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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의 사진소묘

한옥, 미추를 깨닫게 해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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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pixabay.com


한옥, 미추를 깨닫게 해주다
가슴 아픈 기억

언젠가 파리 교외에 간 적이 있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다가
일행과 눈살을 찌푸리며 논쟁을 벌였다.
그는 한국 건축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고 혹평했다.
돌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고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럴만도 했다.
웅장한 규모 앞에서 나역시 적잖이
압도됐기 때문이다.

나는 두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첫째는 서유럽은 환경적으로 대리석 등이 많아
석조건축이 발달해서 현재에 이르른 반면
한국은 목조건축이 발달해서
자연재해나 전쟁 등 때문에 소실돼서
오늘에 이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
두째는 미를 바라보는 관점이 서유럽과 우리가
확연하게 달랐다는 이야기.
 
그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생태건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인이
강원도 횡성 산골짝이에다 지은 한옥에 가서
직접 설명을 듣고 하룻밤을 자면서
파리 교외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를 쓴 헝가리 미학자
아놀드하우저는 미를 누구의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느냐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고 보면 파리교외에서 논쟁했던 그와 나는
근본적으로 미추를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달랐던 것이다.
 
나는 한옥을 좋아한다.
짜맞춤 공법으로 인근 산에 자라는 소나무를
재료로 사용해서 자연과 이웃을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있는 한옥의 소통정신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한옥은 이 땅의 자연조건을 수용해서
가족과 이웃을 한데 어울리게 한 인문학 그 자체다.
이는 주어진 환경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어울림의 미학을 구현해 낸 빼어난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어찌 배타가 있고 우리 것만이 최고라는
오만이 들어 있겠는가?
이런 배제와 오만이야말로 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아트앤컬쳐 - 문화예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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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한양대 국문학과를 나와 일간지와 시사주간지 등에서 사건, 미술, 증권 담당기자로 일했다.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임권택 감독의 <창>으로 영화화)를 출간했으며 현재는 시창작에 몰두하면서 분당 서현에서 인문학 카페인 '봄언덕'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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