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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의 사진소묘

애국의 계절에 듣는 라디오 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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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 아냐!
애국의 계절에 듣는 라디오 헤드
 
 
영국 5인조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새삼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즈음입니다. 한동안 듣지 않았습니다. 몽환적이고도 어두운 음색이 가슴을 짓눌러서 애써 음반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올 초부터는 잘 들어옵니다. 마음에 착착 감깁니다.

회색의 계절 때문만은 아닙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아마 겨울올림픽 때문일 겁니다. 주최국인 러시아는 애국주의가 물결쳤습니다. 한국도 당한 입장이긴 하지만 애국주의가 도드라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을리 만무했습니다. 원색적인 비난과 광적인 흥분. 21세기 지구사회인가 하는 자괴감이 일었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경기장면을 기대했지만 경기 외적인 것 때문에 보는 맛이 반감되었습니다. 그래서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침울해서 피했던 ‘Fake plastic trees’가 애틋하게 들어왔습니다.
 
인간문명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특유의 얼터너티브 록으로 체화한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참 어둡습니다. 두 번 째 음반 <The Bends>(1995년)의 대표곡인 Fake plastic trees는 더욱 도드라집니다.
가사를 보면 참담해집니다.
 
‘my fake plastic love / but I can’t help the feeling’(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나의 가짜 사랑이여 / 하지만 나는 이 생각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어)
 
이 음악이 자연스럽게 다가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무의식적으로 러시아나 한국의 애국주의를 ‘가짜 사랑’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아닌, 가짜 사랑.
 
어찌 보면 무조건적인 애국주의는 가짜 사랑보다 더 나쁜 배제일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배제가 인간의 이름으로 자리 잡아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글로벌적으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연스럽게 애국주의가 판을 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 혹은 우리만이 최고라는 인식이 빚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릅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배제. 이런 문화가 중심이라면 스산하기 그지없는 라디오 헤드의 음악은 더욱 가슴을 파고들 것입니다.
 
‘그 중심, 중심 아냐!’ 절규하듯이 말입니다.
 

ⓒ 아트앤컬쳐 - 문화예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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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한양대 국문학과를 나와 일간지와 시사주간지 등에서 사건, 미술, 증권 담당기자로 일했다.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임권택 감독의 <창>으로 영화화)를 출간했으며 현재는 시창작에 몰두하면서 분당 서현에서 인문학 카페인 '봄언덕'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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