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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의 엽서 한 장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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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없다



미세먼지 짙게 깔린 봄날

사무실 인근 백화점에서

주민등록등본 떼는데 오류가 뜬다

오른쪽 엄지 지문을 입에 대고

김을 쐐도 소용없다

발급기는 은행 제출 시한 따위

알 바 없다는 듯 너를 증명하라고

명령할 뿐이다

지문인식이 안 되는데

나를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나는 아무개, 책 몇 권 읽은 먹물,

구름쫓는 수캐, 미세먼지..

AI는 꿈쩍하지 않는다

기를 쓰고 나를 찾아도

나는 없다

나는 나가 아니다

그럼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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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시집 '상사화 지기 전에' 중 나는 없다. 편






작가 이건행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임권택 감독에 의해 ‘창’으로 영화화)를 펴냈으며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린 뮤지컬 ‘상대원 연가’의 모티브가 된 동명 시를 2015년 발표하면서 시 창작을 해오고 있다. 2021년 시집 『호박잎쌈』(디지북스공모 선정·이북)과 인문학 소개서인 『인문독서 가이드북』(편저)을 각각 펴냈다. 경제일간지 등에서 사건·미술·증권 담당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일간지에 '이건행 칼럼을 연재하는 한편 인문학 책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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