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맥시멀리스트가 더듬는 희망의 감촉, 파라 알 카시미 (Farah Al Qasimi) > 김나영의 "남"이 그리는 이야기 (Picture "Other" Lives by Nayo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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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의 남이 그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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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맥시멀리스트가 더듬는 희망의 감촉, 파라 알 카시미 (Farah Al Qasi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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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대 맥시멀리즘”


인테리어 데코레이션에서 영원히 결판 나지 않을 대결 구도입니다. 


8년 간 강경한 맥시멀리스트였던 저는 이제 미니멀리즘을 한 두 방울 정도 받아들이는, 타협하는 맥시멀리스트가 되었는데요. 그래도 맥시멀리스트 정신에 가차없이 투철한 공간을 보면 여전히 맥박이 빨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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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Noz Design by Noz Nozawa)



맥시멀리즘에는 아찔하게 넘쳐 흐르는 생기, 감각적 즐거움을 절제하는 근엄한 품위 따윈 너나 가지시라는 뻔뻔스러움, 그리고 뻔뻔한 당당함에서 나오는 동력이 가득해요. 벽을 뚫고 나올 듯한 동력은 모터를 단 희망이 만들어 내는 추진력과 닮아 있어요. 

맥시멀리즘적 공간이 뿜어내는 희망은 여러 겹의 층(layer)에서 나와요. 서로 다른 색깔과 표면을 지닌 소재들이 겹쳐서 다채로운 감각 경험을 빚어 내고, 공간에 깊이를 더해요. 시각, 촉각, 때로는 후각이 동시에 자극될 때 사람은 세포 끝까지 강렬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곤 하죠. 황갈색의 매끄러운 가죽, 손끝을 녹작지근하게 만드는 올리브색 벨벳 등 모든 표면이 자신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살리면서 겹쳐질 때 공간에는 입체감이 생겨요. 깊은 공간, 살아 약동하는 공간, 앞으로 나아가는 공간. 


아랍에미리트와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아티스트 파라 알 카시미(Farah Al Qasimi)는 자타공인 맥시멀리스트입니다. 자연스럽게, 알 카시미가 만드는 공간은 어지럽도록 선명한 색채, 온갖 패턴과 표면이 겹친 층들로 가득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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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흡연』, 파라 알 카시미, 2017 (이미지 출처: 파라 알 카시미 웹사이트)


하지만 수많은 층들이 쌓인 이 공간에는 감각적 배부름과 함께 어떤 강박이 스며요. 더없이 화려한 보랏빛 옷자락과 그 뒤에 겹친 묵직한 카페트, 스르륵 소리가 날 듯한 새틴 소파 커버,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랍 에미리트의 역사를 시사하듯 블랙 유머처럼 걸려있는 영국적 전원 풍경화는 맥시멀리즘 특유의 짓궂은 깊이를 만드는 요건을 충분히 갖춘 것 같은데 그런 낙관적 윙크가 좀처럼 느껴지지 않죠.


그건 알 카시미가 층의 힘을 교란할 줄 아는 맥시멀리스트이기 때문이예요.


층의 생명력이 공간을 채우는 모든 표면과 색채가 각자의 기를 내뿜으며 3차원적 입체감을 만들어낼 때 생기는 것이라면, 알 카시미의 면밀한 공간에는 그 입체감이 눌려있어요. 눈이 시릴 정도로 퍼런 카메라 노출은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공간감을 지우죠. 그 공간감이 본래 반짝이거나 화려한 패턴을 지닌 표면 위에서 지워진다면 입체감은 더 사라질 거예요. 보는 사람의 눈이 오직 그 반짝임과 패턴의 꼬임에 머물게 될 테니까요. 맥시멀리스트 인테리어에서 느껴졌던 올록볼록한 리듬감은 LED 화면처럼 코팅된 표면 아래에서 뭉개집니다. 공간 속 물건과 사람들의 생기도 과도하게 매끄러운 그 표면 아래에 갇힐 거고요.


평평한 휴대폰 모니터 아래에서 빛나는 ‘감각적인’ 인스타그램 사진들을 떠올려 보세요.


알 카시미가 쌓아 누르는 공간은 그의 기억과 몸에 남아있는 아랍 에미리트의 실내와 인터넷에서 넘쳐나는 코팅된 감각 경험들을 투영합니다. 부족과 종교가 삶의 단위였던 과거가 1971년 아랍 에미리트 수립 이후 초현대를 넘어 미래적인 초고층 건물들로 점철된 현재와 급작스럽게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흥분과 현기증, 화려한 천으로 장식된 공간과 사람들, 냉방된 공기에 깊이 배어있는 향수 냄새, 그리고 그 감각적 소용돌이에 휩싸여 탐색하는 인터넷 속 이미지들. 과거의 아랍 에미리트와 현재가 하나의 공간에서 뒤섞이고, 아시아 대륙 너머 서구의 이미지들이 화면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에미리트의 반짝이는 이미지가 다시금 외부에 보여지는 언뜻 아득한 현상이 일상이 된 현실.페르시아 현대 미술의 젊은 기조인 “페르시아 만 미래주의 (Gulf Futurism)”를 알 카시미의 공간은 양껏 유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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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오른쪽) 1960년 대 두바이 해안가; 2024년 두바이 (이미지 출처: UAE National Archives,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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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래) 『무제』, 『새장』, 파라 알 카시미 (이미지 출처: 파라 알 카시미 웹사이트)


아랍 에미리트의 건조한 사막과는 어울리지 않는 촉촉한 자연 풍경에 더 엉뚱하게도 새빨간 앵무새가 놓여 있고, 진짜 아닌 이 풍경은 다시 호화로운 금빛 소파가 자리잡은 (아마도 에어컨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을) 인위적 실내에 놓입니다. 3차원 공간이 그림이 되면서 2차원 평면이 되고, 그것이 다시 플래시 터진 사진이 됨으로써 더욱 납작해지죠. 미국인 뮤지션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사진 속 여성은 교란된 공간감을 더듬듯 소파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고요. 아마도 알 카시미와 비슷한 세대일 이 여성의 줄타기에서 공간을 면밀히 조종하는 알 카시미의 손짓이 보이는 건 놀랍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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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왼쪽, 오른쪽) 『누라의 방』, 『호피 무늬 옷을 입은 여자』, 『아가씨 아가씨』, 파라 알 카시미 (이미지 출처: 파라 알 카시미 웹사이트, Galerie)


알 카시미는 자신이 “층(layer)”과 “창문(window)”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인터넷에 갑자기 노출된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인터넷은 외부와 연결하는 창문이면서 자신을 주변과 단절시키는 블랙홀(blackhole)이기도 하죠.” 앨리스가 떨어졌던 토끼굴(rabbit hole한번 탐닉하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것을 의미하기도 해요)과 비슷하지만 이상한 나라(wonderland)에 넘쳐났던 생생한 촉각과 시각, 후각은 매끈한 유리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블랙홀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진짜 케이크보다 언제나 더 맛있게 보이는 인스타그램 피드 속 케이크는 보고 또 봐도 배와 눈의 욕구를 완전히 채워주지 못하죠. 세밀한 레이스 커튼과 “메스껍도록 달디단” 핫핑크 이불, 시선을 빨아들이는 호피 무늬 사진은 양껏 즐기고 나서 휴대폰 화면을 끄면 왠지 허무하잖아요. 알 카시미는 거울, 액자, 휴대폰 화면과 같은 “창문”들을 능수능란하게 겹쳐 “층”을 만들면서 깊이와 너비를 알 수 없는 인터넷 토끼굴의 매력/마력을 환기해요. 그 매끄러운 이미지들이 눈의 미각을 얼마나 중독시키는지, 그때 내가 에어컨 바람이 얼리다시피 한, 사막 도시의 아파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쉽게 잊게 되는지.

 


그런데 여기서 흥미롭게 삐딱한 지점이 하나 있어요.


알 카시미의 작업이 디지털 문화의 양면성(“감각은 즐겁지만 허무해”)을 드러내는 여느 작품들과 달리 계속 아른거리는 이유예요.


 

알 카시미가 현란한 눈속임 스티커(트롱프뢰유trompe-l'oeil) 같은 삶의 공간과 그 공간을 다시 교란하는 디지털 문화가 자신이 기억하고, 느끼고, 회의하고, 사랑하는 아랍 에미리트의 ‘평범한’ 일상이라는 사실을 긍정한다는 점이예요.



“보는 사람이 [작품에 드러난] 지리적 위치 너머를 보지 못한다면 그보다 심도 깊은 아이디어를 설명해 주는 건 제 몫이 아니예요.” 아랍 에미리트를 번쩍번쩍한 두바이 빌딩, 오일 머니(oil money), 영화에 나오는 사막, 이슬람 보수주의 따위의 익숙한 표지로 치환하는 경향에 대해 알 카시미가 던진 대답이예요. “제가 의도한 관객들(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 작품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작품을 보면 바로 이해할 거예요.”


알 카시미는 사막 한 가운데에 놓인 휘황찬란한 쇼핑몰로 압축되는 페르시아 만의 소비주의와 디지털 문화 밖에 서서 눈살을 찌푸리지도, 그것이 아랍 에미리트의 특이할 것 없는 일상이라는 사실에 덮어놓고 부끄러움을 드러내지도 않아요. 이 공간 밖의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아랍 에미리트’란 객관화를 떨쳐 버리지 못한다면 알 카시미의 작품은 ‘디지털 문화 비판 아트, 두바이 에디션’ 정도에 그치겠죠.


하지만 알 카시미가 자신과 자신이 의도한 관객들의 삶의 단면에 보내는 애정과 공감을 탐지한다면, 나른한 강박이 감도는 듯 보였던 그의 맥시멀리즘적 공간에서 뜻밖에도 어떤 희망의 더듬거림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검은 유머로 감춰진 듯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희망의 감촉. 알 카시미가 바다 건너 관객이 느끼도록 하고 싶었던 건 그런 감촉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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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시미의 『안녕 미래』 포토북. 북커버로 둔갑하고 있는 화려한 눈속임 스티커가 들어있어요.
독자가 직접 "층"을 만들고, 불안, 강박, 그리고 희망을 더듬어 볼 수 있도록.


글ㆍ사진_김나영 (에디터)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사와 석사 과정을 이수하고,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컬러풀하고 별 것 아닌 이야기, 바다 건너 남이 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실 별 거고, 우리와 내가 사는 이야기라고 말하는 게 좋다. 소소한 책과 그림 이야기를 한다.
웹사이트: prismaticreader.com 인스타그램: @nayoung.nai.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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