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기획전 ‘팬텀센스 Phantom Sense’ 개막 행사 소개
국내외 시각예술가 7인이 선보이는 다중감각적 실험의 장을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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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재, ‘무제_소극적 진동’(2023), 혼합 재료, W650×H290 D700㎝ (앞), ‘무제_재균형-불균형-재균형’(2023), 혼합재료, W260×H290 D120cm (뒤), 해미 클레멘세비츠(Rémi Klemensiewicz), ‘종 / 총 (소리단어 시리즈)’(2018), 스피커, 케이블, 앰프, 목판, 100×120×16㎝
염인화, ‘임포스터 키친’(2022),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PC 기반 VR 프로젝션, 마우스, 영상, 라이트 패널, 라이트 박스, 목재 조각, 스테인리스 가구 등), 가변 크기
후니다 킴, ‘디코딩을 위한 돌 #01(네오 수석 시리즈)’(2021), 모래 3D 프린팅, 32비트 마이크로컨트롤러,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ToFsensor, 온도 센서, 스피커, 100×100×120㎝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이하 아트센터)가 3월 24일부터 6월 28일까지 진행되는 ‘팬텀센스 Phantom Sense’전(展)의 개막 행사를 소개했다. 고휘의 ‘소리 오브젝트’ 퍼포먼스와 해미 클레멘세비츠의 사운드 퍼포먼스가 그것이다.
고휘 작가의 소리의 시각화 구현을 통한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 ‘소리 오브젝트를 위한 구성’은 이번 전시에 출품한 신작인 ‘소리 오브젝트와 중첩된 8개의 스피커, 3개의 구조물을 위한 구성’(2023)과 개념적으로 연동되는 퍼포먼스로써 관객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유도한다. 해미 클레멘세비츠 작가의 사운드 퍼포먼스는 청각적 세계(소리, 음악)와 시각적 세계(사물, 이미지)가 공존하고, 여러 매체를 경유하는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시각예술에서 중심적으로 여겨져 온 시각이라는 감각을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해 왔던 청각, 미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과 동위에 위치시켜 느껴보고 감상하게 하는 국내외 작가 7인의 작업을 소개한다. 전시에서는 시지각을 가장 강력한 감각 수단으로 삼는 인간의 인지 방식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비인간 세계가 시각 너머 인지할 수 있는 다양한 감각 체계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 보는 방법을 발견해 본다.
예컨대 오감뿐 아니라 반향정위, 전자파 탐지에 이르는 다중적인 감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출품작을 통해 우리가 추상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여러 감각에 대해 다시 느껴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즉 소리를 촉각으로 느끼게 하거나, 냄새를 들려주거나, 맛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감각의 변주를 경험해 보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이론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1947~2022)가 그의 글 ‘현실 정치에서 물정치로(From Realpolitik to Dingpolitik)’(2005)에서 사물 정치(Politics of Things)라는 개념을 언급하며, 인간과 비인간을 동위에 위치시키는 것을 인류가 생태계를 균형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써 제시한 것에 근간을 둔다. 팬텀센스 Phantom Sense를 통해 시각 중심의 전시 문화 속에서 감각 간의 위계를 전복시키고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비인간으로, 중심에서 주변으로 사고하는 실험의 장을 펼쳐 본다.
◇ 전시 구성
- 플랫폼엘 전관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감각 세계의 변주와 전환을 소개
팬텀센스 Phantom Sense 전시의 첫 번째 공간인 갤러리 2에서는 설치예술가 장시재의 신작인 산업적 재료로 제작된 거대한 스케일의 조형물과 만나게 된다. 멈춰 있는 듯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형되는 것들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어 하는 듯한 독특한 형상을 표출하는 조각은 관객이 어떤 감각을 이용하여 작품을 마주하고 인지했는지에 따라 그 작품의 존재성이 달리 다가올 것이다.
그와 인접한 장소에 설치된 해미 클레멘세비츠의 ‘종 / 총(소리단어 시리즈)’(2018)는 음향 장비(스피커와 케이블)를 통해 언어기호를 표현하는데, 여기서 관람객은 스피커에서는 표현된 단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소리를 재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전시의 두 번째 공간인 갤러리 3으로 입장하는 순간 고휘 작가의 ‘소리 오브젝트와 중첩된 8개의 스피커, 3개의 구조물을 위한 구성’(2023)이 펼쳐지는데, 스크린에 한정되어 작동하는 기존 방식을 벗어나 전시장에 위치한 8개의 스피커와 3개의 구조물로 구성돼 있다. 전시 공간에 들어선 관객은 소리를 1차로 마주한다. 이후 플로어 플랜 영상을 2차로 확인해 자신이 서 있는 물리적 공간과 구조물들이 가상 공간에서 소리 오브젝트와 중첩되고 있음을 인지한다.
고휘의 사운드 영역을 돌아 나오면 하나의 거대한 타원형 공간을 맞이하게 된다. 안성석의 신작인 ‘T/S’(2023) 작품이 설치된 공간이다. 이미지, 게임, 웹 플랫폼 같은 기술적 하드웨어를 활용해 제작한 일종의 레이싱 휠과 모션 기어 시뮬레이션 경험을 할 수 있다. ‘내일의 도덕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제시하며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도덕이 지배하는 내일을 무대로 삼아 시뮬레이션 게임 엔진의 동기화를 통해 잠시 가상 속 공감각의 세계에 접속해본다.
갤러리 공간에서 유연하게 이어진 통로를 지나면 아넥스 3에서 전시되고 있는 염인화의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을 구현한 ‘임포스터 키친 Imposter Kitchen’(2022)을 만나게 된다. 임포스터 키친은 간호사복을 입은 원숭이 직원의 안내에 따라 운영되는 가상의 XR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관객은 작가가 만든 부엌과 레스토랑에서 직원들, 고객들의 관계와 소통 방식을 통해 우리 삶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질서와 층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염인화의 레스토랑을 나와 계단을 한 층 내려가서 아넥스 2에 도착한 관객은 후니다 킴의 ‘디코딩을 위한 돌 #01(네오 수석 시리즈)’(2021)가 있는 공간으로 진입하게 한다. 붉은 커튼으로 둘러싸인 이 특별한 공간은 후니다 킴이 제시하는 익숙한 것에 대한 재해석, 물질에 대한 능동적 인식이 가능한 세계다. 작품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돌이 배치되어 있지만 그것은 돌의 형상을 했을 뿐, 돌에 대한 데이터만을 채집해 샌드 3D 프린팅으로 생성한 제3의 수석이다. 우리는 물질을 어떻게 사유하는가. 또 사회, 문화를 어떻게 감각하고 있는가. 후니다 킴의 작업은 비가시적 데이터로 발현된 다중적인 감각인지에 ‘실제’를 넘어선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볼 기회가 된다.
아넥스 2를 벗어나면 중정이 나온다. 전시는 끝나지 않았다. 우측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머신룸으로 향하면, 어렴풋한 빛 속에서 안성환이 조성한 공간이 나온다. 이번 전시에서 안성환은 신작 ‘Sweet!’(2023)을 선보이며 머신룸을 꽉 채우는 크기의 튜브를 설치했다. 향을 발산하는 튜브는 관객과의 인터랙션을 통해 사이즈가 유동적으로 변하며 형상과 인식을 후각과 연결하도록 해준다. 공간에 향을 가득 채운 안성환이 개인과 존재에 대해 던지는 질문을 함께 사유해본다.
◇ 참여 작가 및 출품작 소개
고휘 Ko Hui
고휘는 소리를 감각하는 행위에 집중해 소리와 연결되는, 혹은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탐구한다. 주로 자연 현상, 형태,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알고리즘을 제작해 예측 가능함과 예측 불가능함 사이를 설계한다. 이를 소리와 연결하여 감각하는 방법을 탐구하고 오디오비주얼, 제너레이티브 아트, 사운드로 제작한다.
작가에게 사운드와 이미지를 교차하는 감각의 전치는 익숙하다. 소리와 시각을 연결하는 오디오-비주얼(audio-visual) 아티스트인 그는 이번 전시에서 2022년부터 지속해온 오디오 비주얼 연작 ‘소리 오브젝트를 위한 구성’을 스크린에서 작동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공간 안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변주한다. 소리 오브젝트를 위한 구성은 오선지 악보가 갖고 있던 일방향적 진행을 벗어나 다수의 악보를 동시 진행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규칙을 통해 다방향적 진행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소리 오브젝트는 주체적으로 공간을 유영하며 연주 영역에 읽힐 때마다 각기 다른 소리를 만들어 낸다. 다양한 시도로 구현된 소리 오브젝트를 위한 구성 연작은 작가가 실시간으로 연주 영역을 그려내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비롯해 랜덤하게 연주 영역이 생성되는 설치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소리 오브젝트와 중첩된 8개의 스피커, 3개의 구조물을 위한 구성’(2023)은 스크린에 한정돼 작동하는 기존 방식을 벗어나 전시장에 위치한 8개의 스피커와 3개의 구조물로 구성돼 있다. 전시 공간에 들어선 관객은 소리를 1차로 마주한다. 이후 플로어 플랜 영상을 2차로 확인해 자신이 서있는 물리적 공간과 구조물들이 가상 공간에서 소리 오브젝트와 중첩되고 있음을 인지한다.
스스로 유영하는 오브젝트들의 흐름은 구조물에 의해 간섭되고, 각각의 오브젝트가 스피커에 닿을 때마다 각 오브젝트의 성질에 해당되는 소리를 연주해 낸다. 연주자의 부재에도 음악은 흐르고, 공간은 악보 없는 음률로 채워진다. 이들이 감각되는 순간을 통해 예측할 수 있는 흐름 위에서 시간의 축을 비틀고, 일반적으로 관객이 소리를 읽는 행위와는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감각하게 만든다.
안성석 Sungseok Ahn
안성석은 사진을 출발로 해 가상 공간의 설계까지 다루는 다양한 작업 스펙트럼을 구현한다. 최근 그의 작업은 근본적으로 온라인 게임의 세계관 및 행동 양식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미지, 게임, 웹 플랫폼 같은 기술적 하드웨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 매체 특유의 속성과 감각, 시선이 근간이 되는 그의 작업은 서사적 측면에서는 개인적 경험과 사회문제를 교차시키는 작가만의 특유의 내러티브가 스며들어 있다. 최근 주요 작품인 ‘너의 선택이 그렇다면’(2021)에서는 모션 기어 시뮬레이터와 게임 엔진의 동기화를 활용해 제작한 메타버스(metaverse)를 통해 쓰레기 무단 투기꾼과 경찰의 추격전이란 가상 세계 속 사건의 경험이 물리적 현실 속 신체 감각으로 발현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고 있는 ‘T/S’(2023)는 내용적 형식적 면에서 그 연장선에 있다. 이번 서사에서 작가는 ‘내일의 도덕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다소 의미심장한 질문을 관람객에게 허용하며 이는 또한 우리 인간은 언제든 도덕을 던져버릴 준비가 돼 있음을 반증하려 한다. 멀리 있는 불의를 지적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것이 ‘나’와 관련된 일이 되는 순간 ‘이건 좀 다르지’가 되며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뒤틀려 버린다. 내가 잃을 것이 없을 때, 갈등에 휘말리지 않아도 될 때, 도덕적인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추상적 레벨의 가치이고 권위임을 그는 되새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 피해가 올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도덕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그만의 특유의 서사를 통해 도덕적 딜레마와 그 양면성 사이에서 주저하는 우리 자신을 투사하려 시도하며 상황과 대상에 따라 선택적 도덕적 이탈을 자유자재로 이루는 인간상을 그리려 한다.
우리는 ‘언제든 도덕을 던져버릴 준비’가 돼 있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많은 장치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T/S는 기능하지 않는 도덕이 지배하는 내일을 무대로 삼는다. 레이싱 휠과 모션 기어 시뮬레이터를 장착한 게임 엔진의 동기화를 통해 잠시 그 무뎌진 도덕적 감각의 세계에 접속해본다. - 마치 가상의 존재 감각과 뒤섞여 버린 현실 속 몸 감각으로 변주되는 것처럼.
안성환 Sunghwan Ahn
안성환은 상황을 연출하고, 상호작용을 자극해 현상을 만들어내는 전략을 사용해 작품을 제작한다. 후각이란 이성적인 영역보다 감성에 치중하는 영역으로 충동적, 심리적 효과를 자극한다고 여기는 안성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는 향으로 세계를 감각한다.
출품작 ‘Sweet!’(2023)은 다년간에 걸쳐 후각을 통해 존재자(existant)로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실험의 종착점처럼 보인다. 작가는 2020년 작 ‘My Scent’에서 자기 몸에서 추출한 에센셜 오일을 다양한 향과 혼합해 향수를 만들고, 주관적인 후각 언어와 객관적인 생명공학 패턴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공식화했으며 스스로의 본질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퍼포먼스 ‘Take Off’(2020)를 기획했다. 이런 작업의 흐름은 자동 디스펜서를 사용하여 공간 안에 작가의 체취로 만든 향수를 가득 채우는 ‘Wear Me’(2021)로 이어졌다. 일련의 과정에서 작가는 추출된 정유(essential oil)의 향에서 개인의 고유한 개체성(individuality)를 기대했으나 작가가 포착한 것은 안성환의 향이라기보다 인간종(species)의 것에 가까웠다. 이런 결과는 작가에게 어쩌면 인간이란 개인으로 존재하기 이전에 사회적, 문화적 요소로 이루어진 존재일 수 있겠다는 시각을 환기시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시의 마지막 공간으로 내려가면서 느껴지는 어렴풋한 향으로 이번 작품은 시작된다. 전시장 안에 들어서면 공간 가득 채워진 거대한 액체 탱크가 관객을 맞이한다. 튜브에서는 작가의 몸에서 추출한 인간종의 체취를 담은 향이 흘러나오고 거대한 허파처럼 서서히 줄어들었다가 다음날에는 다시 팽팽하게 차오른다.
비워내고 다시 채워지며 내부와 외부의 부피가 치환되는 과정은 2019년 작 ‘My Balloon’의 방법론을 이어간다. 전시장 가득 부풀어 있던 튜브는 전시가 마감되는 순간 그 부피가 줄어든다. 내부의 기체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향으로 퍼져 공간을 다시 채울 것이다. 형상을 존재라고 생각해 볼 때, 형태로 부풀어 있던 공간이 향으로 채워지는 것은 개인으로 여겨지던 존재자가 사실은 사회와 문화와 연관을 가지며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며 관객에게 ‘나’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한다.
염인화 Inhwa Yeom
염인화는 다양한 생체 행위, 반응을 포용하는 XR 기반의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이라는 매체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 매체는 3D 그래픽 기반의 기술적 장치들과 그 장치들의 관계가 구성하는 전시 환경을 뜻한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는 전시 환경에 관객을 특정 존재자(existant)로 설정하여 퍼포먼스의 주체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찬드라 X’(2022)에서는 관객을 간-행성 네트워크 환경 관리자로 분하게 하거나, ‘코코 킬링 아일랜드: 식도락 투어’(2022)에서는 가상의 섬에 생태 관광객으로 변신시키는 식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디지털 환경 안의 미각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간호사 복장을 한 원숭이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가상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임포스터 키친’(2022)으로 들어온 관객은 고객으로서 역할 수행을 시작하며 멋진 레스토랑에서의 만찬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마우스 커서를 잡고 작품 속으로 들어간 관객에게 작가는 천연덕스럽게 서빙 트레이를 내민다. 그가 부여받은 역할은 레스토랑 서버였던 것이다. 서버로 분하면서 관객이 집중하여 관람해야 하는 부분은 접시에 놓인 분자 배양 음식도,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셰프나 실험실 같은 모습의 주방도 아닌 5개의 테이블과 거기서 들려오는 대화들이다. 테이블에는 최근 NFT 미팅을 망한 예술가와 큐레이터, 또는 건강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대표, 물주와 투자가들, 간병봇과 환자의 보호자들 그리고 종교인들이 앉아있다.
다양한 주제로 전개되는 대화는 결국 모두 나이 듦(aging)에 대한 것으로 수렴되는데, 그 사이에서 염인화는 봇으로 대변되는 간병인 이슈 등을 짚거나 실버타운이라는 소재로 자본에 따른 거주 이슈를 드러내며 노화를 키워드로 다양한 사회 문제를 건드린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역할 놀이 안에서 작동하는 위계다. 모든 테이블에는 밥을 사는 사람과 얻어먹는 사람, 또는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위계들이 존재하며, 주방 안쪽 풍경을 보여주는 좌측 이면 영상에서는 셰프가 하는 말에 끊임없이 직원들이 네 셰프(Oui chef)!를 외치며 위계를 강화한다. 염 작가의 설계안에서 관객은 손님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다. 눈을 가리고, 입을 가리고, 귀를 막은 전시장에 한쪽에 장식된 세 마리의 원숭이처럼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 마냥 음식을 전달하고 이동할 뿐이다. 시각 중심의 위계에서 벗어나 다른 감각의 층위를 제안하는 이 전시에서 염인화 작가는 가상 공간 안에서 경직된 시스템과 이동할 수 없는 서열을 노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내며 위계의 해체를 역설하고 있다.
장시재 Sijae Jang
장시재는 을지로에서 접할 수 있는 산업적 재료로 거대한 스케일의 조형물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에는 그의 전체적인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는 멈춰 있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형되는 것들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어 한다. 우리의 삶은 순간들의 집합이며, 그 순간은 찰나의 시간 동안 무수히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작업의 중심 이야기이다. 그래서 모든 순간을 확신하는 행위는 작가에게 무책임하게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모든 작업은 머릿속에서 완벽히 계획적으로 그려내고 현실로 재현해 내는 작품과는 거리가 멀고, 찰나를 포착하는 도구로 인간의 감각 기관을 넘어선 비인간의 감각적 기능의 작업 원리에 가깝다.
평소 그의 작업 과정은 반사경 위성 카메라나, TDC 도플러 (혈류 이동 경로 촬영) 원리와 매우 비슷하다. 이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고도의 감각을, 필요에 의해 발명한 기술이다. 이 기계적 감각은 수십 나노미터의 혈관 속 섬세한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내고 앞으로의 변이 및 기형 가능성을 예측해 낸다. 이런 장시재의 작품은 전시가 진행되는 중간에도 계속 알게 모르게 변화될 것이며, 관객은 이 모든 과정을 마주할 수도, 인지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혈류 속 형이학 세포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기계 인지 과정을 의존하는 행위와도 닮아 있다.
작품 속 수많은 가닥은 불규칙한 굵기들과 형태들로 한데 뭉쳐, 뒤엉킨 혈관처럼 군집을 이루며 하나의 조형적 형태를 이루고 있다. 관객은 작품을 마주하는 위치에 따라 흘러내리는 형상을 볼 수도, 무거운 액체가 쏟아지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관객은 자유롭게 작품 사이를 거닐기도 하고 통과하기도 하면서, 마치 거대한 혈류 이동 경로 기계의 감각적 기능을 찰나의 압도감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
관측자 즉 관객이 어떤 감각을 이용해 작품을 마주하고 인지했는지에 따라 그 작품이 존재하는 시간적 흐름과 공간적 측정은 상대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이렇듯 비인간의 감각은 섬세한 유전 알고리즘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다. 기계적 관점에서, 기계의 감각을 통해 마주한 인간의 순간이라는 단위를 그의 작업을 통해 관객이 직접적 경험을 체험해 보기를 기대한다.
후니다 킴 Hoonida Kim
후니다 킴의 작업은 일상에서 만나는 익숙한 환경과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개인들의 지각 방식의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환경 인지 장치’인 아파라투스(apparatus)를 제작한다. 그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청각, 시각, 촉각과 같은 감각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구조적 장치나 유동적인 조건들에 의해 극적으로 변화하는 요소라고 말한다. 자신이 고안한 크고 작은 프로덕트(product)가 일정한 매뉴얼에 따라 작동하며 개인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요소들을 능동적으로 발견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언제나 관객의 피드백과 환경의 가변성을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연속적인 변주의 그래프 속에서 확장하는 그의 세계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와 청각적 자극으로 무뎌진 우리의 감각을 환기시키는 매개가 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디코딩을 위한 돌 #01(네오 수석 시리즈)’(2021)는 작품의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연작으로 이어질 이 작업에서 다루는 것은 자연석의 묘취를 실내에서 감상하게 하는 수석이라는 대상을 재해석한 작업이다. 도상적으로는 자연석의 형상처럼 보이나 그것은 실제 수집한 돌이 아니라 돌의 데이터만을 자연에서 채집해 샌드 3D 프린팅으로 생성한 제3의 수석이다. 그는 ‘네오 수석’이라 부르는 이 인공 돌과 함께 자신이 채집한 돌(데이터)들을 생성하게 하고 풍화시키는 환경(물, 바람 소리를 녹음)을 함께 채집해 공간에 둔다. 좌대에 부착된 손잡이를 돌리면 ‘스몰 데이터 스케이프’로서 네오 수석은 마치 오르골처럼 돌의 표면을 읽어내면서 소리를 발산한다. 그리고 지금 서 있는 이 전시 공간의 환경 데이터에 따라 실시간으로 소리에 미세하게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 과거의 물리적 돌을 수집하는 수석의 개념이 아닌, 비물질적 데이터로 수집하여 정적인 수석이 아닌 감상자에 의해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네오 수석’을 제시한다.
가속하는 기술은 동시대인의 삶을 깊숙이 침투해 가고 있기에 작가는 이 또한 우리가 문화를 사유하고 감각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네오 수석을 감상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가 기존에 경험했던 ‘실제’라는 것을 넘어 ‘또 다른 실제’로 확장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로부터 발현된 다중적인 감각 인지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어 다시 생각하고 바라볼 시간을 갖게 한다.
해미 클레멘세비츠 Rémi Klemensiewicz
해미 클레멘세비츠(Rémi Klemensiewicz)는 설치에서 라이브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을 취하는데 작업 실험의 요소로서 ‘소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단순하고 아날로그적인 재료와 실험 과정을 통해 시각과 청각 사이의 상관관계와 상호 의존성에 관한 개념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들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시각과 청각을 연결하는 도구로서 언어나 음악 기호 등의 시스템이 종종 사용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개념을 확장하여 언어적 기능에서 작용하는 청각과 시각 그리고 촉각까지의 구조적인 대응 관계를 보여주는 실험적 장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적 감각의 주체는 사이매틱스(CYMATICS) 원리에 있다. 스위스의 의사이자 예술가인 한스제니(Hans Jenny)의 ‘토너스코프 실험’을 통해 우린 현상계 물질들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물은 음파를 통해 창조음을 알 수 있다. 이 연구는 진동이 실제로 물질을 창조하고 형태를 이뤄가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로 음향학에 큰 물결을 일으켰다.
인간에게는 익숙할지 모르는 청각, 진동을 느끼는 촉각, 그리고 언어의 인지를 받아들이는 시각은 어쩌면 인간만의 것이 아님을 이번 전시 속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린 느낄 수 있다. 태초 때부터 지구를 이루는 작은 원소들 가운데 하나는 진동 및 미세한 소리의 파장이었으며 그 음의 파장은 시간적 영속성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모든 생물의 상위 포식자가 되어 고등 생물로서 이 모든 감각을 인간만의 것으로 인지하고 인간의 감각들만을 통해 타자 또는 객체를 마주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인간의 언어적 구조라는 장치를 이용해 감각 기능의 주체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게 된다.
특히 작품 ‘종 / 총(소리 단어 시리즈)’(2018)는 음향 장비(스피커와 케이블)를 통해 언어기호를 표현하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이뤄져 있다. 스피커는 표현된 단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소리를 재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 작업은 시각적 요소(단어)와 청각적 요소(표현된 대상/사물의 소리) 사이의 동어 반복 효과를 위해 준비된 장치다. 이 작업은 인간의 언어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감각을 어떻게 자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초대한다.
어쩌면 인간은 오만하게 다섯 가지의 감각만을 사유하며 언어적 규칙을 만들고 세상을 그들의 기호로만 해석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작품은 이에 대해 인간이 만든 언어적 기능은 제한된 감각 경로를 넘어 또 다른 감각으로도 전달될 수 있으며, 그 감각적 언어를 통해 인간 외의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지구상 존재하는 물질/비물질, 인간/비인간의 모든 것들은 시각화된 음악일수도 있으니 말이다.
◇ 전시 개요
· 전시 이름: 팬텀센스 Phantom Sense
· 전시 시간: 2023년 3월 24일~6월 28일(83일) 오전 11시~밤 8시
· 전시 장소: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갤러리 2, 3, 아넥스 2, 3, 머신룸(B3)
· 전시 작가: 고휘, 안성석, 안성환, 염인화, 장시재, 후니다 킴, 해미 클레멘세비츠(Rémi Klemensiewicz)
· 후원: 루이까또즈
· 전시 문의: 카카오 플러스 친구 ‘플렛폼-엘’
· 티켓 가격: 일반 1만원, L-friend 8000원, 청소년(만 8~18세) 6000원, 우대(만 65세 이상, 장애인) 6000원, 단체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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