇혀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사진 속 흔들리는 신체의 움직임을 발견한 작가의 경험에서부터 시작한다. 새롭고 낯선 시각, 신체의 일부분을 확대한 물감의 덩어리들은 서로 맞닿아 겹치고 때로는 갈라지듯 표현되어 작가만의 언어인경계를 생성하고 재구성한다. 같은 맥락에서 ‘Thema 4 – Expression’에서 만나는 정지윤(Jung Jiyoon)의 작업은 매일 마주하는 일상 속 풍경을 모노톤의 주조색으로 처리하여 색다른 시선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낯선 인물들의 표정과 움직임에 주목한 작가의 시선은 결코 기억의 한 부분이 아닌, 조형적 형태를 이루는 개체들의 집합체이다. 특히 물감을 뿌리고 흘리는 드리핑 기법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회화의 고유한 물성과 특징을 보여주는 장치다. 여기서 감정과 서사와 기억과 같은 요소는 역설적이게도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그저 흑백 사진처럼 하나의 색감으로 물든 풍경, 분주하게 움직이는 익명의 사람들을 응시하며 얻은 표상과 제스처, 상황만이 있을 뿐이다.


8인의 작업이 보여주는 재구성의 방식은 교란되어 나타나는 시각적 이미지 안에서 하나의 줄기를 찾아 꿰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과 경험을 통해 얻은 결과물에 관객을 초대하여 페인팅과 조각, 추상과 구상, 또 과슈 작품이 어우러져 함께 호흡할 것을 기대한다.
 



글. 이윤정 (서정아트 선임큐레이터) 



ⓒ 아트앤컬쳐 - 문화예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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