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개인전 《그려보다》 개최
맥화랑, 2024. 12. 04(wed) - 12. 31(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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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넘게 종이 위에 연필 하나만으로 작업
30년이 넘는 시간을 오로지 종이에 연필 하나만으로 집요하고 거침없이 작업을 이어온 부산의 중견 작가 김은주가 12월 4일부터 부산 맥화랑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등 국내 미술관 전시와 작품 소장을 비롯하여 키아프, 아트부산, 아트 타이베이, 아트 센트럴 홍콩,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 등 국내외 미술 시장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김은주, 그려보다 210430, 2021, 종이 위에 연필, 100x80cm. © 작가, 맥화랑
김은주, 그려보다 211010, 2021, 종이 위에 연필, 100x80cm. © 작가, 맥화랑
김은주, 무제, 1998, 종이 위에 연필, 200x110cm. © 작가, 맥화랑
1965년 부산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90년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인체 드로잉을 선보이며, ‘날 것’같은 강렬함과 ‘날 선’ 연필 선으로 폭 20m가 넘는 벽면 전체를 거대한 군상으로 덮어버리거나 화면 밖으로 벗어나려는 듯 꿈틀대는 인간의 형상을 그렸다. 초기 인체 작업은 그녀의 삶을 위협하는 사회적 통념이나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저항,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의 존엄성을 확인하고자 했던 작가의 젊음이 담겨 있다.
2000년대 중반으로 넘어가면 인체로 영원할 것 같던 작가의 화면에 거대한 파도, 그리고 그 파도를 일으킨 바람이 느껴지는 흩날리는 이파리와 꽃이 등장한다. 너른 바다와 같던 아버지의 죽음과 평생 곁을 함께 한 고향 바다의 바람은 작가의 호흡과 리듬이 되었고, 그리고자 하는 대상은 그리는 행위 그 자체로 치환된다. 흰 화면과 무수히 쌓여가는 선, 그 행위를 지속하는 일. 반복적인 선 긋기와 중첩이라는 노동집약적이고 수행과도 같은 작업 과정은 작가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태동한 생명력이자 에너지의 발현이다.
긋고 또 그어진 선은 빛의 각도에 따라 양감과 일렁이는 듯한 느낌을 주며, 하얀 종이 위 그어진 검고 빛나는 형상은 바탕과 서로 대조를 이루며 부각 되기도 하고 여백의 미를 살리기도 하는 상호보완적 존재로 자리한다. 작품은 파도, 화병, 꽃이라는 형상으로 완성되지만, 이 형상은 단지 형상일 뿐, 작가의 말을 빌리면 ‘꽃은 꽃이 아니고, 화병은 화병이 아니며, 파도는 파도가 아니다.’ 그려진 대상이 무엇인지는 작가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반복적 선 긋기’라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작업 과정에서 그리는 자신마저 잊고 일체의 생각에서 벗어나 ‘그리는 행위’와 하나 되는 것.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는 이순(耳順)에 접어든 작가에게 주어진 오늘의 과업일 것이다.
중국의 불경 연구가 페이융은 ‘수행’을 ‘이 세상의 모든 형태와 관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본래 모습 안에서 평온하게 머물며 생명 자체의 희열을 느끼고 본질을 꿰뚫어 보기 위함’이라 말한다. 겉으로 드러나거나 보이는 것, 즉 현상의 덧없음을 알고 어느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 마음을 갖기 위해 수행하다 보면 고통과 번뇌 가득한 현생에서 조금이나마 안정과 평정심을 갖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작가가 앞서 말한 ‘꽃은 꽃이 아니고, 화병은 화병이 아니며, 파도는 파도가 아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며, 그저 좋아서 시작한 그녀의 ‘그려보는’ 행위가 30년이 넘도록 지속되는 수행과도 같은 ‘긋는’ 행위로 이어지는 과정 안에서 그녀의 작업이 관람자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맥화랑 김은주 개인전 《그려보다》는 12월 31일까지 계속되며, 12월 7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부산 맥화랑에서 김은주 작가와의 만남(아티스트 토크) 시간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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