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아트갤러리, 현실과 이상 경계 허무는 조각가 윤두진 개인전 ‘초인 超人’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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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윤두진 작품
혜원아트갤러리는 12월 8일부터 30일까지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조각가 윤두진 개인전 ‘초인(超人)’을 개최한다.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수학한 조각가 윤두진은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에 방점을 둔 작업을 일관되게 발전시켜왔다. 전시실에 놓인 그의 초현실적 조각상들은 현실 세계로부터 그들이 살아가는 신화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윤두진이 배태한 초월적 인물상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장대한 신화적 세계의 풍경은 보는 이의 시·지각을 압도하는 한편,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과 이상을 더 솔직한 조형 언어로 시원스럽게 풀어낸다. 냉혹한 현실에 지친 현대인이라면 순백색의 환상적 신화 속을 거닐며 잠들어있던 상상력을 일깨워 보기 바란다.
어린 시절 한 번쯤 꿈꿨던 영웅의 모습을 현실 세계로 소환한다면 이들과 같지 않을까. 섬세하게 조각된 남녀 인물상들은 힘을 과시하듯 과장된 동세와 도드라진 근육, 기계화된 신체가 이목을 끈다. 투구를 쓰고 창과 방패 든, 날개를 달거나 용맹하게 말이나 용의 등에 올라타 피조물을 호령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나 아테나 같은 전쟁의 신을 연상하게 한다. 또 기계와 결합된 신체는 흡사 전쟁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닮아있기도 하며 날개깃 하나, 하나에 깃든 섬세한 기교는 충만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이처럼 절정에 다다른 윤두진의 예술적 기교와 예술적 상상력은 신화 속 영웅들을 현실감 넘치는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세워놓는다.
윤두진의 인물 조각 시리즈는 2000년대 초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간의 다면(多面)을 포착한 ‘Mask Series(2000년대 초)’로 시작돼 2000년대 중반 불완전성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기계와 신체가 결합된 초인의 모습으로 표현한 ‘Protecting Body Series’(2006~08), ‘Guardian Series’(2017~)로 발전됐다. 이상적 인간상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구체화함에 따라 가면을 쓴 얼굴은 점차 힘이 넘치는 초인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들은 신이기보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한 이상적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데, 즉 아름다움과 강인한 힘을 갈구하는 인간 내면의 원초적 욕구가 투영된 온전한 작가 상상의 산물인 것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런 이상향의 극단은 우리의 불완전성을 더 극명하게 일깨워주며, 인간이 지닌 결핍의 실체를 드러내는 기재로 작동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최근작 ‘Elysium Series’(2020~)는 기존 작업 주제였던 초인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부조 방식으로 구성해 더 확장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엘리시움(Elysium)’이라 명명된 이 세계는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신 또는 신격화된 인간들이 머무는 일종의 사후 세계다. 그중에서도 인간계 영웅들, 덕 있는 자들의 영혼을 위해 마련된 ‘극락세계, 행복이 가득한 낙원, 지복을 누리는 땅, 이상향’이라는 의미로 망각의 강 레테(Lethe) 너머 하데스(Hades)가 다스리는 지하세계의 낙원이다. 이곳은 이승과 밤낮이 바뀌었을 뿐 결코 어두워지지 않는데, 때문에 고대인들에게 ‘네수스 레우케(Nesus Leuce, 하얀 섬)’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온통 순백색으로 조각된 윤두진의 초인들과 이들을 둘러싼 엘리시움은 현실이라는 대지 위에 세워진 하얀 섬, 바로 네수스 레우케의 시각화 버전이나 마찬가지다. 윤두진은 초인들과 하얀 섬을 통해 모든 죄악이 소거된 무결함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숭고하고 몽환적인 아우라로 기화해낸다.
한편 부조와 환조를 결합한 윤두진의 신선한 시도는 기존 작업의 제약을 넘어 작품 안팎의 서사를 더 입체적으로 구축해냈다. 특히 부조 장르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 실정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부조 양식의 특성을 수용하고 변형한 과감한 시도는 탄탄한 서사, 작품의 완성도와 더불어 그의 작품이 주목되는 이유다. 부조로 조각된 인물상에서 3차원 공간으로 펼쳐진 날개는 조각이 우리 눈앞에 날아들 것만 같은 독특한 공감각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상상의 세계와 우리가 숨 쉬는 현실 세계의 경계를 허물고 관람자가 오감으로 작품을 느끼게 하는 윤두진의 조각은 대체할 수 없는 강렬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1990년대 사이보그로부터 현재의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까지. 과학이 발전할수록 현실 세계를 닮고자 하는 가상 공간의 형이상학적 욕망은 우리를 혼돈에 빠트리기도 하지만, 이런 흐름에 역행하듯 윤두진은 우리를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이끈다. 그가 낳은 초인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하얀 섬의 풍경은 고대 신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의 한 장면처럼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 보이려는 동시대 욕망을 거슬러 인체와 결합된 날개, 다리, 팔 등의 기계 부속들은 자랑이라도 하듯 과장돼 있다. 주지하듯 그의 작업은 아름다움과 힘에 대한 인간의 욕구 드러내기를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오히려 솔직하고 과감한 조형 언어로 우리의 욕구를 형상화함으로써 욕망(慾望)의 부정성을 갈망(渴望)의 긍정성으로 치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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