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는 오는 10월 11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되는 ‘프리즈 런던 & 프리즈 마스터스 2023’에 참가한다. 특히 프리즈 런던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다양한 프로젝트, 협업, 행사 등 그 어느 때보다 알차고 특별한 프로그램 구성으로 전세계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2000년대 이후 작품들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의 최신 동향을 반영하는 ‘프리즈 런던’은 페어 탄생지인 런던 기반의 갤러리 59개를 포함해 총 40개국 160여 개의 갤러리가 참가한다. 더불어 작품성과 미술사적 의의를 동시에 갖춘 고미술품 및 근대 명작들을 대거 출품하는 ‘프리즈 마스터스’는 130여 개의 갤러리가 참여하는 등 프리즈 역사상 가장 국제적인 페어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주년인 만큼 행사가 진행되는 한 주 동안에는 ‘프리즈 위크(Frieze Week)’의 일환으로 도시 곳곳에 위치한 갤러리, 기관, 대안공간 등에서 다채로운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될 예정이다.
박서보(b. 1931), 〈Écriture (描法) No. 221220〉, 2022, Acrylic on ceramic, 76 x 98.5 cm(이미지=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는 이번 ‘프리즈 런던’에서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국내외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업을 구작부터 신작까지 폭넓게 소개한다. 먼저 화사한 개나리색 색감이 돋보이는 단색화 대가 박서보의 세라믹 〈묘법〉 연작 〈Écriture (描法) No. 221220〉(2022)을 선보인다. 반복된 행위를 통해 수행성과 무목적성을 실현해온 작가는 2022년 세라믹을 주재료로 한 묘법 신작을 발표했다. 외형은 기존의 색채 묘법과 유사하지만, 흙을 구워 재료적으로 변주한 새로운 도자 작업은 기존 묘법 연작에 한국 도예의 기품을 더하여 또 한번 전세계 미술계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어 하종현의 〈접합〉 근작 〈Conjunction 20-96〉(2020)이 소개된다. 캔버스 천에 비해 마포의 올이 굵다는 점을 이용, 작품 뒷면에서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내는 배압법(背押法)을 개발한 작가는 이번 출품작에서 먹색 물감을 사용하는데, 이는 흰색, 흙색과 함께 작가를 대표하는 주요 색상 중 하나이다. 한편 하종현의 작업은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이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에서 선보여지고 있다. 권영우의 〈Untitled〉(2000년대) 역시 부스에 전시된다. 일평생 한지를 찢고, 뜯고, 붙이고, 뚫는 행위를 통해 그것의 물성을 탐구하는 데 몰두했던 작가는 수묵으로 정의되던 동양화를 조형적으로 재해석하고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러한 명성에 걸맞게 그의 작업은 박서보, 하종현과 나란히 2021년 파리 퐁피두 센터에 소장된 바 있다.
한편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의 작업 〈합이합일 분이분일 2020-902〉(2020)가 국제갤러리 부스에서 처음으로 소개된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가 되며,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 또 다른 하나가 된다’라는 뜻의 제목처럼 나무에 자신의 정신을 더하고 공간을 나누어 가며 온전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는 조각의 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1985년 아르헨티나의 나무에 매료된 작가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탐구를 위해 이주를 결심한 뒤 아르헨티나를 거점으로 활동해왔다. 그리고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생을 관통하는 작업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으며, 올해 초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를 개최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모더니즘적 관행에 균열을 내는 작업을 지속해온 김용익의 〈물감 소진 프로젝트 22-4: 망막적 회화로 위장한 개념적 회화〉(2022)는 작가가 지난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2018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작업실에 남아있는 물감을 소진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한편 올해 말 국제갤러리 서울점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이광호의 신작 〈Untitled 7059〉(2023)는 뉴질랜드 케플러 트랙의 습지와 그 주변을 가로 형태의 대형 풍경화로 묘사하여 보는 이를 몰입시킨다. 현대미술가 양혜규의 〈칠흑같이 회전하고 반사하며 흐르는 십자형 수도꼭지 – 비늘 정사각형 #12〉(2023)도 부스에 설치되어 다양한 차원을 매개하는 수도꼭지 및 호스와 도회적인 분위기의 검정 거울의 조화를 보여줄 예정이다. 벨기에, 일본, 호주 등지에서 다수의 전시를 개최한 작가는 특히 9월 말에는 아일랜드 국립조각공장 커미션 작업 〈The Great Forgetfulness〉를 공개한 바 있다. 올 하반기에도 양혜규는 뉴욕에서 진행되는 제10회 퍼포마 비엔날레(2023년 11월 1일부터)에 참여하고, 헬싱키 미술관(HAM)에서의 핀란드 최초 개인전 《양혜규: 지속 재연》(2023년 11월 24일부터)을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성황리에 진행 중인 강서경의 〈산〉 연작 중 〈Mountain #22-04〉(2021-2022)도 출품된다. 작가가 서촌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바라본 인왕산 풍경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철, 실, 체인과 같은 재료로 능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은 입체적인 동시에 서정적이다.
해외작가로는 현재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대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오목한 디스크 형태의 신작 〈Pale Pink Candy〉(2023)를 선보인다. 작가의 대표 연작인 디스크 작업은 바라보는 이의 모습을 반사하고 왜곡하는 과정을 통해 오랜 주제인 물질성과 신체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한편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은 〈Human Scale (Zero)〉(2018)을 통해서 수영장을 공간의 타원형 구조, 다이빙 보드, 사다리와 같은 필수 구성요소로 축소시키고 다시 사이즈를 확대하여 조각이 하나의 존재 혹은 인물로 인식되도록 한다. 또한 덴마크 출신 3인조 작가그룹 수퍼플렉스(SUPERFLEX)의 〈Interface Painting〉(2022)은 바닷속 산호를 연상시키는 버블검 핑크색의 다공성 알루미늄 폼으로 만들어진 작업으로, 해양 환경을 조명함으로써 인간과 타 생물들의 상관관계 및 도심 속 생태계의 재구상, 재고, 그리고 재활성화에 대해 고찰한다. 수퍼플렉스는 지난 달 우리나라의 최북단이자 북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인 파주의 도라산 역에 설치작업 〈One Two Three Swing!〉(2019)이 기증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뉴욕과 방콕을 오가며 활동하는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Korakrit Arunanondchai)의 데님회화 연작 〈To compete with the chorus of the world〉(2023)도 소개된다. 지난 해 연말 국제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작가는 서양 중심의 세계화와 노동의 역사에 대한 고찰의 일환으로 청바지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캔버스 위에 불에 타고 남은 표백된 청바지, 불이 연소되는 동안 촬영한 이미지 등을 다층적으로 쌓아 올린다.
‘프리즈 마스터스’에서 국제갤러리는 런던과 토리노를 기반으로 유의미한 활동을 통해 예술적 명성을 쌓아온 마졸레니 아트(Mazzoleni Art) 갤러리와의 협력으로 한국과 이탈리아 근현대 작가들의 수작을 대거 선보인다. 대표적으로 박서보의 기하학적인 화면구성이 돋보이는 1990년대 묘법 작품 〈Écriture (描法) No. 981209〉(1998)를 비롯해 오는 10월 11일부터 마졸레니 런던에서 유럽의 거장 아고스티노 보날루미(Agostino Bonalumi)와의 2인전을 개최하는 이승조의 〈핵〉(1974)과 〈핵〉(1970년대)이 출품된다. 한국에서 기하학적 추상을 선도한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는 이승조는 차가운 색감 및 화면구성의 대비가 돋보이는 파이프 형상의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500여 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선의 찻사발 ‘이도다완’을 부활시킨 도예가인 길성의 달항아리가 출품된다. 마졸레니 아트는 1986년 설립 이래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등 20세기 거장들의 명작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이번 마스터스 부스에서는 2인전을 개최 중인 아고스티노 보날루미(Agostino Bonalumi)를 비롯해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칼라 아카르디(Carla Accardi) 등 이탈리아 미술사를 다시 쓴 거장들의 작업을 대거 선보이며, 이에 국제갤러리는 마졸레니 아트와의 협업을 통해 동서양의 미술사 흐름을 관통하는 풍성한 담론을 함께 형성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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