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호, 이윤서 2인전 《에포케 : 판단중지》 개최
눈 컨템포러리, 2024년 9월3일(화) – 2024년 10월18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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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컨템포러리는 9월 3일부터 10월 18일까지 백경호, 이윤서의 2인전 <에포케: 판단중지>를 개최한다.
전시의 제목인 epoke(에포케)는 고대 그리스의 회의론자들이 사용하던 용어로 원래는 <멈춤, 무언가를 하지 않고 그대로 둠>을 의미하는 단어였는데, 20세기 현상학자들이 다시 사용하면서 <판단중지>라는 개념으로 재조명되었다. 사물(상황)에 대해 기존의 관점, 선입견, 습관적 이해를 배제하고 직관해보자는 <에포케: 판단중지>는 쉽게 풀어 말하자면, 이런저런 생각은 일단 멈추고,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여보자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머리 속에는 이미 너무 많은 지식과 정보들이 축적되어 있고, 비약적인 디지털의 혁신은 우리의 노력이나 희망여부에 관계없이 더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주입시켜 놓았다. 게다가 빠른 결정과, 정확한 답 찾기가 요구되어지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불확실하고 모호한 순간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에 집중하고 그것을 찬찬히 곱십어내는 것은 쉽지 만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백경호, 판타지아-2, oil, charcoal on canvas mounted on wood panel, 210.5x244cm, 2024. © 작가, 눈컨템포러리
이윤서, 갓냥이, oil on linen, 22.7x15.8cm, 2024. © 작가, 눈컨템포러리
전시 <에포케: 판단중지>는 구상의 요소를 지닌 채 추상작업을 해 온 백경호, 이윤서 두 작가의 작업에서 만나게 되는 모호함과 생경함의 지점에 방점을 두고 시작되었다.
백경호는 원형과 사각의 캔버스를 결합하여 의인화된 조형을 보여주거나, 선긋기/격자긋기 등의 수행적 반복행위를 거친 캔버스들을 조합하기도 하고, 때로는 범위를 확장시켜 캔버스를 입체 조형물과 결합시키는 등 다양한 스타일의 회화를 선보여 왔다. 유화물감에 흙을 덧발라 표면의 질감에 성격을 부여하기도 하였고, 붓을 닦아낸 천을 사용하여 작업의 과정에서 작가가 느꼈던 시지각적 유희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번전시에서 작가는 셰입드 캔버스(shaped canvas) 회화가 아닌 정직한 사각형 프레임의 회화를 선 보인다. 그간의 작업이 다양한 요소의 결합, 부분과 부분을 맞대는 방식에서 기인한 의외성과 회화의 자율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이번 작업의 주된 특징은 사각의 캔버스를 가득 채운 ‘채색의 즉흥성’에 있다. 생동감과 리듬감으로 무장한 물감은 캔버스 위를 거침없이 가로지르고, 또 다시 그 위를 덮어버린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깊이감 있는 층위들이 생성되고, 그 층위 사이에 켜켜이 자리잡은 작가 특유의 회화적 감성은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보는 이에게 시각적, 그리고 촉각적 감각으로 다가온다.
이윤서는 SNS나 인터넷 미디어가 쏟아내는 방대한 시각 정보들 속에서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미지들이 움직이는 속도에 물리적으로 반응하며 화면을 구성해 나간다. 방대한 이미지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속도감 있는 붓질로 진행되지만 밀려오는 시각 정보의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는 못한다. 미처 다 기록되지 못한 이미지는 다가오는 이미지들에 밀려 지워지거나 뒤덮이고 겨우 그 흔적들만 가늠할 수 있는 상태의 덩어리로 화면에 남는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기록하는 매순간, 집중력을 내려놓지 않는다. 작가의 회화적 언어로 번역되어 나온 이 감각의 덩어리는 일견 모호하지만, 오히려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최근 작업에 “단호한 인상”을 그 기저에 두려 했다고 한다. 전통적 현판이나 가훈액자에 주로 사용되었던 가로로 긴 직사각형에서 느껴지는 단호함을 떠올려 보았다고도 하였다. 미처 다 소화되지 못한 채 불분명한 감각의 덩어리로 남겨지게 되었지만, 이 감각의 덩어리는 화려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자신을 뽐내는 타 이미지들 사이에서, 그래도 무언가를 결연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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