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 감정, 징후, 열정. 고다르의 영화 이미지 북에 대해 > 한지수의 도이치 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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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도이치 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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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 감정, 징후, 열정. 고다르의 영화 이미지 북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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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us der Kulturen der Welt und der Berlinale: Sentiments, Signes, Passions - Zu Godards Film "Le livre d'image“

파리에서 시작한 〈봉주르 파리〉의 기록 가운데에는 프랑스 밖에서 마주한 예술의 장면도 있다. 그중 독일에서 만난 전시와 이야기를 새로운 독일 문화예술 코너 〈도이치 쿤스트 (Deutsche Kunst)〉로 옮겨 담는다. 

2026.09



프랑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이미지 북(Le livre d'image)〉을 둘러싼 특별전은 세계문화의 집(Haus der Kulturen der Welt)과 베를린국제영화제가 2월 10일부터 선보인 전시로, 영화제와 함께 베를린의 동시대 영화와 예술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자리였다.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고다르의 작품 세계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전시는 영화와 이미지, 역사와 정치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만큼 한 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전시를 관람한 영화 전공자에게는 오히려 고다르의 사유와 작업 방식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였다고 한다. 같은 작품을 마주하고도 서로 다른 지점에서 감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고다르의 작업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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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영화제 상징물, 황금곰상 ⓒ haus der kulturen der welt, Photo: Han Jisoo  


세계 문화의 집은 현대 미술과 비판적 토론을 위한 포럼을 열고 예술적 입장, 과학적 개념 및 정치적 행동 분야를 탐색하는 공간이다. 담론, 전시회, 콘서트 및 공연, 연구, 교육 제안 및 출판물을 결합하여 유럽 고유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한다. 전 세계의 예술가, 과학자, 일상적인 전문가 및 파트너와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고 베를린을 넘어 디지털 대중과도 공유하고자 하는 곳이다. 취지도 물론 훌륭하지만 건축물 자체가  정말 근사한데 바로 뒤편에는 슈프레강이 흐르고 건너편에는 티어가르텐 공원이 있어 자연 풍경도 어울어진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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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us der kulturen der welt, Photo: Han Jisoo   


전시는 고다르의 2018년 영화 〈이미지 북〉을 그대로 상영하는 대신, 영화의 장면과 소리를 전시장 곳곳에 흩어놓았다. 영화 속에는 버섯구름과 전쟁, 추방과 처형의 장면부터 영화사의 전설적인 이미지, 튀니스의 풍경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고다르는 이 이미지들을 다섯 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나누어 하나의 연상적 콜라주처럼 엮었다. 영화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소비하는지, 예술과 종교, 전쟁과 역사, 그리고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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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us der kulturen der welt, Photo: Han Jisoo   


전시장에서는 이 영화의 구조를 다시 해체했다. 촬영감독이자 프로듀서로 〈이미지 북〉 제작에 참여한 파브리스 아라그노(Fabrice Aragno)가 고다르와 협력해 전시를 구성했고, 영화의 다섯 장을 바탕으로 장면들을 더욱 잘게 나누어 공간 곳곳에 펼쳐놓았다. 약 40개의 서로 다른 스크린에는 영화의 이미지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나타나고, 약 20개의 스피커에서는 영화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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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us der kulturen der welt, Photo: Han Jisoo   


그래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향으로 따라갈 필요가 없다. 관객은 전시장 안을 자유롭게 걸으며 어느 화면 앞에 멈출지, 어떤 이미지를 먼저 볼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영화관에서 정해진 시간의 흐름을 따라 영화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아라그노는 이를 통해 고다르가 편집실에서 만들어낸 영화의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공간으로 확장했다. 그래서 이 전시는 고다르의 영화를 보는 전시라기보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편집의 과정을 공간 속에서 직접 거니는 경험에 가까웠다. 여러 시대의 이미지와 소리가 충돌하고 이어지는 가운데 관객은 자신만의 순서로 영화를 다시 조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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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us der kulturen der welt, Photo: Han Jisoo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1930–2022)는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스위스 영화감독으로, 1950년대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며 영화계에 들어섰다. 에릭 로메르(Éric Rohmer), 프랑수아 트뤼포(François Truffaut), 클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 등과 함께 당시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1959년 장편영화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를 발표하며 감독으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기존 영화의 문법을 과감하게 벗어난 이 작품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후 알제리 전쟁을 소재로 한 〈작은 병정(Le Petit Soldat)〉(1960), 매춘 여성에 관한 영화 〈자기만의 인생(Vivre sa vie)〉(1962), 전쟁을 다룬 〈기관총 부대(Les Carabiniers)〉(1963), 영화와 사랑, 욕망을 다룬 〈경멸(Le Mépris)〉(1963)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자신만의 영화 언어를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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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us der kulturen der welt, Photo: Han Jisoo   


고다르의 영화는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이미지와 소리, 대사와 음악을 자유롭게 충돌시키고, 기존의 편집과 서사 방식을 끊임없이 흔들면서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고 어떻게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지를 질문했다. 이러한 실험적인 작업을 통해 그는 프랑스 영화계를 넘어 현대 영화의 형식을 바꾼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작품은 국제 영화제에서도 꾸준히 주목받았다. 1965년 〈알파빌(Alphaville, une étrange aventure de Lemmy Caution)〉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으며, 〈네 멋대로 해라〉로 1960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여자는 여자다(Une femme est une femme)〉로 1961년 특별 은곰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여러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2018년에는 〈이미지 북(Le Livre d’image)〉으로 칸영화제 특별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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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us der kulturen der welt, Photo: Han Jisoo  


〈이미지 북〉은 고다르가 평생 탐구해온 영화의 가능성을 집약한 작품이다. 영화와 사진, 회화, 뉴스 영상 등 서로 다른 이미지와 소리를 잘라내고 겹쳐 놓으며, 하나의 선형적인 이야기를 따라가기보다 이미지 사이의 충돌과 연상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칸영화제는 이 작품을 두고 고다르가 편집을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 형식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오랜 세월 영화의 문법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다시 만들어온 고다르에게 〈이미지 북〉은 그의 영화적 실험이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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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us der kulturen der welt, Photo: Han Jisoo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A Love Song〉(감독: 맥스 워커-실버먼Max Walker-Silverman)을 비롯해 여러 단편영화를 관람했다. 영화제라는 특별한 무대가 아니었다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상영이 끝난 뒤 배우와 감독, 제작진이 직접 무대에 올라 관객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일반적인 영화관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영화제만의 풍경이었다.

그중에서도 아나스타시야 베버(Anastasia Veber) 러시아 감독의 영화 〈Trap〉은 여러 단편영화 가운데 특히 오래 기억에 남은 작품이었다. 당시에는 한 명의 관객으로 영화를 감상했지만, 파리로 돌아온 뒤 이 작품이 단편영화 부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현장에서 직접 작품을 마주했던 관객으로서 더욱 반갑고 뜻깊은 소식이었다.

이번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영화를 완성된 작품으로 감상하는 것을 넘어, 영화가 만들어지고 소개되며 관객과 만나는 과정까지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베를린에서 시작한 이 경험을 계기로 앞으로 칸과 베니스 등 세계적인 영화제의 현장도 직접 찾아가며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순간들을 계속 기록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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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us der kulturen der welt, Photo: Han Jisoo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예술 현장의 숨결을 기록하며 언어와 문화 사이의 미묘한 결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파리의 이야기를 수집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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