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5일 - 2026년 9월 13일
Alte Pinakothek: Wie Bilder erzählen-Storytelling von Albrecht Altdorfer bis Peter Paul Rubens
뮌헨의 쿤스트아레알(Kunstareal)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미술을 대표하는 세 개의 피나코테크가 자리한다.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유럽 미술을 다루는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 19세기 미술을 중심으로 한 노이에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Pinakothek der Moderne)다. 그중에서도 알테 피나코테크는 유럽 회화사의 주요 흐름을 보여주는 방대한 컬렉션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독일을 비롯해 이탈리아, 네덜란드, 플랑드르 등 유럽 각지의 회화를 아우르며 여러 시대와 지역을 대표하는 걸작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현재 전시 중인 700여 점의 회화에는 뒤러와 루벤스의 주요 작품을 비롯해 라파엘로, 티치아노, 안토니 반 다이크, 렘브란트와 프란스 할스, 푸생과 무리요 등 유럽 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주요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1836년 개관한 이 미술관의 풍부한 소장품과 뛰어난 명작들은 비텔스바흐(Wittelsbach) 가문의 통치자들이 구축한 미술 컬렉션에서 비롯되었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바이에른 공작과 선제후들이 수집한 회화 컬렉션은 16세기에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수세기에 걸쳐 크게 확장되었다. 1800년을 전후해 뒤셀도르프, 만하임, 츠바이브뤼켄의 궁정 소장품이 뮌헨으로 이전되면서 종합적인 컬렉션이 형성되었다. 이 컬렉션은 19세기 초 세속화 과정과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1세가 추진한 중요한 작품 매입을 통해 규모와 중요성을 더욱 키워갔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현재 알테 피나코테크에서는 회화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다양한 방식을 살펴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16세기와 17세기 초 독일·네덜란드·플랑드르 회화를 중심으로, 예술가들이 장면과 인물, 빛과 공간을 활용해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고 관람객에게 전달했는지를 보여준다. 익숙한 작품에서도 쉽게 지나쳤던 세부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며 그림 속 이야기가 첫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흥미롭게 짚어본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그림의 이야기는 화면에 그려진 사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물의 표정과 몸짓, 빛과 공간, 화면 속 작은 모티프 하나까지도 장면의 분위기와 서사를 만들어내는 요소가 된다. 작가는 이러한 시각적 장치를 세심하게 배치해 관람객의 시선을 이끌고, 때로는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까지 작품 안에 담아낸다. 전시는 이러한 회화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따라가며, 그림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은 보다 복잡하고 간접적이기도 하다. 화면의 중심에 사건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주변의 인물과 일상적인 장면, 빛과 시선의 흐름을 활용해 관람객이 스스로 이야기의 핵심을 찾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밤을 배경으로 한 장면에서는 어둠 속 서로 다른 광원이 특정 인물과 사건을 드러내며 관람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얀 브뤼헐 1세(Jan Brueghel the Elder)의 야간 풍경은 이러한 표현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당시 화가들에게 밤의 장면과 빛을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회화적 기량을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작품 속에 단서를 흩어놓고 관람객의 시선을 유도하는 방식은 그림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을 넘어, 화면 속 이야기를 직접 읽어내도록 만든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15세기 전반에는 눈앞의 세계를 더욱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새로운 회화적 시도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빛과 그림자, 재료의 질감, 인물의 표정과 몸짓, 풍경과 건축의 공간감까지 화면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가 서사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뮌헨과 주변 지역에서도 이를 받아들인 화가들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세밀한 표현과 풍부한 시각적 단서를 통해 관람객이 화면 속 이야기를 직접 찾아가도록 만들어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이었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1550년경 네덜란드에서는 기존의 작은 캐비닛 회화(방이나 서재에 두고 감상하던 크기가 작고 정교한 그림)와 대형 제단화와는 다른 새로운 형식의 회화가 등장했다. 거의 실물 크기의 인물을 화면 가까이에 배치하는 반신상 형식으로, 인물의 존재감을 강조하고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좁힌 것이 특징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체 연구와 사실적인 표현이 더해지면서 인물의 감정과 신체가 한층 직접적으로 전달되었고 관람객을 화면 속 사건에 끌어들이는 효과도 만들어냈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한편 당시의 화가들은 일상적인 직업과 사회의 모습을 소재로 삼아 인간의 행동과 사회적 모습을 풍자하기도 했다. 변호사나 세금 징수원처럼 특정 직업군을 과장되게 묘사해 그들의 탐욕이나 부정직함을 암시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한 풍속 묘사를 넘어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과 도덕적 메시지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16세기 바이에른 궁정의 대규모 역사화 연작은 풍부한 세부 묘사와 구체적인 형상 표현을 바탕으로 고대의 역사와 영웅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이러한 서사적 화풍은 작품에 시각적인 매력을 더하는 동시에, 당시 바이에른 공작 부부가 통치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과 인문주의적 교양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알렉산더 대왕과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비롯한 고대의 영웅들이 등장하며, 전쟁과 정복의 장면을 통해 전략적 능력과 용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강조한다. 높은 지점에서 내려다본 광활한 도시와 풍경은 인물들의 업적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에스테르, 헬레나, 클로엘리아, 수산나, 루크레티아, 베르지니아 등 역사와 성서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도 다룬다. 이들은 위기 속에서도 용기와 신념을 지키거나 자신의 명예와 가족, 공동체를 위해 행동한 인물들로 묘사되며 당시 사회가 이상적인 여성의 덕목으로 여겼던 용기와 정절, 희생을 보여준다. 이처럼 연작은 남성과 여성 영웅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통해 용기와 정의, 희생과 명예라는 보편적인 덕목을 다루면서도, 당대의 통치자에게 요구되었던 이상적인 가치와 인문주의적 세계관을 함께 보여준다. 물론 여성 인물들의 일부 이야기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낯설거나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당시 사회가 여성의 덕성과 명예를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성모 마리아는 초월적인 존재인 ‘하늘의 여왕’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로, 또는 훗날 그리스도의 수난을 마주하게 될 어머니로 표현되기도 한다. 아기 예수 역시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과 신성한 존재로서의 위엄을 오가며 표현된다. 이러한 작품들은 제한된 인물과 엄격한 종교적 도상 속에서도 화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과 신성을 시각화했음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 자리한 한스 발둥의 작품은 이러한 다양성을 한 화면 안에 압축해 보여주는 사례다. 성모의 신성함과 어머니로서의 친밀함을 동시에 담아내면서, 섬세한 빛과 색채, 정교한 세부 묘사를 통해 높은 회화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15세기 후반 독일 회화에서는 강렬한 빛과 원근법, 역동적인 인체 표현을 활용해 종교적 이야기를 보다 극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특히 제단화는 여러 패널과 장면을 연결해 성서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펼쳐 보이는 종합적인 매체로, 연속된 지평선과 색채, 공간 구성 등을 통해 복잡한 서사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냈다. 이러한 작품들은 제단화가 단순한 종교 회화를 넘어 예배 공간과 신앙의 서사를 함께 구성하며 르네상스적 원근법과 공간 표현을 통해 성서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달했던 형식임을 보여준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한편, 현재 노이에 피나코테크의 주요 작품들은 알테 피나코테크에서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노이에 피나코테크는 2019년부터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가 현재 휴관 중이며, 재개관은 2029년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주요 19세기 작품을 알테 피나코테크와 인근의 샤크 컬렉션(Sammlung Schack)으로 옮겨 선보이고 있다. 알테 피나코테크에서는 《터너에서 반 고흐까지》전시를 통해 19세기 컬렉션을 새롭게 살펴볼 수 있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이 전시는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낭만주의 회화부터 프랑스 인상주의, 에두아르 마네와 클로드 모네, 폴 세잔과 빈센트 반 고흐에 이르는 작품을 통해 19세기 미술의 변화와 다양한 흐름을 보여준다. 여기에 기존 전시에서는 충분히 소개되지 않았던 페르디난트 게오르크 발트뮐러와 아돌프 멘첼의 작품도 새롭게 더해졌다. 상징주의와 세기말의 사적인 실내 풍경을 다룬 작품들을 한 공간에 모은 전시실도 마련되어 있어, 19세기 미술을 하나의 직선적인 발전 과정이 아니라 다양한 시선과 표현이 공존했던 시기로 바라보게 한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노이에 피나코테크의 성격은 미술관이 만들어진 배경에서부터 드러난다. 바이에른의 국왕 루트비히 1세(Ludwig I)는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당대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했으며, 뮌헨을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다. 이미 옛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알테 피나코테크와 더불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새로운 미술을 보여줄 공간이 필요했고, 그 결과 1853년 노이에 피나코테크가 문을 열었다. 당시 노이에 피나코테크는 동시대 미술에만 전념한 유럽 최초의 공공 미술관으로, 과거의 명작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소개한다는 새로운 미술관의 역할을 보여주었다.
ⓒ Alte Pinakothek:, Photo: Han Jisoo
이처럼 현재 알테 피나코테크에서는 중세와 르네상스의 역사화부터 바로크 회화, 19세기 미술에 이르기까지 유럽 회화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화풍과 표현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나게 되는 주요 회화들을 한곳에서 압축해 감상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방대한 컬렉션을 통해 유럽 회화의 긴 흐름을 한눈에 살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시간을 들여볼 만한 미술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