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전 《CASE STUDY #1: INSIDE THE HOUSE》
선구적인 거장들의 예술혼이 깃든 가구와 현대 예술가들의 의미있는 작품
본문
원앤제이갤러리는 2024년 2월 20일부터 3월 10일까지 《CASE STUDY #1: INSIDE THE HOUSE》 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세기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본명. Charles-Édouard Jeanneret, 1887-1965)를 비롯하여 그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 1896-1967),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1903-1999), 장 푸르베(Jean Prouvé, 1901-1984)의 1920-60년대 주옥같은 26점의 가구에 초점을 두었다. 또한, 르 코르뷔지에 건축물을 오랜 시간 마주하며 느낀 감각과 기억을 회화적인 언어로 승화시킨 김수영 작가의 초기작을 포함한 회화 3점, 공간에 따른 변형의 가능성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억의 흔적을 형상화한 정소영 작가의 조각 5점도 한 자리에 선보인다.
전시장 전경(사진=원앤제이갤러리)
전시장 전경(사진=원앤제이갤러리)
본 전시 제목 《CASE STUDY #1: INSIDE THE HOUSE》는 1945-66년 사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르 코르뷔지에와 영향을 주고 받은 당대 주요 건축가들에게 의뢰한 36가지 하우스를 본보기로 현대 주택의 기준을 재정의한 프로그램 “Case Study Houses”를 모티브로 하였다. 현대 디자인의 원형을 제시한 선구적인 거장들의 예술혼이 깃든 가구와 현대 예술가들의 의미있는 작품이 ‘하우스’라는 삶의 공간 안에 조우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낯설지만 새로운 관계 맺음을 경험하길 기대한다.
“A house is a machine for living in.”
– Le Corbusier –
1923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유럽 전역의 건축가들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력 있는 저서 『건축을 향하여 Vers une architecture』에서 그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글을 남겼다. 이 메시지에는 현대적인 삶의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생애에 걸쳐 ‘인간을 위한’ 건축을 남긴 르 코르뷔지에의 철학이 담겨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에 따른 생활양식의 변화로 인테리어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1905년부터 가구와 인테리어 디자인을 계획하였다. 그는 1922년 파리에 건축사무소를 건립하면서 피에르 잔느레와 협업하기 시작했으며, 1927년 샤를로트 페리앙이 사무소에 합류하면서 공동으로 작업하였다. 1929년에는 장 푸르베가 프랑스 현대예술가연합(Union des Artistes Modernes, UAM) 창립 멤버로 활동하면서 이들과 협업, 그리고 독립적으로 가구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 시떼 라디우스(Cité Radieuse, Marseille, 1952)에 설치되었던 유니크한 형태의 <A pair of screens/Room dividers>(c.1952)를 선보인다. ‘룸 디바이더’로도 불리는 이 스크린은 르 코르뷔지에 건축에서 보이는 기하학적 수직과 곡면을 두루 사용한 독특한 기능의 작품이다. 벽감이나 찬장과 같은 작은 공간을 둘러싸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코르뷔지에의 친구이자 시테 라디우스 유치원 교사로 재직한 릴렛 리퍼트(Lillette Rypert)가 특별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르 코르뷔지에의 ‘룸 디바이더’ 디자인과는 형태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선명한 오렌지 색감이 두드러져 조형성이 돋보인다.
르 코르뷔지에와 50여 년간 협업하며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실현시켜 온 피에르 잔느레는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다. 잔느레는 건축뿐만 아니라 가구에 관한 탁월한 디자인 감각으로 페리앙, 푸르베와 교류하며 협업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그는 1951년 르 코르뷔지에의 초청으로 인도 찬디가르(Chandigarh)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으며, 15년 간 인도에 머무르며 찬디가르 도시 계획 및 건축 프로그램의 수장으로 주요 행정 및 공공 기관, 주택 단지 건축과 이에 따른 다양한 영역의 가구 디자인을 총괄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찬디가르 프로젝트 당시 디자인 된 ‘X leg’ 암체어, ‘File rack’, ‘Square’ 테이블, 분해 가능한 로우 체어 등 잔느레 특유의 디자인을 발현시킨 가구 컬렉션을 선보인다.
“The extension of the art of dwelling is the art of living”
– Charlotte Perriand –
20세기 프랑스 모더니즘을 주도한 샤를로트 페리앙은 당대 여성을 향한 차가운 예술계 분위기 속에서 1927년 파리 살롱 도톤(Salon d’Automne)에서 열린 <Bar sous le toit (Bar under the roof)> 전을 통해 알루미늄, 크롬, 유리 등 획기적인 소재로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르 코르뷔지에 건축사무소에 합류하여 잔느레와 함께 10년 간 가구와 인테리어 디자인 전반에 관여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들과 협업할 당시, 살롱 도톤 <Interior design equipment of a house>(1929) 전에 선보인 독보적인 컬렉션 <LC4 - Chaise longue>를 비롯하여 ‘LC6’ 다이닝 테이블과 ‘LC7’ 체어를 재조명한다. 또한, 1940년 일본 정부의 산업 예술 분야 고문으로 초청되어 도쿄로 건너간 시기, 일본의 전통 문화와 재료, 공예 기법을 연구하여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 한 벤치와 의자, 스툴 등 페리앙을 대변하는 독창적인 가구들을 선보인다.
“We must build beauty for every day and for everybody”
– Jean Prouvé –
프랑스의 전설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장 푸르베는 1929년 UAM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르 코르뷔지에, 잔느레, 페리앙과 지속적으로 교류하였다. 가구에서 대형 전시구조물, 건축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을 아우르는 그는 르 코르뷔지에 건축물을 위한 조립식 유닛을 연구하는 등 코르뷔지에 건축 설계에 상당수 참여했으며, 잔느레, 페리앙과 건축 및 디자인 프로젝트 협업, 그리고 전시를 공동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1948년 경 디자인 된 더블 암체어 <Visiteur Kangourou FV 32>를 비롯하여 그의 상징적인 <Standard chair, Model Métropole No. 305> 컬렉션, 1941년 최초로 제작되어 10년 간 진화를 거듭하며 탄생된 <S.A.M table, no.502>(c.1951) 그리고 <’Cafétéria’ guéridon, model no.511> 등 다양한 형태의 테이블과 체어를 집중 조명한다.
“나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도시에 대한 추상적 상태를 풍경으로 재현해 본다.”
– 김수영, 2024 –
회화에 관한 끊임없는 수행을 거듭해 온 김수영 작가는 2000년대 초 독일 유학 당시, 유럽의 일상으로 자리 잡은 유명 건축가들의 모던 건축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럽의 근대 건축물에서 자아내는 추상적인 특징을 회화로 옮겨 낸 작가는 귀국 후, 일상 속 도시 풍경을 몽타주한 작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특히, 초기작에서는 작가에게 새로운 리듬으로 다가온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이 자주 등장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랜 시간 그의 건축물을 관찰하면서 느낀 감각과 기억을 바탕으로 건축물의 일부를 묘사한 회화 <Cité de Refuge>(2004)를 선보인다. 건축물의 이름을 그대로 본 딴 이 작품은 1933년 완공된 최초의 숙박 시설 ‘구세군회관(Cité de Refuge)’을 소재로 하였다. 르 코르뷔지에 특유의 건축 공간 단위인 모듈의 반복과 창문에 채색된 원색적인 색면이 캔버스 화면 위에 사실적이면서 추상적으로 담겨있다. 한 공간 안에 전시된 르 코르뷔지에 ‘스크린’ 작품으로 인해 입체와 평면을 넘나드는 감각의 미묘한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이는 또 다른 초기작 <Weisshof Sett>(2003)는 독일 건축가 피터 베렌스(Peter Behrens) 건축물의 풍경을 담았다. 절제된 색감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간결하면서 균형적인 비례감이 조화를 이룬다. 또한, 한국에 거주하며 작업한 <Work No.71>(2021)은 국내 건축물에서 발췌한 타일의 패턴과 건물의 일부를 몽타주한 회화 작품으로 2012년부터 이어온 작가의 ‘Work’ 연작이다.
“난 과거가 오히려 상상의 여지를 준다고 생각한다…(중략)
미래는 고개를 한 방향으로 돌려 무언가를 응시할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 정소영, 2020 –
오랫동안 지질학을 통해 역사의 면면을 형상화한 정소영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시간의 근원적 층위와 역사와 시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다층적 관계와 경계를 조형적으로 풀어낸 조각을 선보인다. 공간의 흐름을 타고 물질과 물질 사이를 유영하는 <굴러온 길>(2020-2021)은 점유의 과정과 생태계로 만들어진 자연의 구획 사이를 구르는 궤적의 역사를 담은 작품이다. 그래프를 그리듯 긴 벽면을 따라 설치된 <29.5일>(2021-2023)은 지구와 달의 인력이 만들어내는 만조와 간조의 시간 흔적을 기록한 것으로, 전혀 다른 힘이 동시에 존재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사건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작가가 2021년 원앤제이갤러리 개인전 <해삼, 망간 그리고 귀>에서 선보인 작업의 연장선으로 규모 면에서 확장되었으나 더욱 섬세하게 표현된 최근작이다.
또한, 인간의 역사 속에서 변형되고 새롭게 구축되는 자연의 생성과 소멸의 시간을 형상화한 <이미륵의 거울>(2021-2022) 연작은 불연속적인 시간의 시퀀스를 만든다.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를 거쳐 유럽으로 망명한 이미륵(1899-1950)의 저서 『압록강은 흐른다』(1946)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기억은 어떻게 재구성되는가를 조형적으로 질문한다.
ⓒ 아트앤컬쳐 - 문화예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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