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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의 사진소묘

[이건행의 사진소묘] 시간이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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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pixabay.com
 


시간이 멈춰 섰다!

안산에 있었다. 언제 가본 적이 있는지 기억조차 없는, 전혀 인연이 없는 도시의 합동분향소에 가서 분향을 하고 몇 시간을 걸어 문화광장에 도착했다. 운집한 사람들 속에 끼어 눈을 감고 앉았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 그것은 분명 집단 통곡이었다.

나는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그리움’이란 말이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걸 느꼈다. 그리움! 나는 대체 누구를 그리워하는 걸까? 이 그리움의 정체는 뭘까? 숨이 가빠지면서 그리움 속에 이내 빠져들고 말았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였다가 / 다시 문이 닫힌다 / 사랑하는 이여 /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일부)

황지우의 이 시가 바로 내 감정 상태였다. 추모행사 내내 이 시를 더듬으면서 아이들을 그리워했다. 이유가 필요없었다. 아이들이 당장 살아나왔으면, 기적처럼 살아나왔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미치도록 아이들이 그리웠다.

아이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바다에 빠진 그 많은 아이들 중 단 한명도. 나는 그리움에 들떠 안산에 간 이후 야탑광장으로, 서울 청계광장으로, 술집으로 향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나오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디 나 혼자뿐이겠는가?

2014년 4월 16일 이후 봄은 오지 않았고 설령 왔다 하더라도 흐르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아이들이 저 차가운 바다에 빠진 이래 멈춰 섰다. 어쩌면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 아이들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무력하게, 바다에 빠져 죽었는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이유가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면! 

이건행
한양대 국문학과를 나와 일간지와 시사주간지 등에서 사건, 미술, 증권 담당기자로 일했다.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임권택 감독의 <창>으로 영화화)를 출간했으며 현재는 시창작에 몰두하면서 분당 서현에서 인문학 카페인 '봄언덕'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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