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 제815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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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 국내 클래식계 무대는 핀란드 지휘계의 신성 클라우스 메켈레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Orchestre De Paris-Philharmonie)와 아이돌처럼 핫한 두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조성진에 대한 열화와 같은 관객들의 열기가 객석을 뒤덮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 열린 6월 12일 저녁 롯데콘서트홀에서의 KBS교향악단 제815회 정기연주회는, 두 핫한 피아니스트의 선배 격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선배다운 넉넉함과 이제 70대 초반을 맞아 지난 5월 이탈리아 라스칼라 음악감독에 선임된 지휘자 정명훈의 노장급 지휘자로서의 중량감이 투영된 무대였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의 경우, 이 작품은 웅장한 스케일과 찬란한 색채가 인상적이며 베토벤 특유의 강력한 피아니즘(Pianism)을 펼쳐 보인다.
웅장한 스케일과 찬란한 색채에 함몰(陷沒)된 피아니즘을 펼치기보다 관조적 색채가 투영된 피아니즘을 무대에서 펼쳐 보이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연주를 보면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보다 다섯 살 위인 한 세대 터울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선배다움이 느껴진다. 특히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공연에 앞서 녹화된 KBS교향악단 'Matthew와의 대화' 유튜브 동영상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의 2악장 Adagio un poco mosso(느리지만 활기 있게)를 이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악장으로 꼽았다.
1악장의 넘치는 힘과 에너지가 잦아들면서 야상곡 풍의 명상적이고 성스럽고 아름다운 선율이 약음기를 사용한 바이올린 연주 위로 이어지고, 그 위로 펼쳐지는 피아노의 맑고 투명한 연주가 변주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다는 것이다. 이어 트릴 연주가 적재적소에 인상적으로 빛나는 이 악장은 이번 KBS교향악단과의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선배다운 특성을 잘 보여주는 연주로 내게도 다가왔다.
예술의전당과 LG아트센터, 롯데콘서트홀을 오가며 6월 중반 서울에서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클라우스 메켈레 & 파리 오케스트라 공연은, 자의적 해석과 기괴함의 피아니즘의 대명사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협연자로 국내 솔리스트로 나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 3번에 비해 잘 연주되지 않는 4번의 협연으로 클래식 관객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과 화제를 낳았다.
특히 클라우스 메켈레는 올해 만 29세의 젊은 활력이 빛나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Op. 14' 등의 연주로 젊음이 확 다가오는 요즈음 국내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외국계 젊은 지휘자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의 크리스티안 마첼라루나 밤베르크 심포니 내한 공연의 야쿠프 흐루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내한 공연의 지휘를 맡은 블라디미르 유롭스키 이후에 젊은 스테이지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6월 12일 저녁 KBS교향악단과 브루크너 교향곡 제6번의 지휘봉을 잡은 정명훈은, KBS교향악단의 계관 지휘자이자 이탈리아 라스칼라 음악감독을 맡게 된 70대 초반의 노장 지휘자로서의 묵직한 면과 산처럼 육중하게 서 있는 면을 동시에 보여주어, 핀란드계 지휘의 신성 메켈레와 상호 대척점에 있는 대조된 면을 부각시켰다고 본다.
브루크너 교향곡 제6번은 음악학자들 사이에서 브루크너의 중기 교향곡은 물론 브루크너의 전체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분위기의 곡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브루크너 교향곡 고유의 특성이 잘 반영되면서도 다른 낭만주의 교향곡의 요소들을 좀 더 반영한 곡이라고 볼 수 있으며, 전작인 5번이나 후속작인 7번보다는 '낭만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4번 교향곡에 가까운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주제의 전개와 응집력에 있어서 중기의 3번, 5번에 비해서 보다 발전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후기 대작들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지휘자 정명훈은 브루크너 교향곡 제6번 지휘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브루크너 교향곡의 깊은 영적 체험 못지않게 부담 없이 편안히 듣도록 하는 데 일가견을 보였다. 이는 브루크너 교향곡 제6번이 브루크너의 전형성이 다소 후퇴한 대신 보다 대중적인 취향에 가까운 선율미가 넘치기 때문에 브루크너에 익숙지 않은 초심자들이 좋아하는 곡으로 꼽는 경우도 있는 탓으로 보인다.
실제로 브루크너 교향곡 제6번은 중기 교향곡 중에서 다소 평이 갈리는 작품이지만, 2번 이전의 초기 교향곡들보다는 인지도가 높으며, 공연 빈도 역시 초기작에 비해서는 월등히 높다. 직전 지난 6월 5일 목요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제814회 KBS교향악단 X 정명훈의 브람스 III, IV 교향곡 연주회에서도 “지휘자 정명훈의 거장성을 부각시킨 정명훈의 브람스 III, IV!”가 된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다.
최근 몇 해를 돌아보면 정명훈은 객원 지휘자 가운데 KBS교향악단의 바통을 가장 자주 잡아온 지휘자로 꼽을 만하다. 2024년 3월 베르디 '레퀴엠'(Choral Ⅰ)과 7월 로시니 '스타바트 마테르'(Choral Ⅱ)를 지휘하며 종교음악 레퍼토리를 오케스트라 정규 시즌에 안착시키는 실험을 시도했고, 2023년 9월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으로 대편성 레퍼토리의 중량감을 증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