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플렉스(SUPERFLEX) 개인전 《Fish & Chips》 개최
국제갤러리, 2024년 6월 4일(화)–7월 28일(일)
본문
국제갤러리는 6월 4일부터 7월 28일까지 덴마크 출신 3인조 작가그룹 수퍼플렉스(SUPERFLEX)의 개인전 《Fish & Chips》를 서울점 K1과 K3에 걸쳐 개최한다. 2019년 부산점에서의 전시 이후 5년 만인 본 전시는 작가들의 활동을 서울점 공간에서 처음으로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페인팅, 조각, LED 텍스트 설치작품, 인터랙티브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기후와 경제 시스템 사이의 관계성을 살펴보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동시에, 도래하는 전인류적 위기에 대한 잠재적 해결 방안으로서의 종간 관계에 대한 작가들의 사변적인 고찰을 조명한다.
수퍼플렉스, 〈As Close As We Get〉, 2024.
Lioz coral, gray basalt, pink marble, and steel plate
150 x 60 x 20 cm. (사진=국제갤러리)
수퍼플렉스, 〈Chips 7〉 , 2024.
Acrylic and silicon on canvas
122 x 87 cm. 120 x 85 cm (unframed). (사진=국제갤러리)
수퍼플렉스, 〈Hold Your Tongue〉, 2024.
LED letters, aluminum structure,
37.5 x 146 x 8 cm. (사진=국제갤러리)
수퍼플렉스, 〈Interface Painting〉, 2022.
Aluminum foam, pink enamel, powder coated aluminum frame,
96 x 66 x 6.5 cm.(사진=국제갤러리)
수퍼플렉스, 〈Vertical Migration〉 , 2021.
LED screen, Mac mini, sensor, Raspberry Pi 4, and speakers,
300 x 150 x 150 cm. (사진=국제갤러리)
지배적인 경제학의 논리를 향한 질문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 수퍼플렉스는 사회, 문화, 정치적 맥락에 깊이 자리한 문제들에 창의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집단성(collectivity)의 힘을 강조하는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이러한 관심에 기반하여 기후 변화가 초래한 재앙적 상황으로 인해 예측되는 ‘종말’과 함께 이에 따른 다양한 ‘미래’에 얽힌 담론들을 다각도에서 해석하는 예술적 시도들을 최근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종말’에서 ‘미래’로 그 시선을 온전히 옮김으로써, 위기 상황에 새롭게 등장하는 미래의 다양한 면모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이 발현되는 두 가지 주요 축인 경제학적, 기후학적 시스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작가들이 그리는 비평적 지형도의 윤곽을 짚어본다.
전시 제목 《Fish & Chips》는 K3의 작품들에서 소재로 다루는 해양 생물과 K1에서 소개하는 마이크로칩(microchip) 회화 속 데이터의 거래라는 두 가지 모티프를 유머러스하게 조합한 것으로, 주제적인 측면에서 주목하는 두 영역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간의 폭넓은 조우의 장을 열고자 하는 수퍼플렉스는 이번 전시를 통해 유동적인 생태 환경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대한 독자적인 비전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이를 저항과 회복을 위한 모델로서 제안한다.
1관 전시장의 바깥쪽 공간에 들어서는 관람객은 가장 먼저 〈Save Your Skin〉, 〈Make a Killing〉, 그리고 〈Hold Your Tongue〉이라는 작품 제목과 동일한 문구를 담은 세 점의 설치물과 마주한다. 도심 한가운데서 주로 발견되는 상업적인 표지판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들은 일상의 흔한 관용구를 텍스트 기반의 LED 설치작업으로 변모시킨 것으로, 알루미늄 프레임에 분홍빛의 LED 글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불안감과 위급함의 정서를 발산하는 강렬한 어조의 문구들은 다가오는 경제적인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신호로 작용하는 한편, 언어와 시장 구조 이면에 자리한 인간중심적인 욕망을 확대적으로 보여준다. 어두운 전시장을 메운 짙은 분홍빛 조명은 경제적인 시스템의 붕괴를 암시하는 듯한 매혹적이고도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전시의 서두를 연다.
이어서 1관 안쪽 공간은 마이크로칩 모양에서 착안, 흰색 캔버스에 파편적으로 배치된 단색조 회화 시리즈인 〈Chips〉(2023-2024)를 선보인다. 본 신작은 화폐의 송금부터 데이터의 교환까지, 다양한 종류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상징하는 마이크로칩의 디자인을 추상적 모티브로 활용한다. 벽면의 회화 작품들이 둘러싼 전시장 한 켠에는 세라믹 조각인 〈투자은행 화분(Investment Bank Flowerpots)〉 연작 중 한 작품(2019)이 놓였다. 〈투자은행 화분〉 연작은 골드만삭스, 도이치은행, 시티그룹, JP 모건 체이스 등 세계적 규모의 투자은행 본사 건물을 모델로 제작되었으며, 각 모형은 금융 거래의 중독적인 면모를 은유하는, 환각을 유발하는 식물(이를테면 산 페드로선인장, 페요테 선인장, 마리화나 식물 등)을 담는 화분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이번 전시에는 시티그룹 건물을 본뜬 모형이 사용되었으며, 제주도를 비롯한 한국 남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독성 식물인 협죽도가 심어져 있다. 이와 같이 작가들은 거래와 시장 경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반영하는 작품들을 통해 권력을 상징하는 거대 구조물을 일상적 규모로 재구성하여, 수직적인 구조가 아닌 유기적이고도 공생적인 관계에 기반한 사회적 생태계의 가능성을 조망한다.
한편 3관은 전지구적 기후 위기에 대면한 수중 세계를 무대로 한 세 가지 작품들을 한데 모아, 그 시선을 1관이 암시하는 경제적인 비평에서 생태학적인 영역으로 전환한다. 전시장 한쪽에는 지표면이 물에 잠기는 미래에 해양생물의 대안적 터전으로 기능할 수 있는 조각 〈As Close As We Get〉(2024)이 설치되어 있다. 모듈 형태의 천연석들로 이루어진 조각들은 인류세 시대 너머의 시간에 인간과 해양 생태계 모두의 생존을 지탱할 수 있는 수면 아래의 기반 시설에 대한 작가들의 관념적인 상상을 반영한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선별된 조각들은 작가들이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를 내포한 거대한 어망처럼 보인다”고 묘사한 바 있는 3관 건물의 구조와도 조형적 대화를 이룬다. 또한 서로 다른 종간의 공생에 대한 작가들의 비전을 조각적 영역뿐만 아니라 2차원적 공간으로도 확장시키는 세 점의 〈Interface Painting〉(2022)이 전시장의 두 벽면과 천장에 자리한다. 어류가 서식하기 좋은 산호초들로 이루어진 환경을 연상시키는 분홍빛 단색조의 알루미늄폼 ‘캔버스’들은 회화의 표면을 인간과 해양 생물이 만나고 어우러지는 지점으로서의 입체적 공간으로 다시 바라보게끔 한다.
LED 화면에는 인터랙티브 영상 〈Vertical Migration〉(2021)이 컴퓨터로 제작된, 수중해파리의 친척인 해양 생명체 사이포노포어(siphonophore)의 상승을 묘사하면서 관람객의 시선을 인류세적 관점 바깥으로 한층 더 확장한다. 매일 밤 먹이를 찾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오는 수조 마리의 바다 생물들처럼, 다가오는 미래에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인간들도 ‘수직 이동’을 하게 될 것이라 예상하는 작가들은 영상에서 인류와 해양 생명체 사이의 공통된 운명을 그린다. 영상 속 카메라는 칠흑 같이 어두운 심해에서 해수면을 향해 상승하는 사이포노포어의 모습에서 시작해 점점 더 생명체에 가까이 다가가며, 후반부에는 사이포노포어라는 비인간 시점과 동일한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게끔 유도한다. ART 2030과 TBA21—아카데미의 커미션으로 제작된 〈Vertical Migration〉은 2021년에 열린 제 76회 유엔 총회에서 유엔 사무국 건물 파사드의 프로젝션으로 처음 선보인 바 있다.
수퍼플렉스는 1993년에 야콥 펭거(Jakob Fenger),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Bjørnstjerne Christiansen), 라스무스 닐슨(Rasmus Rosengren Nielsen)이 설립한 3인조 컬렉티브 그룹이다. 이들은 자본의 불균형, 이주 문제, 저작권 문제, 소유의 문제 등을 주제로 삼아 일관되게 세상의 불합리함에 의문을 품고 그 근원을 파헤친 작품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수퍼플렉스는 작업을 매개로 사람들로 하여금 범세계적 담론에 대한 예술적 고민들에 함께 참여하도록 유도하며,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폭넓은 통찰의 공유를 가능케한다. 이들이 예술을 통해 지향하는 바는 바로 ‘컬렉티브의 힘’이다.
수퍼플렉스는 ICA 샌디에고(2024), 사우스 플로리다 현대 미술관(2023), 르 비콜로르(2022), 쿤스트하우스 그라츠(2021), 투르쿠 미술관(2020), 테이트 모던(2017), 후멕스 현대미술재단(2013), 사우스 런던 갤러리(2009), 쿤스트할레 바젤(2005)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베니스 비엔날레(2024), 광주 비엔날레(2018, 2002), 샤르자 비엔날레(2017, 2013), 상파울루 비엔날레(2006) 등 다수의 비엔날레 및 단체전에 초대되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덴마크 아르켄 현대미술관과 미국 워싱턴 D.C. 허쉬혼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뉴욕 현대 미술관(MoMA), 마이애미 페레즈 아트 뮤지엄 등이 있다. 특히 2019년에는 한국과 덴마크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 '집단'의 잠재력과 ‘협업’의 중요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3인용 모듈식 그네 작품 〈하나 둘 셋 스윙!(One Two Three Swing!)〉을 선보였으며, 해당 작품은 2023년 통일부에 영구 기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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